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한 자식 매로 키운다.

신성호

고구려 중엽 평양의 대동강가 마을인 밤나무골에서 있은 일이다.

이마을에는 약속이나 하고 자식들을 낳은 듯 맏이로부터 여섯째 막내에 이르기까지 사내아이들인데가 연년생으로서 나이도 서로 꼭 같은 아들들을 가진 두 집이 있었다. 한 마을에 이런 두 집이 있는 것은 정말 보기 드문 일이어서 마을 사람들은 그 두 집을 가리켜 ‘두 동갑네 집’이라고 불렀다.

그 중 한 집은 마을에서 첫손가락에 꼽는 땅 많은 부자집이고 다른 한 집은 그 부자집의 밭을 부치는 작인집이었다. 잠시도 가만있지 않고 장난이 세찬 열 살 또래의 아이 셋이면 굿 판인양 소란스럽다 했는데 그 곱이나 되는 아이들이 벅적 끓어 대니 ‘두 동갑네 집’ 부모들은 자식들 단련에 머리가 셀 지경이었다. 자식들을 가르치는 두 집 부모들의 훈시는 판판 달랐다.

한번은 두 집의 맏이들이 대동강에 미역을 감으러 나갔다가 어부들이 잡아 놓은 숭어를 몰래 훔쳐 온 일이 있었다. 팔뚝만한 숭어를 그것도 몇 마리나 들고 집에 들어오는 맏이를 본 부자집 주인은 대번에 입이 헤벌어졌다.

“너 그게 어데서 났는냐?”

욕심 많은 아버지의 성미를 아는 부자집 맏이인지라 사기가 나서 아뢰었다.

“아버지, 실은 ‘동갑네 집’ 큰 자식과 함께 강에 나갔다가 어른들이 잡은 걸 슬쩍해서는 난 다섯 마리를 가지고 그 자식한테는 한 마리만 주었소이다.”

그 말에 부자는 아주 흡족해서 껄껄 웃었다. 그리고는 여러 자식들 앞으로 맏이를 내세우며 큰 소리로 말했다.

“맏형이 정말 장하다. 세상에 공짜 아닌 것 없는데 그설 손에 넣으면 내것이요, 그걸 보면서도 마음이 약해 못 가지면 남의것이 되느니라. 오늘 맏형이 잘못한 것은 작인 집 애녀석한테 숭어를 한 마리나 내준거다. 우리 집 땅을 부치는 작인들은 내 집 종과도 같은 데 그런 헤픈 인정을 쓰면 앞으로 큰 부자기 될 수 없다.”

부자는 또 아내를 불러 분부했다.

“어서 숭어국을 끓여서 공을 세운 맏이한테는 가운데 토막들만 가득 담아주어야 겠소.”

맏이는 우쭐해서 아버지의 팔에 매여달렸다.

한펀 가난한 농사군 집에서는 일이 정반대로 벌어졌다. 맏이가 들고 들어온 숭어가 생긴 까닭을 안 농사군은 그 애를 동생들 앞으로 끌어내고 회초리를 집어 들었다.

“이녀석! 너는 내 잘못이 앞으로 어떤 후환을 가져오리라는 걸 알아야 한다. 네가 남의 것을 탐냈다는 건 놀고먹으려는 나쁜 마음이 싹터 자란 다는 것이고 심보 사나운 부자집의 자식과 짝자꿍을 했으니 그 집사람들을 본받아 장차 마을 사람들에게 악한 짓을 저지를 수 있다는 것이며 오늘은 비록 숭어 한 마리를 가지었지만 바늘 도둑이 소 도둑 된다고 앞으로 큰 도둑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아비는 내 자식이 사람이 안되는 걸 원치 않는다. 그래서 난 네가 사람되길 바라서 쉰 번 최초리를 안기자는 것이다.“

농사군이 버썩 걷어 올린 맏이의 장딴지를 때린다는데 어찌나 사정없이 회초리질을 하는지 아이의 두 다리에는 시뻘건 줄이 엎지고 덮치었다. 매를 안기고 난 농사군의 얼굴이 먹장구름이 실린 하늘처럼 몹시 어둑컴컴하였다. 잘못을 저지른 자식들에게 매를 안길 때면 그의 가슴은 찢어지는 듯 하였다. 세상에 부모들치고 제가 낳은 자식에게 매를 들기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어린 자식들이라고 해서 잘못하는 것을 보고 좋은 말로나 타이르고 어루만지면 철없는 그 아이들이 제 잘못을 고칠 수 없는 것이다.

농사군은 쓰린 가슴을 부여안고 엄하게 말했다.

