전해지지 못한 청기와의 비결
신성호
고려는 세상에서 제일먼저 금속활자로 책을 찍어냈고 4차 방정식의 풀이법을 이용하여 수학과 천문학, 역학 등 세계문명발전에 크게 기여한 문화의 나라로 널리 알려졌다.
고려청자기도 천하가 일러주는 보물이었다. 비취색이 영롱하고도 은은하게 어려 있는 아름다운 상감자기는 사람의 재주로 만들었을까 하는 의심이 들 지경이다.
그 비법을 써서 구워낸 고려청기와도 천하보물이었다. 방금 캐낸 진귀한 비취옥을 다듬어 만든 듯 한 푸르른 청기와로 회경전(만월경의 본전)을 씌운 고려의 왕궁을 찾아오는 외국의 사절들은 환상속의 용궁과도 같은 위엄과 아름다움이 너무도 활홀하여 누구나 혀를 내둘렀다고 하니 과연 고려청기와가 어떤 보물이었던가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하여 고려청기와를 만드는 비법이 후세에 전해지지 못하고 끊어지고 말았으니 실로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고려 초엽 개경의 어느 한 자기가마소에서는 백발의 노인이 아내와 외아들을 데리고 기와를 굽고 있었다. 원래 자기가마소라고 하면 자기그릇을 구워내는 곳인데 기와공이 기와를 구워낸다고 하니 누구나 고개를 기웃거릴 일이었다. 기와공이면 개흙을 파다가 검은 토기와를 빚어 굽는 기와가마소에서 일해야 하지 않겠는가
허나 백발의 기와공노인만은 자기가마소에서 보통의 토기와가 아닌 쇠소리가 짱짱 나는 멋진 청기와를 구워내고 있었다. 이런 청기와를 구워내는 자기가마소는 나라적으로 그곳 하나뿐이었다.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오기가 바쁘게 이해에도 일찍 자기가마소 불을 지핀 기와공노인은 아름다운 봄경치도 구경할 새가 없이 청기와를 굽는 일에 달라붙었다.
오늘도 기와공노인이 아침 일찍 자기만이 일하는 헛간에 들어가 청기와를 빚을 여러 가지 흙을 골고루 섞고 있는데 조심히 헛간문이 열리더니 애젊은 총각이 들어섰다. 이제 겨우 18살이 된 노인의 외아들이었다.
땀을 흘리며 열심히 하던 노인은 일손을 멈추고 그를 의아쩍은 눈길로 쳐다보았다. 노인이 엄하게 정해놓은 가문과 자기가마소의 법도에는 그가 아들일지라도 이 헛간에만은 함부로 들어오지 못하게 되어있었다.
지금껏 그 법도를 누구보다 엄격히 지켜온 아들이 오늘 갑자기 어기었으니 노인이 이상하게 여길만도 하였다.
“너, 웬 일이냐?”
외아들이 정색해서 입을 뗐다.
“아버님! 어제 관례를 하고보니 생각되는 것이 많소이다. 이제는 어른이 되었으니 아버님의 뒤를 잇자면 …”
그제서야 노인은 말끝을 채 맺지 못하는 아들의 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분명 아들은 관례를 한 어른이 자기도 응당 청기와를 굽는 요긴한 비결들을 알아야겠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노인은 나이 쉰 살에야 늦게 본 외아들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남들처럼 젊은 나이에 일찍 아들을 보았더라면 이미 청기와를 만드는 비결을 물려주었을 뿐더러 자기가마소까지 넘겨주었을 것이다. 노인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넌 아직 자기가마소의 일을 배우고 있는지 몇 해 밖에 안 되는 까닭에 복잡하고 까다로운 그 비결을 이해하기 힘들거다.”
아들은 얼굴을 붉히며 고집스레 고개를 저었다.
“나도 기와굽는 흙을 어떻게 섞는지 그것만 알면 얼마든지 청기와를 구워낼 수 있소이다.”
노인은 쉽게 물러서지 않을 잡도리인 아들의 손을 꼭 잡아 쥐었다.
“그럼 하나 묻자꾸나. 이 아비가 청기와를 굽는 비결을 찾기까지 몇 해가 걸렀다고 했더라?”
아들은 심드렁해서 대꾸했다.
“ 서른다섯 해를 바쳤다고 하지 않았소이까.”
“그래 서른다섯 해지.” 하고 중얼거리는 노인은 잠시 지나간 나날들을 눈앞에 떠올렸다.
