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석증(腎石症, 신장결석)의 명처방
안광획
고구려 말엽 오곡군(오늘날 황해북도 서흥군 일대에 있던 마을)의 어느 한 마을에서 한 총각이 장가를 들었다.
고구려 풍습에서는 사내들이 장가를 들면 첫 자식을 낳아 걸음마를 뗄 때까지 처가에 지어 놓은 사위 집(壻屋)에서 살아야 했지만(데릴사위제), 이 총각만은 예외였다. 한 것은 어려서 부모를 다 잃고 고아가 된 그를 마을 사람들이 키워주었고 총각이 장가를 들게 되니 본래의 낡은 집을 허물어내고 그 자리에다 번듯한 새 집까지 지어주었는데 구태여 그 좋은 새 집을 두고 딴 고을의 처가에 가서 처가살이를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 사정을 잘 아는 처갓집에서도 고향사람들이 지어준 새 집에서 새 살림을 펴라고 딸을 보내주었다. 예쁜 색시를 데려온 신랑은 흥이 나서 이전보다 더 힘껏 일손을 잡았다. 한다하는 실농군도 엄두를 내지 못하던 윗골짜기 안의 진펄에다 새 땅을 개간하니 마을 노인들은 혀를 차며 감탄했다.
“원, 편편약골*같은 사람이 어디서 그런 힘이 나기에 새 땅을 일구었을까?”
“그게 다 고운 색시와 사는 덕이지요. 색시가 고우니 무슨 힘인들 나지 않겠소.”
* 편편약골(片片弱骨): 몹시 약한 사람.
그러나 신랑의 열정은 오래가지 못하였다. 가끔 허리가 쑤시고 그럴 때면 양쪽 배가 몹시 아팠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어떤 날에는 밭에 나갔건만 온종일 배만 싸쥐고 있다가 그냥 돌아오기도 하였다.
장가든 동갑네들은 허리를 아파하는 그를 이렇게 놀려댔다.
“날마다 긴 밤 날 밝을 때까지 배타기 놀음(성행위)에만 빠져 있으니 허리가 아플 수밖에. 그 놀음이 꿀맛 같아도 몸이나 봐 가면서 작작 하라구.”
그런가 하면 마을의 노인들은 그를 불러 조용히 일렀다.
“이 사람아, 한창때이니 그럴 수도 있는데, 색을 지내 밝히면 허리병에 든다네.”
이쯤 되니 그의 색시도 난처하게 되었다. 색시는 사내가 허리병에 든 것이 다 제탓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사내가 허리를 아파하는 것이 꼭 밤놀음(성행위)의 탓이라고만 생각되지 않아 은근히 친한 새색시들한테 알아보니 그들의 사내들도 그 놀음에는 아주 극성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내가 어째서 허리를 아파할까? 생각다 못해 색시는 의원을 찾아가 보기로 마음먹었다.
색시에게 이끌려 신랑이 이웃 마을의 의원을 찾아갔더니, 의원은 그의 허리며 배를 깐깐하게 만져도 보고 두드려도 보고 나서 혀를 찼다.
“원 사람두, 몸이 이 꼴이 되도록 병을 기르다니. 자네 허리 부위의 양쪽 콩팥들에는 다 콩알만한 돌이 있어. 콩팥에 돌이 생기는 병을 석림(신장결석)이라 하는데, 이 병에 들면 허리도 아프고 배도 몹시 아프네. …그렇다고 너무 걱정할 건 없네.”
늙은 의원은 그중 효험있는 처방이라면서 산앵두나무 껍질을 달여 먹으라고 하였다.
“그 약을 한 달쯤 쓰고서도 효험이 없으면 다시 찾아오게. 그 말고도 또 다른 비방이 있으니까.”
집으로 돌아온 신랑은 색시가 달여주는 약물을 받아 마셨다. 허나 어찌 된 탓인지 열흘이 가고 달포(한 달 남짓)가 지났건만 허리아픔은 여전하였다. 바로 그때 가시어머니(장모님)가 제고장에 많이 나는 호두를 한 광주리를 이고 찾아왔다. 병든 사위를 본 가시어머니는 눈물이 글썽해서 말했다.
“자네가 앓는다는 기별을 받고도 인차(곧장) 오지 못해 안됐네. 그동안 두루 알아보니 호두죽이 몸보신에 좋다더군. 그래서 마침 딴 호두를 가져왔네.”
호두광주리를 굽어보는 딸은 마음이 좀 놓였다. 산앵두로 만든 약이 효험이 없다면 당장은 호두죽으로 사내의 몸보신을 시킨 다음 또다시 이웃 마을의 의원을 찾아가면 더 좋은 약 처방을 알게 될 것이 아닌가?
