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서울 근대사 산책
경복궁에 담긴 우리 근대사, 격변의 시기 나라와 백성을 버린 권력자에 대해 생각하다
지난 6월 북촌 근대사 기행에 이어, 서울 근대유적 해설단은 9월 26일에 경복궁 근대사 기행을 진행했습니다. 추석까지도 길게 이어졌던 폭염이 끝났고 모처럼 찾아온 환한 초가을 햇볕 아래, 역문협 회원 11명이 이번 근대사 기행에 함께 했습니다.
이번 기행해설은 이경희 해설사가 맡았습니다. 함께 근대사를 공부하고, 서울 근대유적 해설 연습도 오랫동안 진행했으나 시작 전에 이경희 해설사는 자신이 과연 이 거대한 경복궁을 참가자들 앞에서 잘 진행할 수 있을까 걱정에 밤잠을 설쳤다고 합니다. 그러나, 막상 기행해설을 진행할 때 이경희 해설사는 경복궁 곳곳에 담긴 여러 이야기들과 우리 근대사에 대해 차분하게 잘 설명하며 참가자들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산책 경로는 광화문에서 이번 산책 내용을 소개한 후, 근정전을 시작으로 수정전-경회루-사정전-강녕전 및 교태전-함화당 및 집경당-향원정-건청궁 순이었습니다.
우선 경복궁을 둘러보기 전 광화문과 경복궁의 흥망성쇠에 대한 이야기가 진행되었습니다. 조선 초기 수도를 한양으로 정하며 경복궁이 왕조의 이상을 담아 세워진 이야기, 임진왜란 때 왜군을 피해 선조와 조정대신들이 도망치고, 빈 경복궁이 전쟁의 참화 속에 불타 수백 년동안 빈 터가 되었던 이야기, 흥선대원군이 무너진 왕실 권위를 일으켜 세우고자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으면서까지 경복궁을 중건한 이야기, 갑오개혁-청일전쟁-을미사변 등 근대의 여러 풍파 속에서 또다시 외세에 의해 침탈당하고 왕실에 의해 버려진 이야기, 그리고 근현대에 경복궁이 어떻게 일제에 의해 철저히 파괴당했다가 복원을 통해 다시 제 모습을 찾아가는지 등… 경복궁에 담긴 역사에 대한 해설에 참가자들은 흠뻑 빠져들었습니다.
처음 탐방한 전각은 조선의 법궁 경복궁의 정전인 근정전입니다. 흔히 경복궁 하면 근정전이 가장 먼저 떠오르고, 사극에서도 임금님이 신하들에게 어명을 내리는 장면으로 자주 등장하여 익숙한 전각이지만, 정작 근정전에 반영된 우리 궁궐의 고유한 아름다움에 대해선 잘 몰랐습니다. 특히, 근정전의 진정한 멋은 인왕산과 북악산 등 주변 자연환경과 함께 어우러진 것임을 실감하며, 우리 궁궐의 아름다움에 대해 잘 느낄 수 있었습니다.
여정은 수정전으로 이어졌습니다. 경복궁의 역사와 더불어 수정전도 많은 사연을 담은 전각입니다. 조선 초기엔 집현전으로 불리며 세종대왕이 집현전 학자들과 함께 가장 과학적인 글자인 한글, 훈민정음을 만들고 반포한 곳이었고, 연산군 때는 권력을 악용하여 학자들을내쫓고 기생들을 훈련시키는 ‘흥청’으로 변질되어 ‘흥청망청’의 어원이 된 적도 있습니다.
특히, 근대에는 우리 민족의 자주적 근대 개혁인 갑오개혁을 추진하고 집행한 군국기무처가 이곳 수정전에 설치되어 활동했습니다. 참가자들은 수정전 해설을 들으며 당시 조선을 둘러싼 외세의 야욕과 간섭이 치열하던 와중에 온갖 시련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군국기무처가 자주적으로 개혁을 추진하고자 했는지, 또 갑오개혁에 담긴 신분제 폐지를 비롯한 다양한 개혁안들이 어떤 의의를 가지는지 실감나게 배울 수 있었습니다.
