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없이 우쭐대던 사나이

신성호

고려 중엽 나라의 도읍 개경의 마바리골에는 우씨성을 가진 말장사군이 있었다. 말장사군이라 해서 말을 전업으로 파는 큰 장사군은 아니고 기껏 성밖의 시골에 나가 병든 말이나 여윈말을 눅게 사다가 한동안 집에 매두고 잘 먹여 털에 윤기가 돌면 마전에 내다 팔아 떨어지는 돈으로 입에 풀칠이나 하는 정도였다.

마바리골이란데가 하루 벌어 먹고사는 가난한 마바리군들이 많이 사는 마을인데 그 마을에서 나서자란 우씨는 일찍이 부모들을 잃고 몇 해 전에는 장가든지 한 해만에 아내 마져 열병으로 빼앗긴 불쌍한 홀아비였다.

그런 우씨에게 정을 주고 싶어 하는 여인이 나타났다. 그 여인은 마바리골에서 나서자랐는데 이태 전 약혼한지 며칠 만에 사내가 급병으로 잘못되었다.

이 여인은 아직 스무 살로서 자기보다 몇 살 우인 우씨를 마음에 두고 있었다. 우씨한테 시집을 가리라 마음을 가지게 된 것은 한 마을에서 소꿉시절부터 함께 자라다보니 사내의 장점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여인에게는 키도 크고 궂은일, 마른일을 가리지 않고 몸을 적셔 일하는 사내의 장점이 크게 돋보였다. 뿐더러 아내가 열병에 걸렸을 때 무서운 병을 아랑곳하지 않고 돌봐준 그 인정미에도 마음이 끌렸다. 그런 사내라면 가나할지라도 웃으며 살 수 있을 것이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좋은 점 못지않게 부족점도 있었다. 그것은 멋없이 우쭐대기 좋아하고 남의 여인들을 덮어놓고 속되다고 천시하는 버릇이었다.

바로 그 때문에 그는 가끔 마을 여인들의 말밥에 오르고 있었다. 결함없는 사람이 어데 있으랴마는 제일 못된 그 버릇 떼 주지 않는다면 그가 한 생 남의 집 여인들의 손가락질을 면할 수 없을 것이었다. 어떻게 해야 그 사내의 못된 버릇을 때줄 수 있을까. 그에게 시집을 가서 그의 결함을 고쳐주려 한다면 이가 잘 먹어 들지 않을 수 있었다.

대개 사내들은 안사람이 하는 조언을 바가지나 긁는 성가신 소리로 여기는 까닭에 그 한테 시집을 가기 전에 미리 손을 써서 나쁜 버릇을 떼 주어야 앞일이 잘 될 것이다. 시급히 그의 나쁜 점을 고쳐주려면 병자한테 고통스럽게 침이나 뜸을 놓듯 사내의 가슴을 허비더래도 모진 수를 써야 하고 술법을 쓰는 여인의 얼굴이 뜨겁더래도 교태를 부리며 그 계책을 꼭 실행해야 할 것이다. 그한테 시집가서 한 집안의 화목을 이룰 수만 있다면 그 어떤 모진 수라도 망설이지 말아야 한다.

바로 그 모진 수가 남녀간의 인연을 굳게 맺어주는 월로승이 아니겠는가. 남녀 사이에 부부의 인연을 맺어주는 붉은 끈인 월로승은 월하로인이 가지고 있는데 바로 그 끈으로 남녀 한 쌍을 동여매면 금슬 좋은 부부로 한 생을 즐긴다고 하였다. 여인은 모진 수를 쓸 만단의 차비를 갖추었다. 값진 비단옷을 차려입은 그가 분단장까지 하고나서니 워낙 보름달같이 환한 얼굴이라 거리가 다 환해지는 것 같았다. 멋진 돈궤짝을 옆에 낀 여인은 눈요기라도 하려는 듯 지켜보는 사내들을 거들떠보지고 않고 곧장 저자를 찾아갔다.

말을 팔고사는 저자거리에서 여인은 대뜸 우씨를 알아보았다. 우씨가 두 마리의 검은빛가라말을 가지고있는데 두 놈이 다 등굽은 곰배말이었다. 곰배말은 사람이 타고 다니기보다 마차를 끄는데 접합한 말이었다. 빨리 뛰지 못해도 힘이 좋고 이악하여 짐마차를 잘 끄는 곰배말은 군마 못지 않게 비쌌다. 허나 우씨의 곰배말은 털이 꺼칠해서 불품이 없었다. 비루먹은 말을 사다가 그만큼 만든 것만도 대단한 품이 들었을 것이다. 여인은 일부러 요염한 웃음을 짓고 우씨앞에 멈춰서서 그와 눈길이 마주치기만을 기다렸다.

