꾀돌이

신성호

예나 지금이나 어른들도 생각 못하는 신통한 꾀를 곧잘 내놓기나 내로라는 식자들도 쩔쩔매는 수수께끼를 아주 손쉽게 풀어내여 꾀돌이라고 불리우는 아이들이 적지 않다. 조선봉건왕조 초엽 풍덕고을의 대촌마을에도 어른들을 감탄케 한 꾀돌이가 있었다. 아직은 코흘리개에 불과한 그 아이에게 꾀들이란 귀염스런 별명이 붙게 된데는 이런 일이 있었다.

어느해 가을날 밤 꾀돌이에 이웃집에서 홀로 살던 여인이 누군가의 손에 의해 살해되었다. 마을의 어른들뿐아니라 관가의 나돌들도 살인자를 잡는다며 붐비었지만 한나절이 되도록 이렇다할 실마리 하나 잡지 못하고있었다.
쇠사슬에 매여있는 송아지만 한 어미개는 제 주인의 죽음이 서로운지 잠시도 가만있지 않고 컹컹 사납게 짖어댔다. 마을의 좌상노인은 보다못해 개를 진정시키려고 이렇게도 부르고 저렇게도 부르며 애를 썼지만 그놈은 당장 쇠사슬이 끊어던지고 사람들을 물어제낄 듯 기승을 부렸다.

바로 그때 앞집에 사는 꾀돌이가 잔걸음으로 나타났다. 코흘리개 아이를 띄어본 나졸이 시끄럽다는 듯 손을 내저으며 욕슬 했다.

“요 쏠쏘리놈아, 여기다 어데라고 감히 나타나? 어서 썩 물러가지 못할까?”

꾀돌이는 우락부락한 나졸은 본척도 않고 좌상노인에게 다다가 당돌하게 입을 열었다.

“할아버지! 사람을 죽인 놈이 누구인지 난 알 수 있소이다.”

주위의 사람들이 어처구니가 없어 껄껄 웃는데 꾀돌이는 컹컹 짖어대는 개를 가리켰다.

“간밤에 이 개는 한번도 짖지 않았어요. 그러니 사람을 해친 놈은 저 개가 짖지 않아도 되는 말하자면 죽은 이 집의 주인과 아주 가까운 사이가 아니겠나이까.” 그 말에 어른들은 모두 깜짝 놀라 꾀돌이를 지켜보았다. 좌상노인이 꾀돌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허- 널 쫄래동이로 보아서는 안되겠구나. 그래, 네가 어떻게 이 개가 한번도 짖지 않았다는걸 알 수 있고 또 죽은 이 집주인과 아주 가까운 사람이 누구인 것 같으냐?”

두 눈을 깜박이던 꾀돌이는 키돋움을 하더니 좌상노인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한동안 허리를 굽히고 꾀돌이의 귀띔에 귀를 강구던 좌상노인은 무릎을 탁 쳤다. 하더니 동네 젊은이들을 불러 엄하게 일렀다.

“너희들은 당장 이웃마을로 달려가서 그 <코찡찡이>건달군을 잡아 오너라. 그럼 자연 알 도리가 있으렷다.”

동네 젊은이들이 달려나간지 한동안 지나 그들은 코가 별나게 찌그러져서 <코찡찡이>라고 불리우는 젊은 사나이를 끌고 왔다. 뜨락에 <코찡찡이>가 들어서자 그렇게도 기승스레 짖어대던 어미개가 언제 그러했더냐싶게 꼬리까지 저으며 그에게 매달리려고 하였다.

그 광경을 보는 좌상노인의 두 눈에서 증오의 불길이 이글거렸다.

<코찡찡이>로 말하면 알건달로 소문안 사람이었다. 돈냥이나 쓰는 집에서 태어나 펀등펀등 놀고먹는 나쁜 버릇을 굳힌 그는 여러 첩을 거느렸지만 죽은 이 집 여인과도 정분이 난 난봉군이었다.

좌상노인은 <코찡찡이>를 노려보며 엄하게 물었다.

“너, 이개를 잘 알렸다?”