“사람이 잘 입고 잘 먹는다고 해서 살림이 되는 것도 아니고 기운 잠뱅이를 걸치고 시래기 죽이나 먹는대서 사람이 못된다는 법 없다. 정직하게 제힘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진짜 사람이거니 네가 또 다시 남의 것에 손을 대면 이 집에서 영영 내쫒기는 날인 줄 알아라.“

그날 농사군은 맏이의 손에 숭어를 들려 가지고 어부들을 찾아가 용서를 빌었다.

얼마후 어느 날 유독 ‘두 동갑네의 집’의 셋째 녀석들이 글방에 갔다가 늦게 돌아온 일이 있었다. 전날 배운 글을 외워가지고 오라는 글방선생의 분부를 어긴 탓으로 하여 다른 애들은 일찌감치 돌아갔지만 그들은 나머지 공부를 하느라 붙잡혀 있었던 것이었다.

이 사실을 안 부자는 얼굴이 붉으락 푸르락해 가지고 자식들이 보는 앞에서 글발 선생을 헐뜯었다.

“이 썩어빠진 선비놈아, 감히 내 집의 귀한 아들을 상놈집아이들 앞에 놓고 욕을 보여? 그 잘난 글줄이나 똘똘 외워 바친대서 그 아기가 부자가 되느냐 말이다. 다시 한번 내 아들을 붙잡아 두고 그런 욕을 보인다면 내 결단코 네 놈을 가만두지 않을테다.”

이윽고 부자는 자식들을 둘러 보며 일렀다.

“너희들은 부자이니 상놈들과 다른 귀한 사람들이다. 그런데도 상놈들앞에서 꾹 참고 욕을 본다면 그런 시라소니가 어디 있단 말이냐. 너희들은 오로지 더 권세있고 더 돈많은 사람들앞에서만 고개를 숙여야 하는거다.“

한편 농사군의 집에서는 회초리를 든 아버지가 자식들 앞으로 셋째 아들을 끌어내었다.

“너, 이녀석, 자고로 스승은 부모우에 있는 존귀한 어린이라 했거늘 네 어찌 사부님의 뜻을 어기고 글을 걸써 배울 수 있느냐. 사람이 글을 배우는 것은 세상 이치를 깨치자는 것이고 세상 이치를 깨치자는 것은 아래로 부모에게 효도하고 우로는 나라를 받들자고 함이니라. 이 아비는 바로 너의 머리속에 이걸 새겨주려 쉰대의 매를 안기자고 한다,“

농사군은 늘 그러했듯 속으로 눈물을 삼키며 아픈 매를 들었다. 몇 달이 지난 어느날 마을 사람들은 한 자리에 모여 씨름판을 크게 벌려 놓았다. 어른들의 씨름에 이어 아이들의 씨름도 있었다. 아이들의 씨름에는 다른 아이들을 맞다드는 족족 모두 물리친 ‘두 동갑네 집’의 둘째 아들들이 맞붙게 되었다. 몸집도 힘도 어슷비슷해 보이는 그애들의 승부가 어찌될는지···

온 마을이 숨을 죽이고 지켜보는데 서로 마주잡고 용을 쓰던 두 아이 중 농사군 집 아이가 맥없이 넘어지는 것이었다. 손에 땀을 쥐고 지켜보던 사람들은 어이가 없어 입을 다시었다. 맞다드는 아이들을 어른들이 쓰는 높은 씨름수로 가볍게 이기군 하던 농사군집 아들이 미욱스럽게 힘으로만 뻐기는 부자집 아들에게 맥없이 졌으니 그럴만도 하였다.

작인집 자식을 이겼다고 기고만장해진 부자는 제 아들이 상으로 탄 송아지를 가리키며 웃고 떠들어댔다. 그 꼴을 보는 농사군은 속이 좋지 않았다. 씨름수가 월등한 내 아들이 미욱돼지같은 부자집 아이한테 지다니··· 집으로 돌아온 농사군은 자식들 앞으로 둘째 아들을 물러냈다.

“내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네가 졌다는 곳이 이해되지 않는다. 너 한테 필경 무슨 곡절이 있으니 숨김없이 털어놓거라.”

하는 수 없이 둘째는 고개를 떨구고 이실직고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저··· 사실은 그애가 부자집의 체면을 보아달라면서 돈을 주기에···”

농사군은 그만 성이 머리우에까지 나서 회초리를 집어들었다. 회초리를 집어든 그의 눈에서는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시퍼런 불이 일고 있었다.

