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역사의 발걸음에는 은선리가 있다.

 

전북지역 역사탐방을 하면서 가장 어려운 것은, 내가 사는 땅에 대해 잘 모른다는 것이다. 전북에서 살면서도 역사와 문화, 그리고 사람을 모른다는 것은 사실상 문맹인과 다름이 없는 것 같다. 이번 역사탐방은 전북의 삶이 있는 역사의 한 자락 끝이라도 만나기 위해 출발했다.

5월 장대비가 쏟아지는 아침, 쉴새 없이 달려간 곳은 정읍 영원면 은선리 일대의 향토 유적지다. 영원면은 동진강 유역에 위치해 동남부의 천태산(182m) 일대를 제외한 면 전체가 넓은 평야를 이루고 있다. 또한, 백제 사비기 오방성 가운데 중방성이 자리한 고사부리성의 인접 지역으로, 주변에는 백제 시대의 고분 약 270여 기가 밀집 분포하고 있다. 또한, 유물·유적으로는 은선리 삼층석탑과 후지리 탑동 석불, 금사동 토성 등이 있다.

정읍 은선리와 도계리 고분군

전라북도의 백제 고분으로는 지금까지 발견된 최대 규모이다. 천태산 자락에 널려있었던 돌방무덤들은 그동안 천오백 년 세월 속에 풍화되고 사람들에 의해 훼손되었으나, 지역 사학자들의 노력으로 일부 고분이 복원되었다.

횡혈식 석실은 백제 무덤의 대표적인 양식으로 석실로 내부를 만들고 무덤 옆으로 통로를 낸 구조다. 일회성 매장이 아닌 추가장을 하기 위한 이 같은 구조인 것이다. 인근에 마한계 분구묘도 있다. 분구묘는 미리 흙이나 돌로 봉분을 쌓고 그 위에 매장시설을 만든 마한계 무덤으로, 무덤 옆으로 통로를 내어 석실로 내부를 만든 백제의 횡혈식 석실과 차이를 드러낸다. 두 형태의 무덤이 인근에 공존하는 것은 마한이 지배하던 정읍 일대를 백제가 빼앗아 지배했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문화재청 발굴조사에서 정읍 고분의 대다수가 백제의 사비가(538~660년) 고분이지만, 일부에서는 그보다 앞선 웅지기(475~538년)에 만들어진 것도 확인된다. 따라서 백제가 한성을 잃고 웅진(공주)으로 도읍을 옮긴 이후 마한과 치열한 전투를 벌여 사비(부여)로 천도할 무렵에 정읍 일대를 완전하게 점령한 것으로 보인다.

지사리 고분군

정읍 고부와 영원을 이어주는 도로의 좌측에 고 있는데 도로변으로부터 남북 일렬로 4기와 그 서북방에 가장 거대한 1기가 있었다. 일제강점기 때 길을 내면서 산자락을 따라 형성된 여러 개의 고분 중에서 가장 크고 넓은 고분을 의도적으로 반 토막을 내고 길을 만들었고 나머지 무덤들은 이미 일제강점기 때 도굴되었다고 한다.

고분의 구조는 백제 시대 전기인 4세기 말에서 5세기 전반의 구덩식 돌방무덤 유형이다. 봉분의 지름은 15∼27m이며, 현재의 높이는 1.7∼3.6m이나, 본래의 높이는 3∼6m 정도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구덩식 돌방무덤으로는 거대한 봉분에 속한다.

은선리 삼층석탑

은선리(隱仙里)는 신선이 숨어 사는 마을이란 의미지만, 사방으로 낮은 구릉이 연결된 평지지형이다. 높이 6m. 보물 제167호. 현재 원위치에 원형대로 남아 있는 석탑이나 이 탑이 소속하였던 사찰은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

1층의 몸돌은 대단히 높아 기형적인 인상을 주고, 각 면 모서리에는 희미하게 기둥 모양을 본떠 새겨놓았다. 2층 몸돌은 높이와 너비가 급격히 줄었으며, 남쪽 면에 2매의 문짝이 달려 있는데, 이는 감실(불상을 모시는 방)을 설치한 것으로 짐작된다. 보통은 벽면에 본떠 새기기만 하는데 이렇듯 양측에 문짝을 단 유래는 매우 희귀하다. 3층 몸돌은 더욱 줄어들고 다른 꾸밈은 없다. 지붕돌은 평평한 돌을 얹어 간결하게 구성하였고 특별한 장식은 없다.

우리나라에서는 일찍이 볼 수 없었던 독특한 모습을 하고 있다. 고려 중기에 만들어진 탑으로 추측된다. 기단과 지붕돌에서 백제 석탑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를 통해 고려 시대에도 옛 백제 땅에서는 백제 양식의 석탑이 만들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나가며.

은선리 길을 걷다 보면, 서낭당, 은선리 토성, 구석기시대 유문암재 석기, 고인돌, 갑오년 농민군들의 유적지, 독립운동 3 의사 중 한 분이며 아나키즘을 신념으로 삼았던 구파 백정기 의사 기념관 등 많은 역사를 만날 수 있다. 사람이 살았던 흔적, 사람이 살고자 했던 흔적들을 만나는 것은 참 좋은 일이다. 은선리는 구석기시대부터 백제, 고려, 조선, 일제식민지 시대까지 이어지는 역사를 한 장소에 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지역이다. 내가 사는 땅의 역사를 배울 수 있는 영원면 은선리를 한번 걸어보면 좋은 것 같다.

자리 고개 자리에 있는 성황당으로, 갑오년 농민군이 이 고개를 지나 진군하면서 진을 치고 군기를 꽂았던 군기봉이 있다. 성황당은 대개 지형이 높은 길가에 만들고 길을 가는 나그네들은 동전 등 쇠붙이와 그 위에 솔가지를 던지고 가면 다리가 아프지 않고, 소성 성취한다는 전설이 있다. 우리 선조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다. 전시를 대비하여 길가에 있는 돌은 일정한 곳에 한데 모아 전쟁 시 쉽게 사용하고자 함이요. 쇠붙이는 화살촉 등 병기를 마련하기 위한 것이며, 솔가지를 던진 것은 돌무더기를 은폐하고자 한 것이다.
백정기의사 기념관

“나의 구국일념은

첫째, 강도 일제로부터 주권과 독립을 쟁취함이요

둘째, 전 세계 독재자를 타도하여 자유 평화 위에 세계 일가의 인류공존을 이룩함이니

공생(共生)공사(共死)의 맹우 여러분 대륙 침략의 왜적 거두의 몰살을 나에게 맡겨 주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