도적 제 발이 저리다고 그 질문에 <코찡찡이>는 얼굴이 수수떡처럼 벌개져서 입술을 푸들푸들 떨었다.

“어서 이실직고하지 못할고?”

좌상노인의 추상같은 소리에 반정신나간 <코찡찡이>는 몹시 떠들거리며 대꾸했다.

“아…니, 저…전, 모…모르오이다.”

좌상노인은 그자의 코밑에 주먹을 들이대며 재차 소리쳤다.

“네가 모른다는 이 개는 다른 사람들한테는 아주 사납게 달려드는데 왜 어만은 반기는거냐?”

그제서야 자기의 실수를 알아차린 <코찡찡이>은 사시나무떨 듯 하였다. 이제는 아무리 딴전을 부린대도 지은 죄를 감추지 못할 것 같아서였다. 좌상노인은 꾀돌이에게 말했다.

“얘야, 간밤에 이 개가 짖은적 있었느냐?”

꾀돌이는 <코찡찡이>를 당돌하게 쳐다보며 야무진 소리로 대꾸했다.

“없었소이다. 이 개는 밤에든 낮에든 낯선 사람이 다가오면 다른 개들보다 더 무섭게 날뛰면서 아주 소란스럽게 짖어대기에 이웃 집들에서 시끄러워했소이다. 이 집주인은 평소에 이웃집들과도 상종하지 않았기에 저 개한테는 온 마을사람들이 다 낮선 사람들이었소이다. 다만 한사람, 바로 저 건너편 마을에 사는 이 어른만이 이 집을 제 집처럼 드나들었기에 저 개하고도 친한것이었소이다.”

<코찡찡이>는 성이 독같이 나서 꾀돌이에게 소리를 질렀다.

“요, 벼록이만 한 쬐꼬만 놈이 함부로 주둥이질이냐?”

<코찡찡이>를 쏘아보던 나졸이 그의 멱살을 꽉 움켜쥐고 을러맸다.

“야 이놈아, 너 뻔한걸 속이려드는데 그래 물고를 내야 토설하겠느냐. 그래 두사람분의 수저가 있는 술상이 그대로 남아있는 이 집의 방에서 술내를 풍기는 죽은 여인의 목에 억센 손으로 눌러죽인 흔적이 아직도 생생한데 밤새도록 사나운 개가 한번도 짖지 않았다니 정분이 안 네놈이 한짓이 아니면 누구란 말이냐?”

이미 저지른 죄가 있는 <코찡찡이>는 머리를 싸쥐며 울부짖었다.

“난 사실 그 여인을 죽이려고 한게 아니었소. 값나가는 패물을 달라고 하니 줄듯말 듯 하면서 그냥 부아를 돋구기에 목을 좀 눌렀더니 죽는게 아니겠소.”

이렇게 되어 <코찡찡이>는 벌을 받게 되었다. 그 이듬해에 또 이런 일이 있었다.

이 고을에는 날마다 허망청한 거짓말을 밥먹듯 꾸며내여 퍼뜨리는 세 사내가 있었다. 그들이 어찌아녿 거짓말을 잘하는지 고을사람들은 그 세사람한테 대포쟁이란 별명을 붙여 조씨사내는 좃대포, 고씨사내는 골대포, 문씨사내는 물대포라고 불렀다.

그 세 대포쟁이들이 하는 거짓말은 대체 이러했다.

왕궁의 파수병들은 거미줄로 짠 천으로 지은 전복을 입고 금으로 만든 칼을 차고 옥으로 끓인 죽은 먹는다느니, 서방사람들은 눈이 셋인데 그 하나는 엄지손가락 끝에 붙어있다느니, 명나라의 지렁이는 코끼리만큼 커서 군사들이 전장에 나간다느니 하는 것이었다.

그런 꽝포는 사람들의 기분을 즐겁게 해주어 나쁘다고는 할 수 없었다. 허나 잘한다니까 어른수염 뜯는가고 꽝포쟁이들은 도수를 넘어 사람들의 화목을 해치는 악담패설같은 거짓말까지 식은 죽 먹기로 꾸며댔다. 어느 집 안주인은 이웃집사내오아 정분이 나서 죽자살자한다느니, 올해 아무 달에 태여난 계집애들은 앞으로 몽땅 기생이 된다느니, 어느 집 과부는 밤이면 늙은 사내들을 꼬여낸다는 하는 등 입에 담지 못할 상스런 거짓말들이었다.