이튿날 친정어머니가 돌아가자 색시는 호두살에 좁쌀을 섞어가지고 호두죽을 쑤었다. 신랑은 난생처음 보는 호두죽을 약으로 여겨 달게 먹었다. 세끼 호두죽을 먹고 있은 지 닷새재 되는 날 점심이었다.
오줌이 마려워 오줌을 누던 신랑은 왼쪽 윗배에서 아랫배 쪽으로 무엇인가 꿈틀거리며 내려가는 느낌이 들었다. 이게 무슨 조화일까. 몹시 이상해하는데 꿈틀대며 내려가던 그것이 배꼽 아래 배에서 멎는 감을 느꼈다.
그러자 무거운 돌이 짓눌린 듯 오줌이 나가지 못하고 답답해졌다. 급해 맞은 신랑은 색시를 소리쳐 불렀다.
“이보라구, 윗배 쪽에서 무슨 물건이 꿈틀대며 내려가댔는데, 아랫배에서 멎었어. 그래서인지 오줌이 안 나가.”
그 말에 색시는 손뼉을 쳤다.
“의원님이 말씀하셨지요? 콩팥에 있는 돌이 빠져 오줌길을 따라 내려가면 배가 꿈틀거리는 것 같고 그 돌이 오줌주머니에서 멈춰 서면 오줌을 눌 수 없으므로 물을 많이 마셔야 한다고!”
신랑은 색시가 내미는 물바가지를 받아 꿀꺽꿀꺽 들이켰다. 서너 식경(시간) 쯤 지나자 신랑은 아랫배가 불어나면서 오줌이 세게 마려운 감을 느꼈다.
“오줌이 마렵구만.”
그러기를 기다리던 색시가 얼른 요강을 내밀었다. 요강에 대고 오줌을 누려 하니 오줌은 나갈 듯 말 듯 하면서 안타깝기만 하였다. 그를 지켜보던 색시가 다정스레 귀띔했다.
“아랫배에 힘을 세게 주세요.”
색시가 일러준 대로 아랫배에 힘을 넣으니 좀 있어 오줌이 방울방울 나가고 이어 무엇인가가 꿈틀거리며 내려가는 느낌이 들었다. 하더니 갑자기 물사태가 난 듯 오줌이 쏴- 뿜어나왔다. 정말 시원하기가 그지없었다. 요강을 들여다보던 색시가 환성을 질렀다.
“야! 돌이 나왔어요. 콩알만한 돌이!”
신랑이 콩알만한 돌을 집어서 만져보니 거칠거칠한 가루 같은 것이 묻어나고 조금 힘을 넣어 쥐니 쉽게 부서졌다. 의원이 말하기를 약을 먹지 않고 저절로 빠져나온 돌은 돌덩이처럼 굳어 돌로 내리쳐야만 깨진다고 하였다. 그런데 이 돌은 가볍고 쉽게 깨지는 것을 보면 약 기운에 맥이 빠진 게 분명했다. 하다면 이 돌이 어떻게 되어 맥없이 빠져나왔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산앵두보다는 호두죽이 약이 된 것 같았다.
“혹시 호두죽이 이 병에 약이 아닐까?”
색시도 손뼉을 치며 말했다.
“바로 호두죽이 명약 같아요. 하여간 호두죽을 좀 더 먹으면 알 수 있겠지요.”
신랑은 병을 고치게 되었다는 기쁨으로 날아갈 듯하였다. 색시가 쑤어주는 호두죽을 또 며칠 먹으니 반대쪽의 콩팥에서도 돌이 빠져나왔다. 이로써 신랑의 허리병은 말끔히 나았다. 신랑은 꿈만 같아 고개를 기웃거렸다. 그렇게도 말썽을 부리던 석림이 호두죽이 약이 되어 뚝 떨어진 것일까? 신랑은 의문을 풀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어 이웃 마을의 의원을 찾아갔다.
“의원님! 호두죽이 석림에 좋은 약이오이까?”
의원도 고개를 기웃거렸다. 의서에 호두죽이 콩팥에 든 돌을 뽑아내는 약이라 쓰여 있지 않으니 의원도 알 수 없었다.
“하여간 자네 같은 병자가 있으면 호두죽을 써봅세.”
며칠 후 석림에 든 여인이 그 의원을 찾아왔다. 의원은 호두죽을 쑤어 먹어보라는 처방을 내렸다. 했더니 그녀도 석림을 고쳤다. 반가운 이 소식은 신랑, 신부에게 전해졌다. 호두야말로 석림에 알맞은 명약임을 깨달은 그들은 이듬해 봄 제일 좋은 텃밭에다 호두종자를 심었다.
싹이 돋아나 알뜰살뜰 가꾸었더니 한 해 만에는 실한 나무모로 되었다. 이렇게 되어 호두나무는 이 고을에도 퍼지게 되었고 호두죽은 몸보신에 뿐 아니라 신석증을 치료하는 약음식으로 후세에 전해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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