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15일 서울 근대유적 해설단과 역문협 회원들이 진행한 북촌 서울 근대사 기행을 담은 《민플러스》 기사를 소개합니다.

서울 근대사 산책을 해 보셨나요?

헌법재판소, 북촌 한옥 역사관, 정독도서관, 번사창 기기국 건물
서세동점의 시대, 자주적인 근대화를 위해 투쟁했던 사람들의 이야기

안광획

서울 근대사 산책은 서울 근대유적 해설사 사업단에서 실시하는 현장 역사교육입니다. 서세동점의 시대, 자주적인 근대화를 위해 투쟁했던 사람들의 이야기, 민중들이 만들어 낸 멋진 우리 문화를 향유하는 시간이지요, 6월 15일은 1시 30분 안국역 지하공간에서 북촌 기행 웹 포스터를 보고 오신 22분이 모였습니다. 어떤 분들일까요? 요양보호사 노조원들, 전국 교직원 노동조합 선생님들, 진보당 지역 활동에 함께 하시는 분들, 영동에서도 오신 분도 있고 창원에서 오신 분도 있습니다.

근대사 산책을 해설하는 분들은 역사 전문가가 아닙니다. 현재는 5분이 교대로 해설을 맡고 있는데, 이번에는 영등포 주민인 정유경씨 차례였습니다. 작년 3월부터 1년 3개월 동안, 우리 근대사를 공부하고, 유적들을 돌아보며 코스를 정한 다음 사무실에서 해설 대본 점검, 현장 시연 등을 거쳐 준비했는데도 거리에서 처음 보는 분들 앞에서 마이크를 잡으려니 걱정이었다고 하네요. 그래서 해설사님은, 전날 직접 참가자 목걸이를 만들며 마음을 정리했다고 합니다. 목걸이를 만든 이유는, 지난 해설 때, 지나가다 멈추어서 듣는 분들이 너무 많아, 참가자 표식이 참가자분들께 좀 더 집중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답니다. 산책 경로는 안국역에서 이번 산책 내용을 소개한 후 헌법재판소 마당 백송- 북촌 한옥 역사관- 조선어학회 터- 정독도서관- 번사창 기기국 건물 (금융연수원) 이었습니다.

처음 탐방한 장소는 헌법재판소였는데요, 우리는 보통 박근혜 탄핵 소추 심판을 내린 장소로 알고 있습니다만 이 자리는 우리 근대사와 관련한 다양한 이야기와 인물들이 얽힌 장소이기도 합니다. 그 자리가 조선시대 말기 대표적 세도 가문 이었던 풍양조씨의 저택이 있던 곳으로 이 고풍스러운 재동 백송(白松) 나무 아래서 풍양 조씨과 대원군이 고종을 옹립하는 논의를 했던 이야기. 우리 근대 사상의 막을 연 박규수에 관한 이야기, 갑신정변에서 산화한 홍영식과 미국 선교사 알렌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 근대사가 일제 개항과 함께 이식된 것이 아니라 우리 민족 자체의 힘으로 시작된 역사이며, 오히려 일제는 우리의 자주적 근대화를 방해한 세력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여정은 북촌 한옥 역사관으로 이어졌습니다. 북촌을 아는 분은 많지만, 북촌 한옥 마을을 만드신 정세권 선생 이야기는 잘 모르시지요? 북촌 한옥 역사관은 정세권 선생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곳입니다. 이곳은 서울시가 운영하는 곳이므로 이곳 전담 해설사가 설명합니다. 일제강점기였던 1920년대에 북촌 특유의 한옥이 조성된 배경과 이를 주도한 ‘건축왕’ 정세권 선생과 관련한 이야기, 어떻게 정세권은 일제의 서울 침투에 맞서 새로운 한옥 구조를 설계, 건축하고 우리 민족의 정신과 얼을 지킨 이야기, 건축업으로 번 돈을 몽땅 독립운동에 기부하고, 또 조선어학회 건물까지 지어준 이야기, 그 때문에 일제의 탄압을 받아 감옥에 가고, 재산까지 몰수당한 이야기, 끝내 자신은 방 한 채 갖지 못한 채, 셋방에서 세상을 떠났다는 사연을 들으며 기행 참가자들은 절로 숙연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북촌 한옥마을은 그렇게 생겨난 것입니다.

