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평양역구내무덤 (平壤驛區內古墳)

작성자
역문협
작성일
2021-03-18 21:57
조회
881
지역 : 평양시 중구역 역전동

시대 : 고구려

유형 : 무덤

평양시 중구역 역전동 평양역구내에서 발견된 평양역구내무덤은 ‘평양역구내전실묘’ 혹은 ‘영화9년명 동리묘’라고도 불린다. 벽돌무덤에 속하는 평양역구내무덤의 구조 형식은 벽돌로 바닥과 벽체, 천장을 축조하는 일반적인 벽돌무덤과 달리 벽체 아랫부분은 벽돌로 쌓았다. 또 벽체 윗부분과 천장부분은 돌로 쌓았으며 무덤에는 석회를 사용했다. 평면구조상 무덤길이 한쪽으로 치우친 외칸무덤에 크기는 동서 약 2m, 남북 약 3.1m 정도다. 이러한 무덤 형식은 낙랑국의 잔재가 남아 있는 고구려 무덤이라고 볼 수 있다.

이 무덤의 특이한 점은 무덤칸을 축조한 벽돌 가운데 글자가 새겨진 것도 있다는 것이다. 글은 벽돌의 측면에 양각으로 《永和九年三月十日遼東韓玄菟太守領佟利造(영화구년삼월십일요동한현도태수령동리조)》라고 새겨져 있다. 이는 “영화9년 3월 10일 요동·한·현도를 관할하는 태수인 동리가 만들었다”라는 의미이며 영화는 중국 동진의 제나라 때 사용한 연호로, 영화 9년은 서기 353년에 해당한다. 이를 통해 무덤이 조성된 연대와 만든 사람이 누구이며, 그가 어떤 위치에 있었는지 상세히 알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나온 동리의 관직은 아무런 실권도 없는 허직에 불과하다고 한다. 이는 동리가 한인 출신의 수공업자들을 거느린 일정한 지위를 가진 책임자로서 3개 군의 태수라는 허직으로 자신을 내세웠다고 볼 수 있다.

평양역구내무덤의 주인공을 추정해보자면, 이전 낙랑국의 출신으로서 고구려 귀족대열에 완전히 편입된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그가 죽은 후에 자식들이 그 출신을 고려하여, 이전 낙랑국의 무덤축조에 경험이 있는 동리로 하여금 부모의 무덤을 고구려의 무덤형식과 결합된 형식으로 짓게 했을 것이라 추정하고 있다. (정슬주)

<참고문헌>
리광희, 2013, 「평양역구내무덤의 주인공문제에 대한 검토」, 『력사과학』2013-1, 과학백과사전출판사/ 강현숙, 2011, 「3-4세기 고구려 횡혈식 무덤의 등장과 확산」, 『역사문화연구』40, 한국외국어대학교 역사문화연구소


평양역구내무덤 평면도

Ⓒ『역사문화연구』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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