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걷는다. 뒤를 돌아보니 역사가 있었다.

– 진안 강정리 원강정 마을을 걷다

한 달에 한 번 역사를 만나는 걸음을 17회 정도 한 것 같다. 역사를 만나는 것은 소소한 재미를 더해 눈과 귀가 아름답게 만들어지는 과정이었다. 오늘 내딛는 걸음은 진안에 있는 강정리 원강정 마을 근처 문화재와 유적지다. 진안은 노령산맥 동쪽 사면과 소백산맥 서쪽 사면 사이에 있는 해발 평균 400∼500m 고원 마을이다. 강정리는 산과 물이 만나 계곡을 이루고 물길이 휘휘 돌아 바위를 만나 절경을 이루는 곳이 많다.

원강정 마을은 주변에 고인돌이 산재하는 것으로 보아 청동기시대부터 거주하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마을 한가운데에 특이한 북수곡 물이 흘러 마을 앞에 큰‘소’가 형성되어 있어서‘강창’이라 부르다가 1880년경부터 강정으로 개칭되어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원강정 마을은 누구나 보아도 오래된 마을임을 느낄 수 있다. 마을에는 영산사, 영산서원, 완왈루, 영계서원, 영계사, 강정리 근대 가옥, 강정대, 쌍벽루, 형남정, 구산서원, 수선루 등 유적이 있을 뿐 아니라 마을 주변에는 보흥사와 강정리 5층탑, 합미성 터 등도 함께 있다. 마을 속으로 접어들면 마치 과거에 머문 듯한 느낌을 받는다.

신선이 자고 있다 ‘수선루’

수선루는 1686년(숙종 12년) 건립되고, 1888년(고종 25년)과 1892년(고종 29년) 중수된 정자로, 자연 암반으로 형성된 동굴에 위치해 비정형적인 틈 사이에 끼워져 있다.

자연암벽의 지세를 이용하여 가파른 절벽중턱에 접근 경사로를 만들고 3단의 석단과 누 좌우 동, 서쪽에 월대를 두어 안팎의 경계를 설정하여 암굴에 끼워 넣은 듯 약간 돌출시켜 세워져 있는데, 정면 3칸 측면 1칸으로 마치 암벽 공중에 누각과 정자가 매달려 있는 거처럼 평안하게 보인다.

상부는 휜 창방(기둥머리를 좌우로 연결하는 부재)의 사용, 방 내부는 연등천장(별도로 천장을 만들지 않고 서까래를 그대로 노출 시켜 만든 천장)으로 구성돼 있다. 누정건축으로써 자연과의 조화를 추구하고 지형을 이용하여 바위굴에 건축했으며, 지붕의 전면은 기와로 하고 후면은 돌 너와로 마감해 지역의 건축적 특성을 보여주고 있다.
원강정 마을 문화재

 

1) 영계서원
영계 서원은 1649년(인조 27)에 세워졌는데 서원철폐령으로 1867년(고종 6)에 철폐되었다가 1870년에 유허비를 세우고, 1900년에 다시 설단(設壇) 되었다가 지금의 마령초등학교 전신이다, 규암 전계종(葵菴 全繼宗), 충경공 이정란(忠景公 李延鸞), 쌍첨 이인현(雙尖 李仁賢), 충익공 최양(晩六堂 崔瀁)을 배향하고 있다.

 

​2) 완월루
“시를 읊고 달을 완상한다.” 아름다운 달을 희롱한다는 이름을 가진 누각은 예전에 천안 전씨들이 주로 사용하던 서당이다. 건축연대는 1900년경으로 추정되고 평상시에는 강학을 위한 서당으로 활용하다가 제향 시에는 제사 용도로 사용하였다. 수강생은 모두 남자였고, 근대 무렵 전통건축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3) 영산사
고려말 ‘충신불사이군’이라 하여 원강정에 은거한 전문식을 모신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맛붕지붕 사당이다. 1862년 (철종13)에 설립되었으나 1868년 사원 철폐령으로 헐렸다가 1973년 다시 지었다.

