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이른 아침 려옥은 김이 물물 나는 조밥을 도시락에 정성 들여 퍼담고 있었다.
어두운 새벽부터 나루터에 배를 부리러 나간 남편 곽리자고에게 가져다줄 조반이었다.
소리쳐 부르면 얼마든지 들을 수 있는 가까운 곳에 나루터가 있건만 려옥은 아침마다 정성껏 밥을 지어 식을세라 품에 안고 남편이 일하는 나루터에 나가 조밥을 대접하곤 하였다.
이른 아침에 강을 건너는 길손들이 적지 않아 자리를 뜰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려옥은 남편이 조반을 드는 사이에는 자기가 노를 저어 길손들을 건네주기도 하고 배 안에 찬 물을 퍼내기도 하며 그가 마음 놓고 아침밥을 들도록 마음을 쓰곤 하였다.
이렇게 한지가 벌써 10여년 세월이 흘렀다. 그사이 려옥에게는 남편의 뒷바라지를 하는 이 아침 일과가 행복한 순간으로 소중히 간직되게 되었다. 지금도 그는 남편에게 가져갈 조반상을 내려다보며 무엇이 미흡한 것이 없는가 세심히 훑어보았다.
조밥그릇 옆에는 자그마한 토기에 고사리를 비롯한 몇 가지 나물 찬이 담겨져 있고 그 옆에는 또 조롱박 모양의 술방구리에 기름이 동동 뜨는 탁배기도 곁들여있다.
비록 산해진미는 없어도 정성이 어린 조반상이었다.
려옥은 강가의 자갈밭에서 자기가 지어온 조반을 맛있게 들곤 하던 남편의 순박하면서도 정 넘친 얼굴을 그려보며 서둘러 베보자기에 그릇들을 차곡차곡 싸안고 부엌문을 나섰다.
그가 막 토방을 내려서려는데 뜻밖에 남편이 한쪽 어깨에 노대를 제껴 메고 맥없이 사립문에 들어서는 것이었다.
여느 때 없이 일찍 들어온 남편을 의아하게 여긴 려옥은 얼른 밥보자기를 토방 위에 내려놓고 그에게서 노를 받아 토방 모서리에 세우며 무슨 일이 있었는가 하고 물었다.
곽리자고는 대답 대신 토방 위에 털썩 주저앉으며 고개를 천천히 가로저었다.
본시 입이 무거운 남편의 성미를 잘 알고 있는 려옥은 그가 자기를 안심시키려고 그려는 것 같아 근심어린 안색으로 한걸음 바싹 다가서며 재차 물었다.
《여보,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얼굴색이 그래요?》
그제야 곽리자고는 《후-》하고 한숨을 내쉬더니 무겁게 입을 열었다.
《여보, 내 이자 방금 참 기막힌 일을 겪었소. 새벽에 첫 길손들을 강을 건네주고 다시 몇 사람을 태우고 배를 돌려 돌아오는데 웬 사람이 강기슭으로 허둥지둥 달려오지 않겠소. 흰머리를 마구 풀어헤치고 손에는 자그마한 호로병같은 것을 쥐었는데 노를 저으며 바라보자니 글쎄 그 사람이 무작정 강물에 뛰어들어 물살이 센 깊은 곳으로 자꾸 들어오는 것이 아니겠소.》
여기까지 이야기한 남편은 잠시 말을 끊고 긴 한숨을 몰아쉬었다.
《아니, 연세도 많은 그 어른이 물에 빠지면 어쩔려구…》
려옥은 벌써 가슴이 두근거려 작은 두 손을 가슴에 모아 붙이며 긴장해서 남편의 입을 쳐다보았다.
그러는 아내를 측은한 눈길로 바라보며 곽리자고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내가 막 노를 저어 급히 그한테로 가고 있는데 맞은편 강언덕에서 그 노인의 아내인듯싶은 여인이 남편더러 강을 건너지 말라고 목청껏 소리치며 달려오는 것이였소. 하지만 때는 이미 늦었소. 내가 그 노인한테까지 절반도 채 못갔는데 그만 센 물살에 휘말려 사라지고 말았소.》
《어마나, 그걸 어쩌나…》
남편의 입에서 무서운 이야기가 나올가봐 마음을 조이고 있던 려옥이 그만에야 무릎 위에 손바닥을 털썩 놓으며 소리쳤다.