그가 남달리 애젊은 시절에 청기와를 만들겠다는 결심을 품게 된 것은 선조의 강토우에 더 큰 하나의 나라를 세운 고려의 존엄을 만방에 떨치는데 자기도 한 몫 기여하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아직은 세상이 알지 못하는 멋진 청기와를 만들어 왕궁과 같은 나라의 큰집들에 씌우면 그것도 우리 겨레의 자랑으로 되지 않겠는가
노인은 심퉁한 태도가 어린 아들의 얼굴을 바라보며 근엄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 내가 처음 청기와를 굽는 길에 나섰을 때 우리 집은 쪽바가지신세여서 입살이도 제대로 하지 못한건 사실이다. 무려 서른다섯 해라는 오랜 세월 갖은 고생 끝에 뜻을 이루고 오늘은 나라에 바치는 청기와의 덕으로 밥술을 먹게 되니 어떤 사람들은 청기와의 비결을 배워달라고 성화를 먹이는구나. 나라와 백성을 위하겠다는 의로운 마음이 꼬물만치도 없는 그 녀석들의 속심을 내 모르는 바가 아니어서 아예 딱 잡에 뗐더니 날 보고 저만 잘살려 하는 땅고집쟁이라고 뒤소리를 친다는데 넌 이 아비의 마음을 알아야 한다.”
그 말에 아들은 분이 나서 씩씩댔다.
늙은 아버지가 청기와를 꽝꽝 구워내어 나라에 바치고 임금으로부터 상으로 흰쌀까지 받게 되닌 이웃의 자기가마소주인들이 배 아파했다. 며칠 전에도 아버지를 찾아온 이웃의 자기가마소주인은 몇 푼의 돈을 내놓으면서 욕심 사납게 청기와를 만드는 비방을 혼자만 독차지하지 말고 자기에게도 알려달라고 졸라댔다.
그 꼴을 보다 못해 아들은 제가 부리는 자기공들의 등골을 뽑아 먹기로 소문난 그의 못된 속통에 부아가 나서 어른들 앞이었지만 당장 물러가라고 을러멨었다. 바보가 아니고서야 돈벌이에 환장이 된 그런 고약한 사람에게 청기와의 비결을 대줄 수 있단 말인가.
아들은 마른침을 삼키고 말했다.
“아버님! 죽으면 죽었지 아버님께서 한평생 고생하며 밝혀낸 청기와의 비결을 심보사나운 사람들에게 발설하지 않겠으니 이젠 그걸 배워주소이다.”
노인은 아들의 잘못된 생각을 고쳐주자면 오늘 품을 좀 들여야겠다고 생각했다.
“자, 나를 따르거라.”
노인은 앞에 달린 고간문을 열고 들어섰다. 고간에는 어제 구워낸 백여장의 청기와가 무져있었다. 노인은 하나와 같이 맑게 개인 가을하늘처럼 푸르청청 아름다운 빛을 뿌리는 청기와를 가리켰다.
“너도 아는 것이지만 청자기그릇들은 이 청기와와 달리 꼭같은 흙으로 빚어가지고 꼭같은 가마에서 꼭같은 사람이 꼭같은 시간에 구워냈어도 개개마다 그 색깔이 꼭같지 않다. 그것은 불길의 세기가 한가마안에서도 조금씩 차이나고 또 그 못지 않게 자기를 빚은 흙이 불길의 세기에 따라서 그 색깔이 아주 예민하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청자기그릇들은 판에 박은 듯 꼭같은 색이 아니더래도 보기가 좋다.”
아들은 늙은 아버지의 말에 이해가 되어 고개를 끄덕었다. 아름다운 꽃일수록 한꽃잎에서도 울긋불긋 그 색깔이 차이나듯 값진 청자기그릇들도 한그릇에서 비취색의 진하고 연함이 묘하게 어울려야 멋지다고 한다. 하지만 청기와는 그릇들과 사정이 다르다. 만일 나라의 큰집들에 색깔이 차이나는 청기와를 씌워놓는다면 그 웅장함에 큰 손실을 주게 될 것이다. 노인은 푸르른 광택을 머금은 청기와를 집어 들었다.
“우리가 구워내는 청기와는 천장이고 만장이고 이것과 한본새로 꼭같은 비취색이다. 청기와를 판에 박은듯 한 가지 색깔을 만들어내는 비결은 두 가지인데 하나는 기와를 구워내는 불길의 세기이고 다른 하나는 그 기와를 빚는 여러 가지 흙을 어떻게 섞는가 하는 것이다.”
아들은 숨을 죽이고 아버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었다.
“그런데 이 두가지 비결중에서 보다 터득하기 힘든 건 기와를 구워내는 불길의 세기이다. 한생 자기가마와 씨름질을 한 오랜 자기공들도 그 비결은 가르쳐주어도 익히기 어려운데 하물며 너야 더 말해 무엇 하겠느냐.
