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조선의 언어

김지호

우리말과 글은 우리 민중의 훌륭한 고유 민족어이며 고유 민족글자이다.
우리말은 원래 혈연적 관계를 가지고 있던 한반도 사람들이 쓰던 말로서 원시시대부터 공통된 어휘와 언어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고조선이 건국된 후 수백년 사이에 그 영역은 한반도 사람들이 살고있던 거의 모든 지역으로 확대되었고 사람들의 왕래와 이주가 계속되고 정치, 경제, 문화생활에서의 공통성이 증대된 것은 언어의 공통성도 한층 더 강화되게 하였다.
기원전 3천년대 말기를 전후하여 우리 민족이 기본적으로 형성되자 우리말은 고조선 수도 평양의 말을 기준으로 한 민족어로서 확고하게 자리잡고 발전해 나가게 된다.

과거 우리말이 알타이어 계통에 속한다고 하면서 신석기 시대에 알타이 지방으로부터 주민이동이 있었다고 보는 견해가 있었으나 그것은 고고학적, 인류학적 연구성과들에 의하여 잘못된 견해라는 것이 증명되었다. 우리 민족은 인류 발상의 여명기부터 한반도를 중심으로 하여 연면하게 살아오면서 자기의 고유한 문화를 창조하여 왔으며 따라서 우리말도 우리 땅에서 발생 발전한 것이다.

우리말은 단일 민족인 한반도 사람들의 고유 민족어로서 발전하여 왔다. 우리말은 고대로부터 다른 겨레, 다른 나라 말과는 엄연히 구별되는 특징적인 언어구조를 가지고 있다. 고대 우리말에 대한 기록은 거의 남아있지 않으나 고조선 말기, 삼국 초기의 언어에 대한 자료들을 통하여 일정하게 추측해 볼 수 있다. 부여와 구려, 옥저, 예, 맥, 한,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의 언어와 풍습이 다 비슷하였다는 것으로 보아 당시의 우리말에는 지방 방언의 차이 밖에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은 부여, 구려, 진국(삼한) 등이 다같이 고조선에서 갈라져 나간 나라들이고 한 땅줄기에서 이어져 있었으니 당연한 현상이었다.

‘삼국지’에 진한의 말이 중국 진나라의 말과 같은 것이 있다고 한 것은 진나라의 침입을 계기로 일부 고조선 사람들이 남으로 내려간 사실을 그릇되게 이해하고 몇몇 방언들을 억지로 중국어와 결부시킨 것에 지나지 않는다. 고조선과 진나라는 전쟁을 한 일이 없었다. 진한의 중심 세력인 사로국의 시조로 전하는 박혁거세의 ‘혁거세’는 ‘불구내’(광명이세)라는 우리말을 한자로 옮겨놓은 것이고 ‘박’은 ‘바가지’에서 딴 이름이며 ‘사로’(서벌, 서라벌)도 고유 우리말이라는 사실은 ‘삼국지’의 기록이 잘못된 것임을 증명해 준다.

언어란 여러 세대를 이어가면서 쓰여지는 것으로 고대, 삼국시기의 이두 표기 자료를 통하여 밝혀진 언어구조적 특징으로 고대 우리말의 말소리와 언어구조를 잘 알 수 있다.
고대 우리말의 말소리에서 자음은 예사소리 ㄱ, ㄷ, ㅂ, ㅅ와 울림소리 ㅁ, ㄴ, ㄹ가 기본이었고 아직 거센소리와 된소리는 많이 쓰이지 않고 있었다. 또 모음은 ㅏ, ㅓ와 ㅗ, ㅜ 그리고 ㅣ가 기본을 이루고 ㆍ, ㅡ도 아직 많이 쓰이지는 않았다고 보인다. 그리고 받침소리는 쓰이지 않았으며 겹모음도 쓰이지 않았다.
그러나 양성 모음 ㅏ, ㅗ와 중성 모음 ㅣ, 음성 모음 ㅓ, ㅜ와 중성 모음 ㅣ가 서로 잘 어울리는 모음조화 현상은 하나의 중요한 민족적 특성이었다.

고대 우리말의 어휘는 고유의 독자성을 가지고 있었으며 음절의 구성에서도 대체로 2음절 또는 그 이상의 것이 많았다고 보인다.
그리고 자음은 비교적 고착되어 있었으나 모음은 자유로이 바뀌면서 비슷한 뜻을 가진 다른 단어로 되기도 하였다.
예) 남다:넘다, 맛:멋, 살살:설설:솔솔:슬슬, 작다:적다

고대 우리말의 문법구조를 보면 아직 조사가 발달하지 않았다고 보이며 규정하는 말이 규정받는 말의 앞에 놓였는데 이것은 후세 우리말에도 그대로 계승된 특성이다. 고대 우리말은 이처럼 말소리, 어휘, 문법구조에서 후세 우리말의 민족적 특성을 이루며 발전하였다.


남해 상주 양아리 석각

포항 영일 칠포리 암각화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