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유타국 공주 허황옥​

 

박경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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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로왕릉>
김수로가 남쪽 가야땅에 나라를 세운지 여섯해가 지난 A.D. 48년 7월 27일 조회때에 있은 일이다.
아홉명의 한들이 일제히 머리를 조아리며 자못 신중하게 건의하였다.
 
《대왕께서 이곳에 내려오신지 몇해가 잘되였는데 아직도 좋은 배필을 얻지 못하였습니다. 하늘에 해와 달이 있어 조화가 이루어지고 나라에 거룩한 임금과 배필이 있어 짝을 맞추는것은 하늘이 정해준 법도이니 아직 배필이 없는것은 법도에 맞지 않을가 하오이다. 무엄하나 저희들의 딸들중 얌전한 처녀를 골라 대궐로 들여 배필로 삼으면 어떠한지 대왕의 의도를 알고싶소이다.》
 
아홉 한들이 이렇게 건의하게 된것은 대왕의 배필이 없는 기회에 저저마다 저들의 딸을 왕비로 들여보냄으로써 임금의 외척으로 되여 권력을 나누어가지려 하였기때문이였다. 그러나 김수로는 뜻밖의 말을 하였다.
 
《짐이 이곳에 내려오게 된것은 천명에 의한것이니 짐의 배필을 맞이하는것 역시 천명이요. 그대들은 걱정할것없노니 다들 그만 물러가라.》
 
그런 다음 무슨 짚이는데가 있어서인지 신하인 류천한을 시켜 경쾌한 배에다가 준마를 태우고 망산도에 가서 누군가를 기다리게 하였다. 그리고 또 신귀한을 시켜 승점이라는 곳에 가있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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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사석탑: 허왕옥이 가져왔다고 전해지는 석탑>
 
그런데 얼마 있다가 갑자기 바다 서남쪽 모퉁이로부터 붉은 비단돛을 달고 붉은 기치를 펼친 배가 나타나 북쪽으로 향해 오고있었다. 류천한 등이 먼저 섬우에서 홰불을 드니 그 배는 점점 가까이 오는것이였다. 신귀한은 이것을 바라보고 대궐로 달려와 임금에게 보고하였다. 김수로는 보고를 받자 대단히 기뻐하며 곧 아홉 한들을 시켜 그 배를 마중하고 그들을 곧추 대궐로 데리고오도록 하였다. 그런데 배의 녀주인 허황옥은 그것을 단호히 거절하였다.
 
《내가 너희들을 평생 처음 보는 터에 어찌 함부로 경솔하게 따라가랴!》
 
류천한 등이 돌아와서 허황옥의 말을 대왕에게 전하였다. 대왕이 그 말을 옳게 여겨 직접 관리들을 거느리고 거동하였다.
김수로는 대궐로부터 서남쪽 60보가량 되는 산가장자리에 장막을 치고 허황옥을 기다렸다.
한편 허황옥은 산바깥쪽 별포나루목에 배를 대고 내렸다. 그리고는 높은 산꼭대기에 올라가 입었던 비단바지를 벗어 산신령에게 바쳤다. 이윽고 허황옥이 김수로가 있는 행재소(임금의 림시거처지)가까이 오자 대왕이 마중나와 함께 손잡고 장막으로 들어갔다.
이어 김수로는 측근신하에게 허황옥을 따라온 신하, 노비 등에 대한 분부를 내렸다.
 
《시중보는 신하들은 각각 한방씩 정해주어 들게 하고 나머지 노비들은 한방에 대여섯사람씩 들게 하라.》
 
그리고 음식을 대접하였고 겸하여 무늬놓은 자리와 채색자리에서 자게 하며 그들이 가지고온 의복과 비단, 보물들은 군사들을 시켜 지키게 하였다.
김수로는 행재소에서 허황옥과 함께 잠자리에 들었다. 그러자 허황옥이 조용히 말하는것이였다.
 
《저는 아유타국의 공주로서 성은 허이며 이름은 황옥이라 하옵니다. 나이는 열여섯이오이다. 본국에 있을 때 부왕과 왕후께서 저에게 말씀하시기를 <너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어제 밤 꿈에 함께 하느님을 만났는데 가라국의 시조왕 수로는 하늘이 내려보낸 사람이다. 그런데 그가 그 나라에 군림하여 아직 배필을 정하지 못하고있으니 그대들은 공주를 보내여 그의 배필을 삼게 하라 하는게 아니겠니. 꿈을 깬 다음에도 그 말이 귀에서 사라지질 않는구나. 그러니 너는 빨리 여기를 떠나 그에게로 가야겠다.> 이렇게 되여 보잘것없는 이 몸이 외람되게도 존귀한 얼굴을 뵈옵게 되였습니다.》
 
《짐은 나면서부터 자못 현명하여 미리 공주가 멀리서 올것을 짐작하였소. 신하들로부터 왕비를 맞아들이라는 청이 있었으나 끝내 들어주지 않았는데 이제 현숙한 그대가 절로 왔으니 이 몸으로서는 커다란 행복이로다.》
 
드디여 대왕과 허황옥은 수레를 함께 타고 궁궐에 들어갔다. 황옥이 타고온 배는 돌려보냈는데 배사공들 열다섯명에게는 각각 쌀 열섬, 베 30필을 주었다.
 
이것이 《가락국기》에 실린 김수로왕이 허황옥을 왕비로 맞이한 이야기이다. 여기서 말하는 《하느님의 계시》요 뭐요 하는것은 왕권을 신비화하기 위한것이며 이밖에 후세에 윤색된것이 적지 않다. 하지만 일정한 력사적사실이 반영되여있다.
 
아유타국이란 가야계통 이주민집단이 일본렬도 조선동해연안 혹은 규슈에 세웠던 나라로 보인다. 설화를 통하여 본국인 대가야(금관가야국)는 이러저러한 형태로 일본렬도에 건너간 집단들을 틀어쥐려 하였다는것을 알수 있다. 김수로가 허황옥을 맞이하는 장면은 바로 이 과정을 반영하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