곽리자고는 또 한번 무겁게 한숨을 쉬고 나루터의 왼편을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그 여인은 저기 저 버들 숲이 우거진 언덕 위에 올라 한참이나 통곡하더니 슬프게 노래를 불렀소. 그리고는 누가 말릴 새도 없이 훌쩍 일어나 자기도 깊은 강물에 몸을 던지고 말았소. 내 10여 년 세월 이곳에서 나룻배를 부리며 숱한 길손들을 강을 건네주었지만 내외가 한날한시에 강물에 몸을 던져 목숨을 끊은 일은 처음 보는구려. 그래 내 마음이 하도 산란하고 일손도 잡히지 않아 일찍 들어오고 말았소.》
남편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난 려옥은 강가에서 애타게 남편을 부르다가 물에 몸을 던진 그 여인의 애처로운 정상이 눈에 금시 떠올라 그만 목이 꽉 메었다.
그는 저도 모르게 남편의 어깨에 눈물이 흘러 축축해진 자기의 얼굴을 가져다 대며 한 손으로 그의 다른 어깨를 꼭 그러안았다.
기둥처럼 믿고 사는 자기 남편에게도 그 무슨 상서롭지 못한 일이 생기지 않을가 더럭 겁이 났던 것이다.
곽리자고는 몸을 바르르 떨며 전에 없이 자기의 품에 파고드는 아내의 애절한 심정이 헤아려져 그를 넓은 품에 껴안고 배일에 굳어진 마디 굵은 손으로 얼굴에 흘러내린 눈물을 씻어주었다.
그러는 곽리자고의 눈가에도 맑은 눈물이 맺혔다가 주르르 흘러내리는 것이었다.
아, 이 험한 세상에서 이처럼 연약한 내인들이 남편 없이 어떻게 홀로 살 수 있으랴.
아마 그 여인도 그래서 강물에 몸을 던진 것이 아니랴.
이윽고 곽리자고는 아내의 손을 다정히 잡으며 말했다.
《여보, 그들 부부의 영혼을 위로해줍시다. 당신 그 공후 있지? 그걸루 한 곡조 타구려.》
려옥은 남편의 권고에 말없이 일어나 방안에서 공후를 안고 나왔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언제나 마음의 벗이 되어온 공후였다.
려옥은 조용히 남편의 옆에 앉아 공후를 안고 방금 전에 남편이 들려준 그 여인이 불렀다는 노래의 곡상을 더듬으며 생각에 잠겨있더니 드디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였다.
강가 마을의 눅눅한 바람은 노인부부의 원한이 서려 있는 듯 무겁게 드리워있던 아침 안개를 부드럽게 헤쳐놓으며 맑고 청아한 공후의 소리에 맞추어 부르는 려옥의 그 슬픈 노랫소리를 사연 깊은 그 나루터로 실어갔다.
그 노랫소리는 마치도 불쌍하게 죽은 늙은 부부의 영혼을 위로하는 듯 하였다.
* 조선문학사와 음악사에 고대 개인 서정가요의 첫 작품으로 알려져 있는 가요 《공후의 노래》는 이렇게 고조선의 평범한 한 뱃사공의 안아내인 려옥에 의하여 창작되었다.
그 후 이 노래는 이웃에 사는 려옥의 동무인 려용에게 전해졌고 그를 통해 한입 두입 건너 세상에 널리 퍼지면서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의 길 동무가 되어 세월의 물결을 타고 오늘까지 전해지게 되었다.
자료에 의하면 《공후의 노래》는 B.C. 3세기경에 벌써 이웃 나라인 중국에까지 널리 전파되었으며 중국의 옛 문헌들인 《고금주》, 《고요언》에도 실리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노래가 《해동역사》, 《오산설림》, 《열하일기》 등에 실리여 전해지다가 근세에 이르러 편찬된 《대동시선》에 《공후인》이라는 제목의 한자시 형태로 실려 전해지고 있다.
평범한 뱃사공의 아내인 려옥이 공후를 능숙하게 다루며 즉석에서 자기의 생활체험을 담은 노래를 지어불렀다는 사실은 당시 우리나라 민간음악과 시가문학이 상당한 정도로 발전해 있었다는 것을 잘 말해준다.
Social Link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