“이 숙맥단지같은 놈아. 씨름은 싸움이나 같은 건데 뭐가 어쨋어? 그래 나라를 지켜 전장에 나선 군사가 적군이 돈을 찔러 준대서 일부러 패해야 한단 말이냐? 너는 죄 중에서도 제일 못된 큰 죄를 지었으니 매를 쉰대가 아니라 백대를 맞아야겠다.”

농사군은 이전보다 더 사정없이 매를 쳤다. 시뻘겋게 부어오르는 아들의 다리였지만 그는 기어이 백대의 매를 안기고서야 회초리를 내던졌다. 그리고는 늘 매를 들 때면 자식들의 죄가 무엇인지 적어두던 책을 집어들었다. 책에다 붓을 달리는 농사군의 손을 아직도 분노로 하여 후들후들 떨리고 있었다. 글을 다 쓰고난 농사군은 매를 맞고 눈물을 흘리는 둘째의 손에 회초리를 들려주며 말했다.

“오늘 네가 이렇게 된데는 이 아비의 잘못도 있으니 넌 이것으로 나를 쳐라.”

다리를 걷어 올리는 농사군을 자식들이 와락 둘러싸고 무릎을 끓었다. 맏이가 형제들을 대표하여 아뢰었다.

“아버님! 오늘 저희들은 나라를 지키는 전장에 나선 군사는 손이 떨려서는 안된다는 것 깨달았소이다. 그러니 아버님의 그 분부만은 거두어 주소이다.”

그제서야 농사군은 마음이 풀려 자식들을 손잡아 일으켰다.

“깨달았다니 됐다. 대개 가난한 집의 자식들은 부자집 자식들과 달리 부모들의 일손을 돕고 형제들간에 화목하게 사는 좋은 기풍이 있는데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한 집안의 화목도 좋지만 나라를 위해 마음도 바치려 하는 것이 좋은 일이다.”

이렇게 농사군은 자식들이 범하는 크고 작은 결함들을 스쳐 지나지 않고 엄하게 다스렸다.

그 후 농사군집의 여섯 자식들은 끌끌한 사내대장부로 자라났고 나라에 외적이 쳐들어올 때면 온 형제가 솔선 전장으로 달려 고구려군사의 용맹을 떨치었다. 그러나 제 살 궁리만 매운 부자집 자식들은 욕심 많고 인색한 제 아비를 본받아 재물을 긁어 들이기에 혈안이 돼버렸다.

세월은 흘러 ‘두 동갑네 집’의 부도들이 세상을 떠났다. 부자집에서는 장례를 치르기 무섭게 부모들이 남겨놓은 땅이며 집, 돈이며 쌀, 기물들을 둘러싸고 서로 더 많이 가지겠다는 개싸움이 벌어졌다. 죽은 애비한테서 욕심을 부려야만 부자가 된다는 못된 이치를 물려받아 그것이 골수에 배긴 여섯 아들은 저마다 땅문서와 돈 궤짝, 고간들을 차지하고 몸싸움을 벌리다 못해 관가에 고소했다.

골육상쟁으로 피투성이가 된 부자집 자식들과 달리 농사군 집에서는 재산을 서로 양보하는 ‘실갱이’가 벌어졌다. 서로 사양하던 끝에 둘째가 자기 주장을 내놓았다.

“우리 겨레의 풍습에는 부모들이 돌아가면 맏아들이 집안의 어른으로서 부모들의 재산을 상속받게 되어있으니 응당 맏형님은 사양할 수 없소이다.”

맏이는 고개를 저으며 반대했다.

“난 맏이니니 누구보다도 부모들의 정을 더 오래 받았다. 그러니 이 집과 기물들은 부모님들의 정을 제일 짧게 받은 막내에게 주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그 말에 여러 형제들이 고개를 끄덕여 수긍했다.

맏이는 궤짝속에서 책을 한 권 꺼내들었다. 지난날 아버지가 어린 자식들이 잘못을 저지를 때면 매를 안기고 그 정형을 적어둔 책이었다.

“이 책은 우리 집 재산의 제일가는 재산이고 가보이다. 난 이 가보를 간직하고 돌아가신 아버님이 한생 그러했듯 귀한 자식 매로 키우는 좋은 풍습을 그대로 이어가고자 한다.”

동생들은 저저마다 맏이의 팔을 부여잡으며 그를 호응해나섰다. 참으로 부자집과는 너무도 대조적인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이 집의 소행은 곧 온 고을에 알려져 사람들은 ‘귀한 자식 매로 키운다.’라는 말을 뇌이며 자손들을 옳은 길로 이끌어주기에 더욱 힘썼다고 한다.

전철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