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서울 근대사 산책

덕수궁과 정동 일대에 어린 우리 근대사, 열강의 조선을 둘러싼 각축장 속에서 자주독립을 쟁취하고자 일어섰던 민중들

 

10월에도 서울 근대유적 해설단은 덕수궁 근대사 기행을 진행했습니다. 흐린 날씨에 간간히 빗줄기가 부스스 내렸지만, 덕수궁은 가을의 고궁 정취를 느끼려는 관광객들로 붐볐으며 이번 기행엔 역문협 회원 11명이 함께했습니다.

 

 

이번 기행해설은 최진미 해설단장이 맡았습니다. 학비노조, 진보당 노원구위원회, 광주 초등학생 등 여러 번에 걸쳐서 덕수궁 기행해설을 진행했던 베테랑 해설사로, 매번 해설을 할 때마다 어떻게 하면 우리 역사를 통해 참가자들과 함께할 수 있을까, 역사해설을 더욱 쉽고 재밌게 잘 할 수 있을까 고민합니다.

이번 기행 경로는 대한문-함녕전-정관헌-석어당 및 즉조당, 준명당 일원-중화전-석조전-돈덕전 순으로 덕수궁 경내를 둘러보고, 고종의 길을 통해 러시아공사관 터를 관람한 뒤 중명전으로 향하는 순입니다.

먼저, 기행의 시작은 고종의 편전(집무실) 겸 침소로 사용된 함녕전이었습니다. 함녕전 앞에서는 고종이 아관파천 후 덕수궁(당시 경운궁)으로 돌아와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광무개혁을 추진한 것에 대한 해설이 진행되었습니다. 정치적 격변기에 자주독립과 사회의 진보를 위해 몸을 아끼지 않았던 민중을 믿지 못하고, 시대에 역행하며 외세에 의존한 개혁은 실패할 수밖에 없고, 그 결말은 일제 강점과 고종 자신의 강제퇴위 및 암살로 비참했음을 참가자들은 해설을 들으며 여실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함녕전 뒤편에는 고종이 커피와 다과를 즐겼던 연회장인 정관헌이 있습니다. 전통 건축과 서양 건축이 혼합되어 이국적인 풍경을 자아내는 정관헌을 둘러보며, 참가자들은 김홍륙 독차사건과 그 사후처리를 둘러싼 만민공동회 이야기 등을 흥미롭게 경청했습니다. 통역관으로 러시아를 뒷배로 각종 전횡을 일삼다가 토사구팽이 예고되자 커피에 독을 타 고종을 시해하려 했던 김홍륙, 자신을 시해하려 했다는 사실에 분노해 김홍륙을 잔혹하게 다루고 그 가족까지 노륙법을 통해 처벌하려 했던 고종, 이에 맞서 아무리 대역죄인이라도 구시대적이고 잔인한 처벌이 아닌 재판을 통해 시시비비를 가리고 가족을 연좌제로 엮으면 안된다며 규탄했던 당시 민중들의 깨어있는 의식 등…. 특히, 만민공동회에서 김홍륙 독차사건 처리에 대한 시위뿐 아니라 반외세 항쟁도 숱하게 벌어져 조선을 서로 갈라 먹으려던 열강의 기도를 여러 차례 저지시킨 이야기는 당시 민중의 힘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참가자들은 석어당-즉조당-준명당-중화전 순으로 기행을 이어갔습니다. 임진왜란 때 의주까지 피난갔다가 석어당으로 돌아온 선조의 이야기와 아관파천 이후 덕수궁으로 돌아온 고종의 이야기를 함께 비교해 보며,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나라를 버리고 도망쳤다가 백성의 힘으로 나라를 되찾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 돌아와 백성 위에 군림했던 두 임금의 공통점을 느끼고 참된 지도자란 과연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할 수 있었습니다. 중화전 앞에서서는 근정전, 인정전 등 다른 고궁의 정전과 달리 황제국을 표방하여 문살에 금칠을 한 이야기나 중화전이 1904년에 화재로 불타 복층이던 건물이 복원 과정에서 1층으로 줄어든 이야기 등 여러 흥미로운 이야기가 이어졌습니다.

 

이어서 관람한 덕수궁 내 대표적인 서양식 전각인 석조전과 1년 전 복원을 끝낸 돈덕전은 가을 정취와 어우러져 아름다운 자태를 뽐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론 이 두 전각이 대한제국 13년간 제대로 쓰이지 못하고 일제강점 뒤에나 완공되거나 단순히 외국 귀빈용 숙소로 사용되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었다는 아픈 사연이 깃들어 있습니다. 석조전, 돈덕전을 둘러보며 참가자들은 ‘보여주기식 건물 짓기’를 통해 고종이 꿈꿨던 근대의 실상이 무엇인지, 또 두 건물을 짓는데 들어간 막대한 돈이 만약 백성을 살리고 국력을 강화하는 데 쓰였으면 우리의 근대가 어떠했을지 상상해 보았습니다.

 

 

덕수궁 관람을 끝내고, 참가자들은 고종이 아관파천 당시 피난길로 사용한 ‘고종의 길’을 거쳐 옛 러시아공사관 터(정동공원)을 거쳐갔습니다. 여정 속에서 고종이 왕세자 순종과 함께 야밤에 몰래 도망치다시피 빠져나와 피신한 이야기, 고종의 기대와 달리 러시아가 이미 일본과 로마노프-야마가다 밀약을 맺고 조선 분할점령까지 논의했었던 이야기 등을 들으며 기행을 이어갔습니다. 이 과정 속에서, 참가자 중 한 명은 오늘날의 정치 상황과 비교하여 감상을 나누어 참가자들의 공감을 얻어내기도 했습니다.

 

이후, 손탁호텔 터(이화학당 100주년 기념관)을 거쳐 여정은 을사늑약이 벌어진 현장인 중명전에서 끝났습니다. 기행해설을 마치는 자리에서 최진미 단장은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임진년 의병의 자식들이 을미년의 의병이 되었고, 그들의 자식들은 무엇을 할까요”(일본군 장교 대사) , “눈부신 날이었다. 우리 모두는 불꽃이었고 모두가 뜨겁게 피고 졌다. 그리고 또다시 타오르려 한다. 동지들이 남긴 불씨로. “(고애신) 등의 구절을 인용하며 우리 근대사의 진정한 의미와 자주적 역사관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이번 기행 역시 참가자들의 많은 호응과 질문을 받으며 성황리에 진행되었고, 심지어 평범하게 덕수궁을 관람하던 인원도 기행해설에 어느 순간 따라오며 흠뻑 빠져들 정도였습니다. 또한, 참가자 중에서는 2기 근대역사 해설단 모집 때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자신도 우리 근대사의 참 의미를 널리 알리는 데 기여하고 싶다는 의견을 남겼습니다.

 

<서울 근대유적 해설단> <남북역사문화교류협회>에서 개최하는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우리 근대사 산책>은 경복궁, 창덕궁, 덕수궁 등 고궁뿐 아니라 서대문, 망우역사문화공원 등 새로운 기행코스와 해설을 앞으로도 발굴, 개발하여 더 많은 사람들과 우리 근대사의 참 의미를 나눌 것입니다. 앞으로도 많은 참여와 관심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