그래서 난 너 홀로 해온 가마안의 불길의 세기를 알맞게 다루는 그 비결부터 먼저 배우라는게다. 그 비결만 배우면 기와를 빚는 흙들을 섞는 비결은 한식경도 못되어 물려받을 수 있으니 무얼더 조급해하겠느냐.“
아들은 비로소 깨달아지는 것이 있었다.
해마다 풍작을 거두어들이는 실농군에게서는 땅냄새, 거름냄새가 나듯 근면한 자기공이라면 응당 내굴내, 그슬음내가 나야 할 것이다. 이 아들도 내굴내, 그슬음내가 나는 진짜배기 자기공이 되어야 늙은 아버지가 한생 터득해낸 불길의 세기를 마음대로 다루게 될 것이다. 기와공노인은 자책감에 어려있는 아들을 대견해하는 눈길로 바라보았다.
“얘야, 오늘은 일손을 다그쳐 기와를 빚고 내일은 가마에 불을 지피자꾸나. 넌 보다 직심스레 불을 다루는 일을 맡아해야겠다.”
아들은 자기를 보다 훌륭한 자기공으로 키우려는 아버지의 깊은 마음에 감동되어 눈굽이 축축해졌다.
몇 달후, 기와공노인은 방금전에 가마에서 구워낸 청기와를 넣어둔 고간을 돌아보고있었다. 오늘까지 구워낸 청기와이면 또 한 채의 지붕을 넉넉히 씌울 것이다. 이런 기세로 한 몇해쯤 청기와를 구워낸다면 왕궁의 본전들은 청기와로 갈아 씌우고도 남을 것이다.
그것도 기쁜 일이지만 그 못지 않게 기쁜 일은 아들의 불을 다루는 재주가 나날이 눈에 띄게 좋아지는 것이었다. 그애가 요즘처럼 이 아비의 곁에서 떨어지지 않고 불의 세기를 익히느라 열심히 분발한다면 늦어 한해 후에는 제 혼자서도 얼마든지 청기와를 구워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내년 가을에 가서는 아들에게 청기와를 만드는 모든 비결을 물려주게 될 것이다.
아들이 아주 젊은 나이에 나라에 둘도 없는 훌륭한 청기와공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은 기와공노인의 기분을 마냥 들뜨게 하였다. 못내 흡족해서 청기와를 굽어보던 기와공노인은 문득 정신이 아찔해져서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개경의 토질병인 중풍에 걸린 것이었다. 뒤늦게 아버지를 발견한 아들이 그럴 업어다 방에 눕히고 용한 의원을 청해왔건만 중풍은 천하명의일지라도 어쩔수 없는 무서운 병이어서 고칠수 없었다. 밤중에 겨우 정신을 차린 기와공노인은 자기가 죽을병에 거렸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아들에게 기와를 빚는 여러 가지 흙들을 섞는 비방은 전혀 알려주지 못했다는 것을 생각해낸 그는 몹시 바빠나섰다. 이제라도 그 비방을 알려주면 불길의 세기를 어느 정도 터득한 아들이 이 아비가 없더라도 청기와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기와공노인은 눈물이 글썽해서 지켜보는 아들에게 입을 열었다. 허나 무슨탓인지 혀가 돌아가지 않았다. 이러다 가문의 보배이자 나라의 보배인 청기와의 비방을 물려주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기와공노인은 안간힘을 써서 손을 쳐들었다. 손가락을 놀려 글의 형체로써 그 비방을 물려주고 싶어서였다. 허나 야속하게도 손도 움직여주지 않았다.
‘아, 이럴줄 알았으면 글로 써두는건데 …’
관례만 치르었지 아직 장가도 보내지 못한 애젊은 아들을 쳐다보느라니 원통하기 그지없었다. 아. 아들이 젊은것만 보았지 내 늙은건 생각지도 못하고 청기와의 비방을 아끼다가 무슨 일을 저질렀는가. 원통함을 못이긴 기와공노인은 병이 더 악화되어 그날로 운명하고 말았다.
기와공노인이 돌아간 후 그의 아들이 청기와를 구워내려고 무진 애를 썼지만 아버지로부터 기와 빚을 흙을 섞는 비방은커녕 가마안의 불길을 다루는 묘리도 채 물려받지 못한 까닭에 끝내 빛을 볼 수 없었다.
고려의 국보였던 청기와의 비결이 영영 끊어지고만 가슴 아픈 이 사실을 두고 선조들은 누구나 자기가 알고있는 좋은 비방들을 제때에 후배들에게 넘겨주는 것이 나라를 위해 얼마나 큰 일인가 하는 것을 절감하였다고 하니 이 교훈이 준 의의는 자못 크다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전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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