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친일역사가들은 어떻게 우리를 지배했는가

<우리 안의 식민사관 : 해방되지 못한 역사, 그들은 어떻게 우리를 지배했는가?>

이덕일, 2014, 만권당

 

223090225g.jpg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전범자들을 ‘일본의 평화·번영의 주춧돌이 된 순직자’로 기리면서 야스쿠니 신사를 버젓이 참배하고 독도와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관한 진실을 우롱하며 재무장을 부르짖고 있는 기저에는 한·일 고대사에 대한 전도된 인식이 자리잡고 있다고 필자는 확신한다.

하지만 그런 인식이 일본 주류에게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2015년, 서울대 교수 출신인 이인호 한국방송(KBS) 이사장이 조부의 친일 경력에 대한 궤변성 해명으로 거센 비판을 받았다. 그는 자신의 조부가 친일파라면 일제 시대 중산층이 모두 친일파라는 희한한 논리를 폈다. 또한 그해에 <중앙일보> 주필 출신으로 국무총리 내정자로 지명된 문창극씨는 과거 서울의 한 대형 교회에서 한 강연 때문에 낙마했다. “조선에 대한 일제의 식민 지배는 ‘하나님의 뜻’이었다.”라는 궤변 때문이었다.

 

2019년 가장 큰 국내에서 사회적으로 논란이 컸던 사안 중 한 가지는 일본 정부의 대한 수출규제로 촉발된 “역사전쟁”과 “한일군사보호협정 폐기”를 둘러싼 “총성 없는 한일 갈등”이다. 

한때 일본 정부와 친일적폐 자한당류에 대해 SNS상에는 하루에도 수천, 수만 건씩 이에 대한 주장과 비판과 격한 감정과 행동이 나타났다.

 

이런 시국이 되어서야 필자는 “‘식민사학은 극복되었다’라고 말하는 역사학자는 그대로 식민사학자로 분류하면 정확하다”라고 주장하는 이 책을 기억하고 책장에서 꺼내 읽어야만 했다.

 

“식민사학자들과 그 추종자들은 그동안 식민사관을 비판하는 학자들을 온갓 수단을 써서 매도하고, 공격해서 학계에서 추방하거나 매장시켜 왔다.”

공개 학술 세미나에서 “단재 신채호는 네 자로 말하면 정신병자이고, 세 자로 말하면 또라이”라고 말한 한 학자는 지난 정권에서 한국사 관련 예산을 연간 250억 원씩 집행하는 사업단 단장이었다.

 

뤼순감옥에서 쓸쓸하게 옥사한 단재 신채호 선생이 이들에게는 “정신병자이사 또라이”였던 반면 이병도는 “국사학계의 태두이사 최초의 근대적 역사학자”로 떠받들어졌다.

그렇다면 작금의 상황이 일변해서 “일본의 극우파들이 다시 이땅을 침략하는 상황이 재연되면 이들은 어느 쪽에 설 것 같은가? 시절이 하 수상한 이 시점에서 이 문제를 더 이상 침묵 속에 가둬둘수 없는 까닭이 여기 있다.”

 

이 책은 2014년 발간되자마자 법정소송에 휘말렸다. 그만큼 역사학계에서는 한때 최고의 화두를 가져다준 책이다.

그후 3년 동안 <우리 안의 식민사관>은 ‘환상의 책’이었다. 

책을 구하고 싶다는 독자들의 갈증은 엄청났지만 시중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다. 

 

책의 본문에 식민사학자로 언급된 김현구(고려대 명예교수)가 저자 이덕일을 명예훼손으로 걸고, 책도 출판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기 때문이다. 

난데없이 법정에 서게 된 책과 저자에 대한 소문과 화제는 일파만파 퍼져나갔지만, 책은 찾을 수 없었다. 

 

그리고 3년 만에 비로소, 법원의 정의로운 판결이 내려졌다. 대법원이 2017년 5월 11일 . 김현구 전 고려대 교수를 식민사학자라고 비판한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에게 무죄 확정판결을 내렸다.

<우리 안의 식민사관>의 출판금지 가처분 신청 결정도 취소된 것이다. 완벽한 정의의 승리였다. 

 

그리고 3년간의 지난한 법정 투쟁 과정까지 덧붙인 개정판이 선보일 수 있게 되었다.”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소장의 <우리 안의 식민사관>은 식민사관이 지배하는 한국의 현실을 통해 ‘해방되지 못한 역사’를 다룬 책이다. 아베 신조와 비슷하게 역사의식이 ‘특별한’ 사람들의 여전한 정신적 토대가 되고 있는 식민사관의 문제를 날카롭게 파헤치고 있다. 살아 있는 식민사학자(의 후예)들의 실명을 거론하고 있는 데서 저자가 식민사관의 문제를 얼마나 심각하게 여기는지를 잘 알 수 있다.

 

이 책 저변에 깔려 있는 저자의 문제 의식은 “역사 침략은 영토 침략의 전초전”이라는 표현에서 잘 드러난다. 저자는 한국이 굳이 태국이나 필리핀 역사를 왜곡할 리가 없다는 말을 하면서 영토 침략의 속셈이 없으면 역사 침략에 나설 이유가 없다고 주장한다. 중국이나 일본이 아무 이유 없이 한국 고대사 침략에 나설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 역사에 대한 중·일의 역사 침략은 각각 ‘동북공정’과 ‘식민사관’ 등으로 통칭된다. 

 

동북공정은 중국의 역사 침략 야욕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안이다. 문제는 이에 대응하기 위해 우리 국민 세금으로 만든 조직인 동북아역사재단이다. 저자는 2012년 6월 19일 경기도교육청 소속 역사 교사 17명이 각종 연구 자료 등을 참고해 제작한 <동북아 평화를 꿈꾸다>라는 자료집에 대한 이 재단의 비판을 신랄하게 꼬집는다.