한편 우씨는 곰배말을 사겠다는 상대가 나타나지 않아 속을 썩이고 있었다. 벌써 며칠째 말을 팔지 못하고 있으니 이러다 밥을 굶을 수 있었다. 곰배말을 살만 한 사람을 찾아 두리번거리던 우씨는 흠칫 놀랐다. 선녀같은 여인이 자기앞에 서있기 때문이었다.

어이하여 저 여인이 정찬 눈길로 나를 바라보는것일까. 얼은 고개를 숙인 우씨는 마음이 싱숭생숭해져 여인에 대한 생각만이 머리에 가득했다. 꽃같이 고운 저 여인이 혹시 나를  좋아하는 것은 아닐까. 허거픈 웃음이 절로 나갔다. 저 여인과 나를 비기면 봉황에 까마귀격인데 바랄걸 바라야지. 어여쁜 인물만을 가지고도 부자집의 안방마님이 되고도 남을 여인이 이내 속생각을 홈쳐보았다면 앙천대소할 것이 아닌가.

우씨가 도리머리를 하며 그 여인을 슬쩍 엿보니 그는 여전히 고운 눈길을 던지고 있었다. 곁에 딴 사내가 있나 해서 둘러보았으나 곰배말뿐 아무도 없었다, 우씨는 문득 무릎을 쳤다.  아, 그렇지, 저 여인이 내 말을 사려는가보구나, 여인을 부르려던 우씨는 혀를 깨물었다. 돈궤까지 안고 나온 여인이 이따위 곰배말이나 사자고 하겠는가, 우씨가 어쩔줄 몰라하는데 여인이 다가와 먼저 말을 건네는 것이었다.

“오라버니!”

우씨는 뜨거운 불길이 와닿기라도 한 듯 어마뜩 놀라 엉덩방아를 찧었다.

“나… 나보고 그러는거요?”

여인은 한 마을에서 자랐건만 자기를 알아보지 못하는 사내를 굽어보며 억지로 교태를 부렸다.

“그러믄요, 전 손우의 사내들은 다 오라버니라고 부르나이다.”

우씨는 두 눈을 꺼벅이며 물었다,

“헌데 왜 그러우?”

여인은 방글 웃으며 한 걸음 더 바투 다가섰다.

“준마를 사러 하는데 제눈으로야 어찌 좋고 나쁜지를 알겠나요. 듣자하니 오라버니가 말을 잘 가려보는 재간이 있다는데 저를 위해서 거간을 서주지 않겠나이까?”

하더니 여인을 돈궤짝을 열어보였다.

우씨는 돈궤짝안에서 은병(당시 고려 화폐로서 고려의 지형을 본따 만든 1근짜리 돈)이며 시누런 엽전들을 볼 수 있었다. 여인은 “삼한통보”라고 글이 씌여진 엽전꿰미 하나를 꺼내들었다.

“이거면 거간비용으로 적다 하진 않겠지요?”

고운 여인을 위해서라면 그보다 더한 심부름일지라도 마다하지 않으려던 우씨는 돈까지 받고보니 기고만장해졌다.

“아무렴 말을 가려보는데서야 날 당할 사람이 있을라고, 내가 고른 말은 나라님도 부러워할 준마란 말이요. 그러니 나를 믿소.”

여인은 멋없이 우쭐해서 자기를 가리키며 엄지손가락까지 뽑아 보이는 우씨를 보고 속으로  쾌재를 올렸다. 이쯤하면 사내의 코를 꿰였다고 할 수 있었다. 여인은 손을 들어 앞쪽을 가리켰다.

“오라버니! 저기 오동숟가락으로 가물치국 떠먹은 것 같이 얼굴이 새까만 사내 있지요?”

우씨는 양 허리에 손을 얹고 허세를 부렸다.

“ 오 – 숯쟁이같이 새까만 작자! 헌데 저치는 처음 보는 사람이요.”

“저 사내가 고삐를 쥐고있는 털이 붉은빛이 나고 갈기가 검은 말이 어떻나요?”

“ 오, 그 말! 저런 말을 월다말이라고 하는데 허리가 늘씬한게 잘 달리겠네 털에 윤기가 도는게 튼튼한 놈이요, 보아하니 저 작자가 촌바우 같은데 내 그대가 이득을 보도록 눅거리로 흥정해주리다.”

여인을 뒤에 달고 얼굴이 검은 사내에게 다가간 우씨는 거만스레 그의 어깨를 건드리며 말했다.

“ 그 말을 내가 사겠소.”

월다말의 주인은 우씨를 미심쩍하게 바라보며 퉁명스레 대꾸했다.

“돈이나 있어가지고 큰소리우?”