 

4) 근대한옥
이 한옥은 1924년 전영표씨가 지은 집이다. 풍수지리에 밝았던 전씨는 이 자리가 풍수상 명당이라고 확신했다고 한다. 목마른 말이 물을 마시는 형세(갈마음수)에 연꽃이 물 쪽으로 기운 모습(연화도수)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다만 집터의 기가 세서 이를 누르기 위해 안채에 2층을 올렸다. 당시 농촌 민가에서는 찾아볼 수 어려운 2층 한옥이다. 어디까지나 풍수적 목적으로 지은 2층이기 때문에 안채에는 계단이 없고 이동할 일이 있으면 이동식 사다리를 쓴다고 한다.
이 건물에 대해 친일잔재에 대한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일제강점기 한국에서 보기 드문 2층의 근대한옥으로 지어졌다. 한국은 2층 한옥을 짓지 않는다. 하지만 이 전영표 가옥은 풍수지리학적으로 그 산의 기운이 매우 강해 그 기운을 누르기 위해 2층으로 지어졌다는 것이 학자들의 견해다.

 

5) 강정리 5층 석탑 – 보흥사
강정리 5층 석탑은 마령면 강정리 보흥사 경내에 있다.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73호로 지정된 이 석탑은 신라 시대 조탑 형식 (출가 수행자들이 공덕을 쌓기 위해 탑이나 불상) 을 보이며, 축조시대는 고려 전기로 추정된다. 1층 기단 위에 5층의 탑신을 올렸으며 기단과 1층 탑신에는 기둥 모양을 조각하였다.

경내 한가운데 있는 5층 석탑. 두툼한 지방돌은 밑면의 받침을 두었고, 네 귀퉁이는 살짝 들려 있다. 꼭대기에는 노반(머리 장식 받침)과 복발(엎어 놓은 그릇모양 장식)이 남아 머리 장식을 하고 있다. 중후한 멋을 지닌 고려탑으로 단층 기단 위에 5층의 탑신을 올렸으며 1층 탑신은 약간 높고, 2층 몸체부터 높이가 급격히 감소한다. 하지만 폭은 거의 줄지 않아 안정감이 없어 보인다.

 

마이산 등산로 합미산성

합미산성은 마이산에서 서쪽으로 뻗은 산줄기 능선을 따라 축성된 포곡식의 석성이다. 산성의 평면 형태는 장타원형이며, 둘레는 611m이다. 성벽은 지대가 낮은 서쪽은 편축, 나머지 쪽은 협축하였으며 높이는 약 4~5m이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진안현조에 본래 마령은 백제 마돌현이 있었던 곳이라 하였다. 따라서 합미산성은 백제 마돌현의 치소성(성 안에서 생활과 생산이 가능한)의 배후 산성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 축성법에서도 다듬은 성돌을‘品’자형으로 쌓고 있는 점은 고대 산성의 특징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통일 신라~고려 시대로 보이는 토기 조각들도 확인되고 있는 점은 백제 이후에도 산성이 경영되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마치면.
역사를 기억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역사를 배우는 사람이 많아질 때이기도 하지만, 우리 문화에 대한 자부심을 느끼기 위한 노력일 것이다. 마을은 공동체이다. 하나의 공동체에서 이루어낸 문화적 자부심은 그 마을을 유지하는 토대가 될 것이며, 후대까지 사람에 대한 기록을 남기는 역사서일 것이다. 강정마을은 공동체 형성의 역사서가 되어 줄 수 있는 귀중한 재부가 남아 있는 마을로, 좀 더 아끼고 발전시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 곳이기도 하다.

글에는 다 쓰지 못한 마을의 여러 곳을 사진으로 남긴다.

구산서원 구산사
수선루 주변 풍경 삼계서문 암각서
보흥사 쌍벽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