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여년전의 치욕을 되풀이해서야 되겠는가?
러일전쟁 직후인 1905년 7월 29일 당시 일본 총리 가쓰라와 미 육군 장관 태프트가 도쿄에서 미국과 일본 사이의 소위 <가쓰라-태프트 협정>을 각서교환의 형식으로 비밀리에 체결하였다. 이 비밀 협정의 주요 골자는 일본이 필리핀에 대한 미국의 식민지배를 인정하고, 미국이 일본의 조선 침략에 적극 협력하며 조선에 대한 식민지배를 인정한다는 것이였다. 이를 시작으로 일본은 그해 8월 영국과 제2차 영일동맹을, 9월 러시아와의 포츠머스조약을 체결함으로써 조선에 대한 식민지배를 세계 열강들로부터 인정받게 되었다. 이로부터 일본은 불과 몇 달 후인 11월 17일 <을사늑약>을 강요해 조선의 외교권을 강탈하고 내정 전반에 대한 감독과 지배의 권리를 빼앗았으며 미국의 협력과 비호 아래 한반도에 대한 침략을 본격화했다.
미국은 <을사늑약>이 날조된 후 조선에 대한 일제의 식민통치를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지원하였다.
당시 고종이 이러한 미국의 강도적 속성을 모르고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 제1조에 규정된 미국의 기만적인 주선에 기대를 걸고 1905년 11월 26일 당시 미국에 있던 미국인 헐버트를 통해 <을사늑약>이 총칼의 위협과 강요에 의한 것으로 무효임을 선언한다는 것을 미국 정부에 전하도록 했으며 주프랑스 조선공사 민영찬으로 하여금 같은 취지의 내용을 미국 정부에 전달하도록 했다.
그런데 헐버트가 고종황제의 친서를 전하기 위해 미국 대통령 루즈벨트를 찾아갔으나 루즈벨트는 그를 만나주지조차 않았으며 그 어떤 요청도 거절했다. 도리여 미국은 고종황제 특사 헐버트를 외면한 바로 그날 이 사실을 주미일본공사 다까리하에게 알려주면서 고종의 특사 파견 문제와 관련해서 일본정부가 조선문제를 잘 처리할 것을 권고하기까지 하였다.
한편 민영찬의 요청을 받은 당시 미 국무부장관 루트는 민영찬의 요청이 있은지 열흘이 넘은 1905년 12월 21일에 가서야 고종황제의 요청을 들어줄 수 없다는 답변을 통보했다. 이때 루트는 자기의 답변에서 한국 정부가 1904년 2월 23일 조약과 8월 22일 조약에서 일본에 많은 특권들을 내주었고 한국 정부 자신을 일본 정부의 완전한 보호아래 둔 것이기 때문에 조미조약의 조항을 적용한다는 것은 완전히 불가능한 일이라고 밝혔다.
미국의 이러한 태도는 <조미수호통상조약> 제1조에서 ‘만약 타국이 불공경모(不公輕侮)하는 일이 있게 되면 일차 조지(照知)를 거친 뒤에 필수상조(相助)하여 잘 조처함으로써 그 우의를 표시한다’고 하는 어느 한 일방이 다른 나라의 억압적인 행동을 받게 되었을 때 조약 체결 상대방에 통지하면 상대방은 원만한 타결을 가져오도록 주선을 다함으로써 우의를 표시할 것이라고 규정한 것에 대한 파렴치한 배신이였다.
미국은 이렇게 당시 조선정부를 기만하였을뿐 아니라 주한미공사관을 제일 먼저 자진하여 철수함으로써 일제의 <을사늑약> 실현에 적극적으로 지원해 나셨다. 미국의 이러한 조치에 감격한 당시 일본 외상 고무라는 11월 27일 미국주재 일본공사에게 보낸 전문에서 미국 정부가 취한 조치에 ‘깊은 사의’를 표하도록 하였으며 미국의 그와 같은 호의에 대한 감사의 뜻을 일본주재 미국공사관에 전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미국은 일제가 <헤이그 밀사 사건>을 구실로 1907년 7월 18일 고종을 강제 퇴위시키고 24일에 <정미7조약>을 강요하여 조선의 내정권마저 완전히 빼앗았을 때 <헤이그 밀사 사건>은 조선 국왕의 정치적 자살행위라고 고종을 비난했으며 일제의 통감통치를 ‘가장 큰 칭찬을 받을만한 정치’, ‘가장 만족스러운 정치’라고 하면서 비호했다.
일제의 조선에 대한 강제합병 이후 미국 대통령 루즈벨트는 일본이 그 무엇보다 조선을 독립적인 주권국가로 더는 되돌아가게 할수 없으리라는 것을 주저없이 단언한다고 했으며, 3.1운동이 일어났을 때 미국 국무성은 일본주재 미 대사에게 “서울주재 미 영사에게 조선 독립 운동가들이 독립운동을 하는 것을 미국이 도우리라는 믿음을 주지 않도록 극도로 조심할 것과 일본 정부당국이 조선의 독립운동에 미국이 동조한다고 의심하지 않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미국과 일본 사이에 비밀리에 맺어진 가쓰라-태프트 협정과 일본의 조선 침략과 식민지배 과정에서 보여준 미국의 행보는 식민지 영토 확장을 위해서라면 남의 나라의 주권을 흥정물로 여기는 미국과 일본 제국주의의 파렴치한 침략성과 횡포함을 보여줌과 동시에 일본의 조선에 대한 침략과 식민지배에 미국이 공모결탁하였음을 보여주는 역사적 사실로 남아있다.
그로부터 110여년이 지난 오늘에 와서도 민족적 분노를 끓게 하는 치욕스러운 역사가 다시 반복되고 있다.
미국이 일본 편에 서서 한국 정부에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의 종료 결정을 철회하라고 노골적인 압력을 행사하였고 한국 정부는 이에 굴복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백악관과 국무성, 국방성 등 미행정부의 고위관리들이 총출동하여 수단과 방법,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한국 정부에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을 연장하라고 압박을 가하면서도 한일갈등의 근본문제이며 발단이 되는 일본의 과거 전쟁범죄에 대한 사죄와 배상 문제, 경제침략 문제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미국이 한국 정부에만 일방적으로 대일굴종과 양보를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꼭 110여년전의 치욕의 역사를 다시 보는 듯하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과거 대한제국이 그러한 치욕을 당했다면 지금은 대한민국이 그러할 뿐이다.
그외 무엇이 달라졌는가?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이래로 과거 민족 수난의 역사, 식민지 망국노의 역사에서 제대로 된 교훈을 찾고 자주의 길을 걸어왔다면 감히 일본이 우리를 우습게 여기며 도발을 자행했겠으며, 한국과 일본 양쪽 모두와 동맹을 맺고 있는 미국이 일본만을 일방적으로 지지하며 한국에 대해서는 굴종과 양보만을 강요하는 일이 일어났겠는가?
110여년이 지난 오늘에도 되풀이되는 이 치욕의 역사는 바로 자주의 길을 찾지 못하고 반공에 세뇌되고 가짜안보에 기만당하며 사대굴종과 외세의존의 <한미동맹>에 매달린 결과다.
문재인 정부가 미국과 일본으로부터 동시에 가해지는 치욕을 물리치자면 <한미동맹>에 매달리는 사대와 외세의존은 멸망의 길이며 오로지 자주의 길만이 치욕을 벗고 당당한 역사를 만들어 갈수 있다는 교훈을 되새기는 일부터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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