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창 여인들의 길
“역사문화 체험과 함께 역사 현장 속에서 살아있는 조상들의 성문화를 통해 건전한 성문화 가치관을 형성하는 좋은 기회가 되길 바란다”는 문장을 역사체험 교육프로그램에서 본적이 있는 것 같아, 자료를 뒤지던 중 순창 여인들의 길을 만나 볼 수 있었다.‘건전한 성문화 가치관’단어가 마음속에 이물질 같은 감정이 있지만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순창으로 향했다.
순창 여인들의 길에 등장한 장소는 열곳은 ① 인정샘 ② 산동리남근석 ③ 창덕리남금석 ④ 대모암 ⑤ 홀어머니 산성 ⑥ 불통골 약수터 ⑦ 양수생처열부이씨려 ⑧ 요강바위 ⑨ 귀래정 ⑩ 설씨부인 권문첩이다. 하루 만에 다 돌아 볼 수 없기에 차로 이동이 가능한 장소만 일단 돌아보았다
1. 인정샘, 연봉석
길을 찾는데 어렵지 않게 산동마을에 도착했다.(또는 팔왕 마을) 마을과 관련해서는 ‘고려사 설공검전’에 의하면 ‘사유이생 8자 3자 등과’고려 말에 팔왕 마을 골밭에 살던 옥천 조씨 할머니는 가슴이 4개로 쌍둥이를 네 번이나 낳아서 8명의 아들을 낳았었다는 기록이 있다. 신비하게도 이 마을 출생자는 남녀를 막론하고 후손이 없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마을을 만들려고 보니 명당으로는 흠잡을 데가 없으나 마을 뒷산이 여자가 누워 있는 형상인 여근곡 모양에다가 끝에는 여근샘(인정샘) 있어, 물이 샘솟는데 음기가 너무 강해 음양상생이 되게 하려고 인정샘과 마주 보는 곳에 직선거리로 연봉석을 세워 양을 보완해 주었다 한다. 연봉석은 고려후기 선돌의 표면에 연꽃, 연잎, 연꽃잎, 연봉오리를 조각하였다. 불상의 형식을 갖추지 않고 연꽃, 연봉, 연잎이 조형 된 연봉석을 미륵으로 섬기는 사람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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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샘 | 연봉석 |
2. 산동리 남근석. 창덕리 남근석
순창은 예로부터 수호신을 믿는 민속의식이 팽배하여 돌 문화 숭배의 유물이 많이 남아 있는데 선돌을 비롯하여 산동리남근석·창덕리남근석, 석장승 등이 있다. 남근석은 남자 성기 모양으로 자연암석이나 암석을 조각하여 세운 것으로 복을 받거나 다산 풍농, 풍어를 기원하는 민간신앙의 대상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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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동리 남근석 |
산동리 남근석 순창군 팔덕면 소재지에서 서쪽으로 약 2km되는 지점에 산동리가 있고 산동리 팔왕 마을 앞 제방위에 비보수 소나무 10여 그루와 화강석으로 조각된 남근석(男根石)이 세워져 있다. 높이가 2m이고, 둘레가 150cm이며 제작과 생김새는 건장한 남성의 성기가 충분히 발기되어 있는 모양으로 아랫부분에 연꽃무늬가 조각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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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리 남근석 |
창덕리 남근석은 산동리 남근석과 같은 때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화강석으로서 높이는 165cm이고, 둘레는 150cm로 연화무늬가 새겨져 있다. 그리고 고려 때에 비보 풍수에 근거하여 도인의 조언으로 만들 때 하나는 창덕리 태촌 마을에 세울 예정이었으나, 이곳에 도착하여 살펴보니 태촌마을 의 지형상이 남근으로 음랑까지 분명하므로 남근의 뒤편에 비보로 세운 것으로 믿어진다.
남근석이 세워진 곳에는 마을의 평안을 빌면서 이들을 섬기며 제를 올리기도 하고, 농악놀이를 하는 풍속이 있고 당산적 마을의 공동체 종교의식과 축제문화를 엿볼 수 있다.
3. 홀어머니 산성 (대모산성),
순창군 순창읍 대모산 자락에 위치한 홀어머니산성은 7세기 백제시대에 처음 축성되어 조선시대까지 군창(軍倉)으로, 전시엔 전투 및 피난시설로 활용됐다. 백제시대 어긋문 형식의 산성이며 전체적인 모양은 사다리꼴이고, 둘레는 약 875m이다. 고려시대 이래 단오절을 전후하여 성황대신을 모시는 ‘성황제’가 거행되었던 순창의 성지(聖地)로 알려지고 있다.
기록 등에 의하며 홀어머니산성을 대모 산성으로 부르고 있다. 대모(大母)는 큰 어머니의 뜻을 지니고 있어 한 할미를 흔히 노구, 또는 대모(大母)라고도 칭했는데 여기에서 기인했다는 설과 아홉 아들과 더불어 홀로된 할머니가 쌓았다는 뜻에서 할미성이란 이름을 붙여다 설, 쌀을 저장하기 위해서 성을 쌓았다는 의미의 합미성(合米城)에서 비롯된다는 주장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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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어머니 산성 | 백제 어긋문 형식 (인용 –금강일보) |
설화에는 양씨부인의 설화(정절이야기) 가 있다.
4. 귀래정
귀래정은 순창읍 남산마을(남산대)에 있다. 귀래정은 조선 세조 2년(1456) 신숙주의 아우인 신말주가 지은 정자로, 지금 있는 건물은 1974년에 고쳐 지은 것이다. 수양대군이 조카 단종을 내몰고 왕위에 오르자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는 충절을 지켜 벼슬에서 물러나 순창으로 낙향하였다. 신숙주의 아우인 신말주는 벼슬을 버리고 순창으로 낙향하여 세조 2년(1456)에 이 건물을 짓고 한운야학(閑雲野鶴)을 벗 삼아 높은 절개를 지켰다 한다.
건물은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안쪽에는 서거정이 지은 귀래정기와 강희맹의 시문을 보존하고 있다.
歸去來何事(귀거래하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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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길을 걷다 보면.
순창 여인들의 길 중 일부를 돌아보았지만 여인들의 길에서는 성속에서 말하는 고락을 살펴 볼 수 있지만 태어남과 동시에 느끼는 생의 고락을 보기에는 어려웠다. 특히 성문화 가치관을 담기에는 너무나 동떨어져있는 세계관을 볼 수 있다. 순창의 일부분에서 만나 여인들의 길은 너무나 힘든 길이었다. 여인들의 길이라는 제목속에서 이미 내포되어 있지만. 여인의 희생과 남성중심의 기록, 정절을 보고 성문화 가치관을 체험하기에는 어렵다. 왜 사라지지 않을 까 ? 양성 평등이 아닌 여성의 희생을 가치관으로 교육시키는 형태는 그만두어야 한다.
역사체험 장소를 만드는 과정에서 역사를 기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시대와 시대가 만나서 이야기 할 수 있는 체험 할 수 있는 풍부한 문화가 가미되었으면 좋겠다. 사실상 고묘하게 변형된 형태로 유지되고 있는 여성관 체험 프로그램 대해 이제 그만이라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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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 풀이
① 비보 :풍수 용어의 일종으로, ‘무엇인가 부족한 것을 도와 보충한다’는 자연에 대한 인간의 인위적인 시도 또는 노력을 뜻한다. 이러한 인위적인 노력으로 대표적인 것이 풍수탑을 세운다거나 음기를 막기 위해 인공적인 산을 만든다든가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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