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민족 고대 과학기술

김지호

고조선 시기인 기원전 3000년대부터 우리나라 천문학의 기초가 축성되었다. 고대 천문학의 발전 면모는 고인돌 덮개돌에 새겨진 천문도를 통하여 엿볼 수 있다. 평안남도 증산군 용덕리, 평원군 원화리, 함경남도 함주군 지석리 등 고조선 유적 각지에 분포된 200여 기의 고인돌 덮개돌에는 술잔처럼 생긴 크고 작은 둥근 구멍이 패여져 있는데 당시의 별자리 그림을 새겨넣은 것이다. 그 중 어떤 것은 5~6가지의 크기로 표시되었는데 근대 천문학에도 육안으로 볼 수 있는 별들을 1~6등급으로 나누어 표시한 것과 거의 같다고 볼 수 있다.

별자리 그림을 보면 고인돌 축조 당시 북극 근방의 별들을 표시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5,000년 전의 증산군 용덕리 고인돌 덮개돌에는 중심부에 용별자리 알파별(당시의 북극성)을 새기고 그 주위에 큰곰자리, 작은곰자리, 알파별(현재의 북극성) 등으로 보이는 80여 개의 크고작은 별을 5가지 크기로 나누어 표시하였다. 제일 큰 구멍은 직경 10cm, 깊이 4cm이고 제일 작은 구멍은 직경 1.5cm, 깊이 0.5cm이다.
일부 고인돌에는 은하수를 그렸다. 이처럼 당시 사람들은 별과 별자리에 대한 일정한 지식을 가지고 별자리를 사실에 가깝게 표시하였다. <후한서> <삼국지>에 우리 나라 사람들이 ‘별자리를 잘 관측하여 그 해 농사의 흉풍을 미리 안다.’고 한 것은 고조선에서 천문학과 기상학이 상당히 높은 수준으로 발전되어 있었고 그것이 농업생산에 미치는 영향을 일정하게 알고 있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고조선에서는 의학도 발전하였다.

중국의 오랜 의서 <황제소문>에는 동방, 즉 고조선에서 석침을 종기 치료에 썼다는 것이 밝혀져 있으며 <산해경>에도 석침에 관한 기록이 있다. 침술이 발전되어 있다는 것은 경혈과 그에 대한 자극치료가 인체 각 부분의 생리적 기능을 조절하는데 중요한 작용을 한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것은 한의학에서 중요한 침구술이 고조선에서 이미 임상치료에 도입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고조선에서는 약물치료법도 일정하게 발전하고 있었다. 이로 인해 고조선에는 장수하는 사람이 많았으며 고대 중국 사람들은 고조선을 두고 ‘군자불사지국’이라고 불렀고 ‘불사약’, ‘불로초’를 구하려고 고조선에 사람들을 보내기까지 하였다.

청동기의 제조를 통하여 비록 경험적인 것이기는 하지만 고조선 사람들이 화학지식도 적지 않게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고조선의 청동기는 대부분 ‘동-석-연(구리-주석-아연)’의 3원소 합금인데 용도에 따라 석의 비율을 조절함으로써 실효성을 높였다. 기원전 3000년대 중엽의 비파형 창끝은 동 80.9~86.8%, 석 6.2~6.5%, 연 5.2~10.1%로 구성된 것으로 단검에 필요한 강도를 맞춘 것이다. 같은 시기의 청동 단추는 동 76%, 석 15%, 연 7%로 고운 빛깔이 나게 한 것이다. 연은 청동기의 주조성을 높이기 위하여 첨가한 것으로 이 역시 연이 없는 다른 나라 고대 청동기에 비해 우수하다.

고조선 후기에도 3원소 합금으로 청동기를 만드는 전통은 계승되었다. 이 시기에 와서는 다양한 청동기가 만들어졌으며 그 생산량도 비약적으로 늘어났다. 세형동검, 세형동모, 놋과, 놋비수, 도끼, 끌 등 무기류와 공구류, 각종 마구류와 수레부속, 잔줄무늬 거울, 장신구, 솥, 대야 등이 제작되었고 화학조성이 더 발전하였으며 형태가 더 다양하고 세련되어 예술성이 높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