 

“동북아역사재단이 그 이름처럼 동북공정에 맞서는 이론을 연구하라는 본연의 임무에 충실한 조직이었다면 경기도교육청 선생님들도 고맙게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러나 동북아역사재단이 동북공정 국내 지부라는 사실은 이제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사실이기 때문에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다.”(152쪽)

 

저자는 동북아역사재단의 역사 인식이 갖고 있는 가장 큰 문제점이 ‘간도 문제’라고 본다. 저자는 동북아재단이 간도가 과거 조선 영토였다는 문서나 지도가 나오면 광분해서 비난하기 바쁘다며 날선 언어로 비판한다. 동북아재단이 ‘간도 영유권’이란 용어만 나오면 적대감을 드러낸다면서 그들의 역사 관점이 정확하게 매국·매사로 일관되어 있다고 꼬집는다.

 

저자는 동북아재단의 관점이 갖는 또 다른 문제점을 고조선과 위만조선의 도읍지가 평양이었다는 것, 곧 낙랑군이 평양에 있었다고 보는 데에서 찾는다. 이러한 논리에 따르면 평양을 비롯한 한반도 북부는 중국사의 영역이 된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와 같은 논리의 출발점에 일제 식민사학이 자리 잡고 있다. 저자에 의하면 동북공정의 핵심은 한나라가 고조선을 멸망시키고 세웠다는 식민 통치 기구 한사군의 중심지인 낙랑군이 평양에 있었다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사기>의 서술에 나오는 ‘수성현’을 황해도 수안군으로 규정하고 만리장성을 황해도까지 끌어들이고 있는 점이다.

 

수성현을 수안군이라고 처음 주장한 이는 일제 식민사학자 이나바 이와키치라고 한다. 이 논리를 추종해 낙랑군의 황해도 수안군설을 식민사학계의 정설로 만든 게 일제 식민사학의 태두인 이병도다. 

이러한 사실들에 두루 근거해 저자는 중국 동북공정의 뿌리도 일제 식민사학에 맞닿아 있다고 주장한다. 결국 중·일 역사 침략의 밑바탕에 일제 시대에 정립된 식민사학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일제 식민사학은 나름의 사관을 탄탄히(?) 갖추고 있다. 

‘일선동조론’과 ‘한국사 정체성론’ 같은 논리적 토대가 있다. 일선동조론은 한국인이 미개하므로 같은 조상을 둔 일본이 지배해주는 것이 한국인에게 은혜를 베푸는 것이라는 의미가 있다. 

이와 동전의 양면을 이루는 것이 ‘한국사 타율성론’으로도 불리는 한국사 정체성론이다. 한국인들은 독자적으로 역사나 사회를 발전시킬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필자의 기억에 의하면, 1960~70년대 초등학교 등 정부의 국정교과서에는 이러한 식민사관에 기초하여 한민족의 역사를 수동적이고 외세의존적이며 무능혁하게 가르쳤다.

 

저자는 이러한 논리적 토대를 바탕으로 나온 ‘한사군 한반도설’, ‘임나일본부설’ 등을 조선총독부에서 만든 식민사관의 핵심으로 규정한다. 전자는 ‘고조선 한반도설’로, 후자는 ‘<삼국사기> 초기 기록 불신론’으로 이어진다. 

쓰다 소키치와 이나바 이와키치 등의 일본인 학자들이 창안하고, 해방 후에 제자인 이병도를 정점으로 이 땅의 여러 식민사학자들이 이 이론들을 그대로 추종하거나 변형시켜 식민사관을 유지해오고 있다.

 

저자에 의하면 <삼국사기> 초기 기록 불신론은, 고대 일본이 임나일본부를 통해 한반도 남부를 지배하고 있는 것처럼 서술하고 있는 <일본서기>의 기록을 뒷받침하기 위해 나온 것이다. 

관련 내용이 오로지 <일본서기>에만 등장하는 임나일본부설을 정설로 굳히기 위해 삼국시대 정사(正史)인 <삼국사기> ‘신라본기’ 기록을 가짜로 모는 작업에 심혈을 기울인 것이다.

 

일제 시대 이후 형성되기 시작한 식민사학자들의 계보는 면면하고 탄탄하다. 특히 반민족적인 식민사관으로 무장하고 특정 학맥 카르텔로 똘똘 뭉친 고대사학계의 ‘마피아’들은 ‘전횡’으로 불러도 좋을 정도로 그 폐해가 심각해 보인다. 

최근까지 한국 고대사학계에서는 <삼국사기> 초기 기록을 인용해 논문을 작성하면 그 자체가 게재 탈락 사유였다고 한다. 곧이 들리지 않을 만큼 충격적이다.

 

일제의 식민사관이 21세기까지 한반도에 유령처럼 떠도는 이유는 1945년 일제 패망 이후 국가를 미국에 의존하면서 국내에서 친일파가 척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승만과 박정희 등 역대 위정자들과 기득권자들은 자신들의 사적 이익과 권력을 위해 국가적, 민족적 과제를 뒤로 하고 친일파와 매국노들이 한국에서 활기차도록 내버려두었을 뿐 아니라 국가의 요직에 중용해왔기 대문이다.

해방 후 74년이 더 지났지만, 여전히 “반민족행위자”에 대한 역사적, 정치적, 법적 단죄와 처벌이 대한민국의 국가적 과제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국가의 주인인 주권자들이 노골적인 친일파와 매국노, 친일파와 매국노와 몰래 손잡고 친일파 척결을 방해하는 위정자들을 가려내는 혜안이 적극적으로 필요한 시대이다.

 

 

[2019년 11월 1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