이게 격분한 사람들이 관가에 찾아가 씨알머리가 없는 세 대포쟁이는 쐐기군보다도 더 나쁜 놈들이니 혼을 내야 한다고 고소했다. 이리하여 세 대포쟁이는 오라를 지고 관가에 끌려가게 되었다.

허나 사람을 후려내는 말재간이 뛰어난 그들이 어떻게나 형리를 잘 주물러놨던지 그가 곤장질을 했다는건 죄인을 아프게 치는 시늉만 해보이는 헛장질이었다.

관가에서 풀려나온 대포쟁이들은 헛장질이래도 매를 맞았다는 앙갚음으로 이번에는 자기들을 고소한 사람들을 걸고드는 더 큰 거짓말을 퍼뜨려 그들을 욕보이려 하였다. 이를 안 대촌마을의 좌상노인은 급히 꾀돌이를 불러들었다.

“너도 아다싶이 요즘 그 몹쓸 대포쟁이들이 무고한 마을사람들의 낯을 깍는 허튼 거짓말을 망탕 퍼뜨리고있는데 그녀석들의 고약한 버릇을 떼줄만 한 꾀가 없겠느냐?”

이미 좌상노인에게 불려오면서 그가 찾는 까닭을 알고있는 꾀돌이는 고개를 갸웃하더니 방글 웃었다.

“좌상님! 한 열흘쯤 말미를 주면 얼바란둥이같은 그 어른들의 나쁜 버릇이 뚝 떨러지도록 할 수 있소이다.”

좌상노인은 흔연히 응해나서는 꾀들이를 보고 흡족해하였다. 사람을 죽인 놈도 잡아낸 꾀많은 아이이니 그쯤한ㄴ 일을 어찌 어렵다 하겠는가.

며칠이 지나 세 대포쟁이들이 한자리에 모여앉아 박연폭포구경을 가기로 약속하였다. 그들이 음식들을 잔뜩 꿍겨가지고 박연폭포구경을 떠나자 꾀돌이는 바로 이때라고 손뼉을 쳤다.

그 이튿날 서당에서 글공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꾀돌이는 아이들에게 소리쳤다.

“얘들아, 어른들이 그러는데 어제 박연폭포구경을 간 세 대포쟁이들이 천벌을 받아 죽었다누나. 글쎄, 날마다 거짓말을 일삼은 죄로 하여 고모담에 빠져죽어 시신도 못 찾는 천벌을 당했대.”

워낙 입이 빠른데 아이들이라 그애들은 저마다 집에 들어서기 바쁘게 그 소식을 입에 올렸다.

그 소문은 삽시에 온 고을에 퍼져 대포쟁이네 집들에서는 대성통곡이 일어나고 이러기를 기다려 가짜관까지 마련해놓았던 좌상노인은 마을사람들을 휘동하여 그들의 장례식을 치르어 주었다.

며칠이 지나 박연폭포구경을 실컷 하고난 세 대포쟁이가 마을에 나나타니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처음에는 세 대포쟁이의 출현에 어리둥절해있던 마을사람들은 대포쟁이들의 죽은 귀신이 대낮에까지 나타나 무슨 악담패설을 늘어 놓으려 하느냐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저마다 몽둥이을 찾아들었다.

남녀노소 마을사람들이 몽둥이를 휘두르며 무작정 매을 안기는 바람에 혼비백산한 세 대포쟁이들은 걸음아 날 살려라 동구밖으로 뺑소니를 치지 않으면 안되었다. 이 일이 있은 후로 세 대포쟁이는 고약한 버릇을 뚝 떼어버리거 유쾌하게 웃음나는 좋은 말만 하였다고 한다.

과연 꾀돌이야말로 어른들도 일깨워주는 어린 스승이라고 할만 하였다.

전철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