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강문화》

《대동강문화》는 평양을 중심으로 하는 대동강의 중하류 유역에서 발상한 고대문화이다.

대동강 유역은 맑은 강줄기와 비옥한 평야, 물산이 풍부하고 그 기온이 따뜻한것으로 하여 예로부터 사람들이 살기 좋은 고장으로서 인류의 발상지, 인류문화의 발원지의 하나로 되였다.

원인들이 남긴 평양시 상원군 흑우리 검은모루유적을 비롯한 구석기시대 전기, 중기, 후기유적들과 거기에서 발굴된 인류화석들은 대동강 유역이 원인, 고인, 신인 등 인류 진화의 순차적 단계를 거쳐온 인류발상지의 하나, 인류의 초기문화가 싹튼 유서 깊은 역사의 성지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대동강 유역은 이 고장에서 살던 구석기시대 후기의 신인에 연원을 둔 〈조선옛유형사람들〉의 본고장이며 신석기시대 문화와 청동기시대 문화가 매우 이른 시기부터 발생 발전되어온 원시 문화의 발원지, 그 중심지였다.

평양시 삼석구역 남경유적과 표대유적, 덕천시 남양유적, 온천군 궁산유적을 비롯한 대동강 유역의 신석기시대 유적들과 팽이 모양의 질그릇을 썼던 청동기시대 집터에서 드러난 농업 도구들은 〈조선옛유형사람들〉들이 농업을 위주로 하는 여러 가지 생산활동을 벌여나갔다는 것을 보여준다.

〈조선옛유형사람들〉은 생산활동과정에 야금기술도 체득하였으며 마침내 청동기문화를 창조하였다.

제반 사실은 매우 이른 시기부터 대동강 유역에서 인류가 발생해 〈조선옛유형사람〉으로 발전하였고 그들에 의하여 원시 문화와 고대문명이 시작되고 발전하였다는 것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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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강 유역은 고대문명의 발상지인 동시에 고대문화의 중심지이다.

우리 민족의 원시조인 단군이 B.C. 3000년기 초에 평양을 중심으로 하여 동방에서 처음으로 첫 고대국가 고조선을 세움으로써 새로운 문명시대가 펼쳐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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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군 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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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돌무덤

대동강 유역이 고대문화의 중심지였다는 것은 단군조선 시기의 문화를 대표하는 고인돌무덤과 돌관무덤이 이 강유역에 가장 많이 분포되어있는 데서 찾아볼 수 있다. 고인돌무덤은 함경남북도 량강도, 강원도, 요동지방에서는 각각 100―500기가 알려졌지만 대동강 유역에는 1만 4 000기가 분포되어있으며 그것도 초기형으로부터 말기형까지의 고인돌무덤이 다 있고 특히 왕급의 지배계급들이 묻힌 특대형의 고인돌무덤이 다른 지역들보다 비할 바 없이 많다. 돌관무덤도 다른 지역보다 많이 발견되었는데 지배계급들만이 소유할 수 있었던 동 또는 금귀걸이와 목걸이, 가락지, 청동띠고리들과 회색도기들이 나온 사실은 대동강 유역이 고대문화의 중심지였다는 것을 생동하게 실증해 준다.

나라의 방위를 목적으로 축성한 평양시 강동군의 황대성, 봉산군 지탑리토성, 온천군 성현리토성들과 도시를 방불케 하는 큰 부락터 유적들이 많이 드러난 것도 이 강유역이 매우 이른 시기에 국가가 형성된 고대문화의 중심지였다는 것을 보여주는 뚜렷한 실례로 된다.

 

대동강유역에서는 청동기유물들과 금, 도기, 철기제품들도 발굴되었다. 특히 고인돌무덤과 팽이그릇 집자리에서 B.C. 2,000년경의 것인 비파형 창끝이 발굴됨으로써 비파형 단검문화의 발원지와 중심지가 대동강 유역이라는것이 밝혀졌다. 돌관무덤들에서 발굴된 도기들과 쇠거울, 철기들도 대동강유역을 중심으로 도기문화와 철기문화가 발생 발전하였음을 실물로 전하고 있다.

평양을 중심으로 하는 대동강 유역에서는 가장 이른 시기에 벼를 비롯한 조, 콩, 기장 등 오곡농사를 하였다는 것을 보여주는 물질적 자료들도 나왔다.

또한 고인돌무덤의 뚜껑돌 겉면에 별자리들을 표시한 성화도가 200여개나 발견되었는데, 그것은 가장 이른 고대 천문학의 시원으로 되고 있다. 대동강유역 주민들은 일찍이 문명시대의 글자, 신지글자도 만들어 사용하였다.

이처럼 《대동강문화》는 매 단계의 문화가 순차적으로 발생 발전한 유구한 역사적뿌리를 가지고 있는 문화로서 단일성과 독자성, 계승성이 뚜렷한 우수한 문화이다.

평양을 중심으로 하는 대동강 유역은 인류가 발생한 조선사람의 발원지, 고대문명의 발상지이며 고대문화의 중심지, 조선민족의 성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