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우리나라 음악사와 무용사

 

음악

 

우리 나라에서는 인류사회발전의 초기부터 음악문화가 발생발전하였다.

우리 민중은 이미 원시시대에 거부기 노래와 같은 노동가요들과 뼈피리와 같은 악기들을 창조하였으며 고대에 와서는 공후인과 같은 개인창작의 서정가요를 창작하고 기악과 기타 집단적 가무형식도 창작하였다.

삼국시기에 이르러 향가를 비롯하여 풍요등 여러 종류의 노래들이 창조보급되었으며 가야금, 저대, 퉁소, 장고를 비롯한 40여종의 악기들이 이용되고 독주, 중주, 합주 그리고 관현악, 고취악, 무용반주음악 등 여러 가지 기악형식들이 나왔으며 왕산악, 백결, 우륵 등 우수한 음악가들이 수많은 기악곡들을 창작하였다. 이 시기 음악은 이웃나라들에서의 음악발전에도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특히 일본의 고대음악 문화형성에 큰 영향을 주었다.

발해와 후기신라 시기에는 정치풍자적 경향성을 띈 참요가 새로 나오고 윤무가인 담가를 비롯한 민요들과 도시서정가요 양식인 향가가 창작보급되었다.

고려시기에 이르러 음악은 하나의 통일적인 흐름으로 발전하게 되고 모내기 소리, 물레질 소리와 같은 새로운 노동가요와 사리화와 같은 민요들, 서경별곡, 청산별곡과 같은 국어 서정가요들이 창작보급되었으며 편경, 편종, 방향과 같은 새로운 악기들이 기악에 보충되었다. 15~19세기 전반기에는 노동민요 양산도를 비롯한 민요들과 농악 그리고 신아우 등의 민간 기악양식들, 사당패들의 사거리를 비롯하여 긴잡가, 단가, 판소리, 가곡, 가사, 시조, 영산회상 등의 민간 및 도시 직업음악, 기타 음악이론 악학궤범및 음악표기법(전간식 악보, 합자보)분야에서 풍부한 유산을 남기었다.

우리 나라 음악은 근세에 이르러 이 시기에 발생한 계몽창가, 창극, 양악대 등 일련의 새로운 음악양식들로 하여 폭넓게 발전하였으며 이에 따라 음악생활이 더욱 풍부하고 다양해져갔다.

나라가 일제침략자들의 완전한 식민지로 전락된 시기에 우리 나라 음악은 일제의 민족문화말살정책으로 하여 정상적인 발전의 길이 억제되고 온갖 진보적이며 애국적인 사실주의 음악이 탄압의 대상으로 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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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학궤범

 

무용

 

우리 나라에서 무용은 일찍부터 발생발전하여 이미 기원전부터 주변나라들에 알려져 있었으며 세기를 두고 전해 내려오면서 여러 가지 갈래의 풍부한 유산들을 남겨놓았다.

고대시기에는 집단적으로 모여 농업 생산활동과 관련한 의식행사를 벌리곤 하였는데 이때에는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다. 이것을 고조선에서는 무천, 부여에서는 영고라고 하였다.

고구려, 백제, 신라시기 무용은 민간무용과 궁중무용으로 나뉘어지며 그 형식과 양상도 독무, 쌍무, 군무와 탈춤, 창춤, 칼춤, 북춤 등으로 다양하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고구려의 동동춤등을 비롯하여 후세에 농악무로 발전한 두레놀이 무용을 들 수 있다.

고려시기에는 무용의 형식과 그 형상수단들이 더욱 발전하였으며 전문적인 무용가들도 많이 나왔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통덕진출전무를 비롯하여 포구락, 헌선도등과 민중들이 창작한 조천무, 처용무, 궁중무용인 북춤을 들 수 있다.

조선 봉건왕조 시기에는 춤양식이 다양해졌으며 정대업무와 같은 규모가 대단히 큰 작품들이 나왔다.

특히 임진 조국전쟁 시기에는 왜적을 반대하고 봉건통치배들을 반대하는 민중들의 감정이 반영된 민간무용들인 강강수월래, 쾌지나 칭칭나네, 손벽춤등이 창조되었다.

근대의 대표적인 무용작품으로는 물장구춤, 박판춤과 의병들의 투쟁모습을 형상한 군바바춤, 무사의 춤, 의병춤등을 들 수 있다.

일제의 식민지 통치시기 우리의 무용예술은 놈들의 민족문화 말살정책에 의하여 여지없이 짓밟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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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강수월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