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조선비단​
박경순

《비단은 우리 나라의 전통적인 직물입니다.》

조선 비단은 가볍고 질길 뿐 아니라 아름다운 무늬와 부드러운 손맛을 가지고 있어 세상에 널리 알려진 우수한 견직물의 하나이다.

비단의 발상지로 널리 알려진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원시시대 말기와 고대 시기에 베, 모시와 함께 질 좋은 비단을 생산하였다. 평양시 남경유적의 집터에서 발굴된 질그릇 밑창들에는 누에가 즐겨 먹는 뽕나무잎을 그려 넣은 것이 많으며 황해북도 봉산군 지탑리 유적에서도 누에를 그린 질그릇과 누에를 형상한 조각품들이 발굴되었다. 이러한 사실들은 우리나라에서 매우 오래전부터 누에치기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비단실로 쓰는 고치실은 대체로 석잠 또는 넉잠 자는 누에가 뿜어낸 고치실이 가장 적합한 것으로 알려졌다. 예로부터 우리나라에서는 다른 나라들과는 달리 석잠 누에를 키워왔으며 석잠 누에가 뿜어낸 고치실로 비단 천을 짰다. 우리나라 누에가 석잠누에였다는 것은 《산림경제》(조선후기 실학자 홍만선이 농업기술과 일상생활에 관한 사항을 서술한 농업서. 가정생활서)와 《고사신서》(조선후기 문신·학자 서명응이 사대부와 관리 및 일반 선비들이 항상 기억해 두어야 할 사항을 기록하여 1771년에 편찬한 유서)를 비롯한 옛 문헌들에 밝혀져 있는데 이 책들에서는 조선의 토종누에가 세번 잠자기를 한다고 밝히고 있으며 습기와 연기를 싫어하는 조선 누에의 특성에 대하여 전하고 있다.

우리나라 석잠 누에는 자라는 기간이 짧고 병에 잘 걸리지 않으며 생활력이 매우 강하였다. 특히 우리나라 석잠누에 고치실로는 부드럽고 가벼운 비단 천을 짤 수 있으며 물감들이기 쉽고 물들이면 아주 고운 것이 장점의 하나였다. 우리나라의 비단이 석잠 누에의 고치실로 짠 비단필이라는 것은 옛 문헌에 남아있는 기록 뿐아니라 실지로 선조들이 남겨놓은 비단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평양시 락랑구역 일대의 고분들에서는 적지 않은 고대 비단들이 나왔는데 감정 결과 실이 아주 가는 석잠누에의 고치실로 짠 비단이라는 것이 확증되었다.

고대시기의 조선 비단으로는 두겹실로 짠 것을 비롯한 여러 가지 비단이 있으며 고구려 시기에는 무늬를 넣은 릉직, 금실 등을 섞어 짠 금, 라를 비롯한 각종 고급비단들이 생산되었다. 고려 시기에 이르러 비단생산기술은 더욱 발전하고 그 종류도 훨씬 늘어났을 뿐아니라 질 또한 우수하여 주변 나라들은 물론 멀리 중근동에까지 수출되여 세계에 《고려비단》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조선왕조 시기에는 전국각지에 뽕나무를 많이 심고 물이 좋은 곳마다 이름난 비단생산기지들을 꾸리였다. 그 가운데서 특히 유명한 지방은 평안북도 영변, 평안남도 성천, 함경남도 금야, 정평, 고원, 리원, 홍원, 북청, 단천, 함경북도 길주, 명천, 강원도 철원, 황해북도 수안, 전라남도 나주, 경상북도 안동 등이다. 이렇게 조선비단은 오랜 역사를 가진 독자적이며 특색있는 비단이다. 오늘도 우리 공화국의 비단생산기지들에서는 갖가지 비단 천들이 생산되어 인민생활 향상에 적극 이바지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