우씨는 두 팔소매를 걷어붙이고 열을 올렸다.

“챠, 이것 봐라, 여기 마전에서 나를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 나보고 돈같은 소릴 한다? 난 풋내기흥정은 모르니 콩이니, 팥이니 할 것 없이 어서 말이나 내놓소.”

이때라고 여인은 우씨에게 귀띔했다.

“말을 타보고 마음에 들면 사겠어요.”

“암, 그래야지.”

여인이 넘겨준 돈궤짝을 받아든 우씨는 으스대며 월다말의 주인에게 분부했다.

“어서, 그 말을 내 누이동생에게 넘겨주게.”

월다말의 주인은 마지못해 말고삐를 넘겨주며 투덜거렸다.

“거 뭐 타보겠다고까지 하면서 꽤 까다롭게 구누만.”

월다말에 올라앉은 여인이 소리쳤다.

“오라버니! 여긴 비좁으니 거리에 갔다와도 되겠지요?”

우씨는 옆에 낀 돈궤짝을 주스르며 거드름을 부렸다.

“아무렴, 어서 그러라고.”

여인은 천천히 말을 몰아 마전을 벗어났다. 그런데 한식경이 지나고 한나절이 돼오는데도 여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이보우, 난 바쁜 사람이요. 더 기다릴 수 없으니 돈이나 내놓소.“

우씨는 망설였다. 어찌 남의 돈을 맡아가지고 본인이 없는데서 함부로 꺼내줄 수 있단 말인가. 월다말의 주인이 자꾸 재촉하기에 돈궤짝을 열지 않을 수 없었다. 하긴 아무래도 치르어야 할 돈이니 똑바로 흥정해서 주면 될것이였다. 돈을 꺼내들던 우씨의 손이 문득 굳어졌따. 엽전이고 은병이고 다 참나무로 깍아만든것이데 누런칠, 흰칠을 한 가짜돈이었다.

우씨의 얼굴도 삽시에 새까매졌다. 아이쿠, 여인이라면 덮어놓고 사리도 분간 못하는 속물인줄 알았는데… 고 요염한 계집이 간사한 계책을 써서 날 무서운 구렁텅이에 쳐넣었구나. 내 그만 계집앞에서 허세를 부렸다가 무슨 꼴이 되었단 말인가.

월다말의 주인이 사색이 된 우씨의 옆구리를 꾹 찌르며 재촉했다.

“돈을 줄 대신 갑자기 범 본 할미처럼 놀라는건 뭐요? 어서 돈을 내놓소.”

우씨는 고대를 푹 떨구었다. 입이 열 개라도 변명할 수 없으니 꼼짝 못하고 얼씨라는 모욕속에 얼죽음을 당하게 되었구나. 우씨는 야단을 치는 월다말의 주인앞에 무릎을 꿇고 땅바닥에 머리를 조아렸다.

“이보시오, 사실 말을 타고 간 여인은 생판 모르는 계집이고 그가 준 궤짝안의 돈은 전부 가짜돈이요, 여인들을 어리석다 깔보던 습관 때문에 간특한 계집의 꾀임에 빠져 그대의 말을 주었소 그려, 돌이킬 수 없는 죄를 저질렀으니 날 때려도 좋고 죽여도 할 말이 없소.”

월다말의 주인은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우씨의 뒤덜미를 움켜 쥐었다.

“이놈아, 남의 큰 재산을 없애치우고도 그런 수작을 하느냐, 아무리 궁줄에 들었기로서니 네놈이 집이야 쓰고 살겠지! 그것으로 말값을 보상하면 돼.”

월다말의 주인에게 등을 떠박질리며 집을 향해 비칠걸음을 치는 우씨는 눈앞이 캄캄하였다. 이제는 입에 풀칠은커녕 한지에서 굶어죽게 되는 길뿐이었다.

한편 초죽음을 당한 듯 넋을 잃고 비칠걸음을 하는 우씨를 사정없이 떠밀치며 당장 변을 칠 듯 울러메는 월다말의 주인은 속으로 껄껄 웃고있었다.

사실 그는 월다말을 타고 사라진 여인의 사촌오빠로서 우씨의 고약한 버릇을 떼줄 모진 수를 지지해주고 떠밀어준 말하자면 이번 일에서 월하로인의 역을 맡은 귀인이었다. 집에 이른우씨는 본색을 털어 놓은 여인의 오빠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다시는 여인들을 깔보지 않고 멋없이 우쭐대지 않겠다는걸 거듭거듭 맹세했다.

이렇게 되어 동네여인한테 장가를 든 우씨는 그와 오래오래 살면서 자손들에게 그때의 일을 교훈삼아 들려주며 그들이 겸손하고 정직하게 처신하도록 가르쳤다고 한다.

전철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