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 성균관

 

성균관이라 하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게 조선시대 만들어진 국립교육기관으로 지금의 성균관대학교의 전신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이 성균관은 이미 조선시대 이전부터 존재하고 있던 국립교육기관으로 그 면모를 갖추고 있었다. 따라서 고려시대에도 고려의 수도인 개성에 서울의 성균관과 똑같은 성균관이 자리 잡고 있다.

 

성균관이라는 이름에서 성균(成均)’은 성인재지미취(成人材之未就), 균풍속지부제(均風俗之不齊) 각각의 앞 글자들을 따온 것으로, ‘인재로서 아직 성취하지 못한 것을 이루고, 풍속으로서 가지런하지 못한 것을 고르게 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photo_2019-10-28_03-54-16.jpg

그림1) 개성 성균관 안내 설명 표지판

 

이러한 성균관은 고려 성종조에 태학으로 최초 설립되었다. 이후 태학은 국자감으로 확장되어 개편되었다. 고려 충렬왕 시기 국학으로 이름을 낮추었고, 이후에 성균감으로 개칭하였다. 성균관이란 지금의 이름은 충선왕 시기에 만들어졌고, 공민왕 시기에 잠깐 국자감으로 이름이 바뀌었지만 다시 성균관이라는 이름을 되찾아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성균관의 건물 구조는 제사 기능을 담당하는 대성전지역과 강학 기능을 담당하는 명륜당지역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대성전은 공자를 비롯한 유교 성현들의 위패를 모신 사당으로 문묘 행사를 거행하는 곳이다.

 

대성전에 가면 우선 눈길을 끄는 것이 은행나무일 것이다. 은행나무는 행단을 의미하는 것으로 과거 공자가 살구나무 밑에 단을 만들어 제자들을 가르쳤다는 것에서 유래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의 살구나무는 한반도로 건너오면서 은행나무로 바뀌었고 지금도 은행나무는 교육을 상징하는 나무로 존재하게 되었다.

 photo_2019-10-28_03-54-24.jpg

그림 2) 개성 성균관의 대성전 건물

 

명륜당은 성균관 유생들의 교육을 위한 강당이자 과거 시험장으로 대성전 북쪽에 위치한다. 대성전을 위에 두고 동쪽과 서쪽으로 건물을 만들었는데 이를 동제와 서제라 부른다. 동제와 서제는 성균관 유생들이 기숙하는 건물로 동쪽으로는 선배들이 서쪽으로는 후배들이 자리잡게 된다. 

 photo_2019-10-28_03-54-31.jpg

그림3) 개성 성균관의 명륜당 건물

 

개성 성균관에서 명륜당을 오르는 계단을 자세히 보면 용의 모양을 조각하여 계단을 만든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이 이른바 등용문(登龍門)’이라고 하는 계단이다. 등용문의 고사는 중국 후한시대에 만들어진 고사성어 이다. 후한 시대는 환관들의 득세로 인해 충신들이 힘을 펼치지 못한 시절이기도 했다. 그러나 당상관이었던 이응은 그러한 환관의 권세에 눌리지 않고 정의를 위해 주관을 꺾지 않았던 인물이었다. 이응은 모든 관리들에게 인정을 받았었기에 천하의 모범은 이응이다라고 할 정도였다. 특히 젊은 관리들은 이응을 알게 되면 용문(龍門)에 올라간 것 같다고 하면서 자랑까지했다. 바로 이것이 등용문이라고 한 것이다.

 photo_2019-10-28_03-54-36.jpg

그림4) 명륜당을 오르는 계단인 등용문

 

남쪽의 성균관을 이어받아 이곳에 성균관대학교가 있듯이 북에도 개성에는 김일성종합대학, 김책공업종합대학과 함께 3대 종합대학으로 불리는 고려 성균관이 있다. 남쪽의 성균관대학교의 역사가 조선이 건국하고 성균관을 한양으로 옮겨 온 1398년을 기점으로 개교를 시작한것에 비래 북의 고려 성균관은 이보다 더 빠른 고려에서 국자감을 설치한 992년을 개교 시점으로 보고 있다. 남쪽은 성균관 뒤에 대학교를 붙이고 있으나 북은 그냥 성균관이라는 이름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다. 이는 김일성 주석이 성균관 현지지도 당시에 성균관이란 뜻 자체가 이미 대학교를 지칭하고 있는데 뒤에 다시 대학교를 붙이는 것은 맞지 않다고 지적하여 이름 그대로 대학교를 붙이지 않고 고려 성균관 이라는 이름을 쓰고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