이어서 조선 사대부의 한옥 정취가 살아있는 윤보선 저택과, 조선어학회 자리를 돌아보면서, 우리 민족성 자체를 말살하려는 일제의 탄압 앞에서 정세권 선생이 우리의 한옥을 지켜냈 듯, 평범한 교사들이 우리 말과 정신을 지켜낸 투쟁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여정은 정독도서관으로 이어졌습니다. 정독도서관 진입로의 ‘화동’ 유래 표지석, 성삼문 집터 표지석을 시작으로 도서관 경내에 자리 잡은 김옥균 집터 표지석, 돌에 새긴 겸재 정선의 「인왕재색도」 기념비를 돌아보고 나서, 등나무 그늘 벤취에 앉아 역사 이야기를 경청했습니다. 북촌의 ‘화동’, ‘계동’, ‘재동’ 등의 이름의 유래, 근대개혁가 김옥균이 어떻게 성장했으며 근대 개혁을 구상하고 실천했는가에 관한 이야기를 통해 저는 우리 역사를 이렇게 쉽고 재미있게 설명할 수 있다는 사실에 탄복했습니다.

기행의 마지막 여정은 삼청동 금융 연수원에 안에 있는 번사창 기기국 건물입니다. 정독도서관에서 번사창 기기국까지는 꽤 걸어야 했지만, 표지석이 아닌 근대사의 정취가 그대로 있는 건물이라 북촌 산책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곳입니다. 마침내 도착한 번사창 기기국 건물은 마치 근대 시기의 역사를 그대로 간직한 듯 우람하게 서 있어서 거기까지 걸어온 우리에게 큰 선물을 주는 듯했지요. 그곳은 개화파 김윤식이 자주국방을 이루기 위해 청나라 전문가들을 데리고 와서 만든 근대 군수공장입니다. 그러다가 이곳은 창덕궁에 전기를 설치하며 발전소로 개조됩니다. 보통 전기를 근대화의 상징이라고 말하는데요. 그때 이곳에서 만든 전기가 백성의 삶을 밝히는 전기가 아니라, 무능한 왕실의 사치를 위한 도구였다니 참 역설적이지 않습니까? 우리 민족의 앞길을 밝히는 전기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참가자들은 우리 근대사가 외세에 의해 이식된 역사가 아닌 우리 민족 자체의 힘으로 개척해 온 위대한 역사이며 북촌은 우리 근대사를 이끌어 온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얽혀 있음을 알게 되며 많은 감명을 받았다고 합니다. 한 참가자는 “교과서에서 배우지 못한 우리 근대사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알찬 기행이었다.”라고 말했습니다. 돌봄노동자 참가자 중 한 사람은 “서울 근처에 이런 유적이 있는 줄 몰랐던 것을 반성하며 많은 점을 느꼈다. 노동자 출신인데 앞으로 노동자 중심 역사를 열심히 공부해야 하겠다.”라는 평가도 했구요. 참가하진 모든 분들은 지친 삶의 힐링이 되고, 자주와 평화를 위한 이 기행에 앞으로도 참가하고픈 마음들을 표현대 주었습니다. <서울 근대유적 해설단>과 <남북역사문화교류협회>에서 개최하는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우리 근대사 산책>은 9월에 경복궁 10월에 덕수궁을 찾아 앞으로도 계속 확대되어 나갈 예정입니다. 단체별, 지역별 기행을 원하시면, 남북역사문화교류협회로 연락하시기 바랍니다.

(원문링크: http://www.minplus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5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