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대동강변에 위치한 ‘부벽루’와 ‘을밀대’

최현진

나훈아의 노래 ‘대동강 편지’에 평양의 명소 두 곳이 나온다. 1절에서는 ‘을밀대’ 2절에서는 ‘부벽루’가 나온다.
을밀대와 부벽루는 둘 다 대동강을 바라보는 같은 지역에 있어 같은 시대에 지어진 건물처럼 들릴 수 있으나 을밀대는 고구려 후기 지어진 군사적 시설이고 ‘부벽루’는 고구려 중기 창건된 영명사에 부속된 정자로 차이가 있다.
다만 두 곳이 모두 대동강을 바라보는 아름다운 지역에 자리잡고 있고 ‘을밀대’는 군사적 시설이긴 하지만 사방을 볼 수 있는 망루의 기능을 담당했기에 평시에는 ‘부벽루’와 같이 경치를 조망할 수 있는 정자의 역할도 수행한다. 이 두 곳은 모두 평양 8경중 하나로 최고의 경치를 자랑하는 곳이다.

그림1> 을밀대

‘을밀대’의 유래는 다양한 설화가 존재하는데 을밀선녀가 이곳의 아름다움에 반해 하늘에서 내려와 놀았다는 설화가 있고, 을지문덕의 아들인 을밀 장군이 이 곳을 지키며 사웠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외에도 순 우리말인 ‘읏미르터’ 혹은 ‘읏말이언덕’을 이두로 음차한 설이 있다.
‘부벽루’의 원이름은 영명사의 이름을 따 ‘영명루’라 불렀다. 그러나 12세기 고려시대에 평장사 이오가 이 정자의 풍경이 마치 대동강에 떠있는 것 같다하여 ‘부벽루’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그림2> 부벽루

부벽루는 조선시대에는 진주 촉석루, 밀양 영남루와 함께 조선 3대 정자로 불렷으며 수맣은 시인 묵객들이 찾아와 시와 노래로 부벽루의 아름다움을 남겼다고 한다.
한편 부벽루 근처 청류벽에는 고구려 시조인 동명성왕이 기린을 길들였다는 기린굴과 기린을 타고 승천했다는 조천석이 있었다는 설화가 내려온다. 2011년 북쪽의 사학계에서는 이 부벽루 주변에서 실제 기린굴로 보이는 유적을 발굴하였다고 한다.
부벽루와 을밀대는 북의 국보 17호와 19호로 각각 지정되어 있다.

그림3> 대동강에서 보이는 부벽루와 을밀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