이어서 수정전 뒤편의 경회루로 향했습니다. 경복궁의 공식 연회장소로 세워진 경회루를 보며, 경회루 자체의 웅장함과 주변 환경과 조화된 아름다움에 감탄했습니다. 그리고 한편으론 경회루 한켠에 부자연스럽게 자리잡은 하향정도 돌아보았습니다. 이 하향정이 원래부터 있던 건물이 아닌 대통령 이승만이 전쟁 와중에 짓고 부인 프란체스카와 놀던 장소라는 해설을 들으며, 외세와 분단으로 고통받는 민중은 아랑곳 않고 자신의 권력을 남용해 문화재를 파괴하며 놀이장소나 지은 이승만의 실체에 대해 똑똑히 알 수 있었습니다.
여정은 사정전(집무실)-강녕전 및 교태전(침소)-함화당 및 집경당을 거쳐 경복궁 뒷편에 자리잡은 향원정으로 향했습니다. 북악산 아래 연못과 더불어 절경을 자아내는 향원정 역시 우리 근대사 이야기가 담긴 장소입니다. 바로, 고종과 명성황후(민비)가 대원군의 간섭을 피하고자 경복궁 북쪽에 세운 ‘궁궐 안의 궁전’인 건청궁의 후원이기 때문입니다. 집권 초반 섭정을 맡으며 강력한 권력을 지녔던 대원군의 간섭에 얼마나 시달렸으면 침소를 따로 세울 정도였을지 느껴지지만, 한편으론 외세가 조선을 침탈해 오는 과정에서 나라의 힘을 길러도 모자랄 판에 또다시 자금을 탕진해 ‘궁궐 속 궁전’을 짓고, 그 후원에선 온돌까지 놓으며 향락을 즐겼던 고종과 민비가 과연 어떤 지도자였나 고민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향원정은 동아시아 최초로 전기가 설치된 장소이기도 합니다. 당시 고종은 경복궁을 밝히고자 막대한 자금을 들여 미국 에디슨 전기회사에 직접 발주해 발전기를 설치하고 향원정 곳곳에 전등을 설치했는데요, 이 과정에서 향원정 연못 물을 발전기 냉각수로 사용하는 바람에 연못 물이 뜨거워져 물고기들이 떼죽음을 당했고, 기껏 설치한 전등 역시 걸핏하면 꺼져 ‘건달불’이라 불렸다고 합니다.
보통 전기를 근대화의 상징이라고 말하는데요. 그때 향원정에 설치된 전기가 백성의 삶을 밝히는 전기가 아니라, 무능한 왕실의 사치를 위한 도구였다니 참 역설적이지 않습니까? 우리 민족의 앞길을 밝히는 전기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여정의 마지막은 건청궁으로 향했습니다. 건청궁은 1895년에 민비가 궁궐을 침탈한 일본군에 의해 무참히 살해된 을미사변이 벌어진 비극의 장소로 유명합니다. 건청궁 툇마루에 앉아 참가자들은 당시 조선을 둘러싼 일본, 청, 러시아, 미국 등 열강들의 이권 쟁탈전과 이 과정에서 백성을 믿지 못하고 외세에 의존해 나라의 독립을 지켜보려 했던 고종과 왕실의 무능함, 조선을 집어삼키고자 궁궐까지 쳐들어와 왕비까지 학살한 일본의 만행 등에 대한 실감난 해설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참가자들은 경복궁 근대사 기행을 통해 격변의 시기였던 우리 근대사 속에서, 나라의 자주독립과 근대개혁을 위해 노력했던 백성들과 달리 자신의 안락과 생존만을 위해 백성을 버리고 외세에 의존했다가 종국엔 나라까지 빼앗기고 만 고종을 비롯한 지배층의 실체에 대해 느낄 수 있었습니다. 또한, 경복궁 역시 단순한 조선의 법궁이 아니고 우리 근대사를 이끌어 온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얽혀 있음 알게 되며 많은 감명을 받았다고 합니다. 한 참가자는 “교과서에서 배우지 못한 우리 근대사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알찬 기행이었다.”라고 말했습니다. 참가하진 모든 분들은 지친 삶의 힐링이 되고, 자주와 평화를 위한 이 기행에 앞으로도 참가하고픈 마음들을 표현해 주었습니다.
<서울 근대유적 해설단>과 <남북역사문화교류협회>에서 개최하는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우리 근대사 산책>은 10월 덕수궁 기행으로 계속 이어집니다. 많은 관심 바랍니다.
Social Link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