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서평] 한반도문명의 뿌리 찾기
<새로 쓰는 고조선 역사>
박경순 저, 2017, 내일을여는책
2018년 봄부터 한반도에 평화의 기운이 힘차게 솟고 있다. 4월 27일 남북정상회담을 시작으로 5월 말, 6월 초에 북미정상회담이 예정되어 있으며, 남과 북은 각각 미국이나 중국, 러시아와 별도 정상회담을 진척시키고 있다.
바야흐로 전세계적인 냉전으로 형성된 1948년 분단과 그 연장선상에서 벌어진 한국전쟁 이후 65년 만에 한반도에서 전쟁과 갈등이 아닌 평화와 공존이 시작하려는 찰나이다. 정전협정이 종전을 넘어 평화협정으로 이어지고 평화체제로까지 나아가게 된다면, 외세에 의해 남북이 갈라진채 ‘절름발이‘처럼 왜곡되어온 사회에 ‘천지개벽‘과 같은 변화가 가능할 수 있을까…
지난 이명박, 박근혜 정부 임기 8~9년간 학계와 교육계 그리고 정치권과 교육부에 이르기까지 ‘국정교과서‘ 논란이 첨예하게 벌어졌다. 문재인 정부에 들어선 이후 ‘대통령 명령‘이라는 단순한 조치로 정부(교육부)의 ‘역사 개입‘이 하루아침에 사라져 버렸지만 당시 한국사회는 정부의 ‘국정교과서‘ 추진으로 수많은 사회적 갈등과 혼란이 발생했다. 그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필자는 당시 혼란의 1차적인 이유는 학문의 차원에서 개방적이고 다양한 논의가 이루어져야 하는 역사를, 정부가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특정한 방향과 내용으로 추진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특히 과거 정부는 친일파와 합세하여 독립세력을 말살한 이승만 정부와 이승만 정부와 같은 친일파의 뿌리에다가 반헌법적이고 반인권적인 군사쿠테타를 통해 국가와 사회와 인권을 유린한 박정희 군사정권을 미화하려고 부단하게 시도했다.
하지만 필자는 당시 논란이 컸던 이유가 다른 곳에서도 존재했다고 생각한다. 다른 이유라 함은, 1948년 해방 이후부터 한국의 사학계에 친일사학이 뿌리 깊게 존재해왔다는 것과 분단 이후 남북간의 역사연구가 단절됨으로써 한반도와 한민족의 역사에 대한 통합된 정립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라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저자 박경순이 출간한 <새로 쓰는 고조선 역사>는한반도 고대사에 대해 새로운 관점과 방향을 제시한다고 볼 수 있다.
일제 식민사관에 대한 저자의 문제의식과 비판은 엄정하다.
일제 식민사관의 핵심적 목표가 우리의 민족자긍심과 자부심을 꺾어버리고, 민족적 열등감과 패배의식을 심어줌으로써 식민지 지배에 순종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를 위해 우리나라 고대사 왜곡에 집중했다. 그들은 우리 민족을 머나먼 이국땅 시베리아 벌판에서 흘러 들어온 외래인으로 둔갑시켜, 뿌리 없는 민족으로 만들었다. 또한 우리 민족을 여러 족들이 혼혈된 혼혈민족으로 만들어버리고, 고조선의 역사를 신화라고 치부해버렸다. 한국문명은 중국문명의 아류로 전락시켰다. 임나일본부설을 퍼뜨려 삼국시대 한반도 남부지방을 야마토 정권이 지배했다고 우겨댔다. 우리 민족을 뿌리가 없고, 민족적 자긍심으로 내세울 만한 것도 없고, 독자적 문화 창조능력도 결여된 열등민족으로 만들어버렸다.
그렇다면 해방 후 70여 년이 지난 오늘의 현실은 어떠한가? 물론 친일파가 사회 곳곳을 장악했던 20세기보다는 나아졌음이 분명하다. 저자는 그동안 고조선의 역사를 새롭게 정립하고, 임나일본부설의 허구성을 과학적으로 입증하는 등 일정한 성과가 없는 것은 아니라고 인정한다.
그렇지만, 그는 고대사 영역에 관한 한 일제 식민사관에서 그다지 바뀐 게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고 주장한다. 다수의 사람들은 아직도 우리 민족은 다른 나라에서 흘러들어온외래인들의 혼혈로 구성되었고, 우리나라 신석기청동기문화는 시베리아 등 다른 지역으로부터 유입된 외래문화이며, 고조선은 여전히 고대국가가 아닌 그저 최초의 국가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역사시대는 삼국시대부터 그것도 원삼국시대를 지난 기원후 3-4세기에나 고대국가가 형성되었다고 보는 게 역사학계의 주류이다. 과연일제 식민사관과 무엇이 다른가?
2016~17년 광장촛불이 말해주둣이 21세기는 ‘격변의 시대‘이자 ‘반역의 시대‘다. 지난 70년간 한국사회를 멍들게 하고 망가뜨린 책임은 당연히 주류에게 있다. 이들 주류가 부정부패와 갑질과 독점으로 쌓아올린 것들이 바로 ‘적폐‘다.
광장의 촛불은 주권자의 힘으로 주류를 권좌에서 쫒아냈다. 하지만 주권자들은 최고권력자를 시작으로 사회 도처의 ‘적폐‘를 깨끗이 청소하기 시작했다. 친일 식민사관을 부여잡고 있는 주류사학계 역시 ‘적폐‘라는 지적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저자는 사학계의 적폐를 극복하기 위해 대학이라는 기득권, 주류사학계라는 적폐소굴이 아닌 허허벌판에서 고대사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한반도문명의 뿌리 찾기‘로 단군과 고조선을 먼저 조명하기 시작했다.
<새로 쓰는 고조선 역사>는 저자가 과연 이 땅 한반도에 언제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했는가? 어디로부터 흘러들어왔는가? 그들은 누구인가?라는 문제에 대해 과학적이고 실증적인 통찰을 담아낸 것이다.
고대사는 민족사의 출발, 민족의 뿌리에 관한 문제이며, 민족의 긍지와 자부심의 원천이다. 우리는 누구인가? 이 문제에 대한 해답 없이 그 어떤 민족적 긍지와 자부심도 형성될 수 없으며, 민족적 긍지와 자부심이 없다면 역사를 힘있게 개척해 나갈 수 없다.
특히 저자는 남과 북의 연구 결과를 학문적으로 존중하면서 자신의 문제의식에 따라 선별해 나갔다. 북한은 1993년 10월 [단군릉 발굴보고]를 통해 단군이 5,011년 전의 실존인물이라고 발표했다. 단군 유골 연대측정팀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북한 사회과학원 고고학연구소 연대측정실에서는 24번을 측정한 결과 5,011267이라는 측정치를 얻어냈다. 북한은 당시 단군릉만 달랑 발굴한 것이 아니라, 평양 주변의 고조선 관련 유적유물들을 집중적으로 재발굴하고, 기존 고조선 관련 연구물들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해 고조선 역사를 새롭게 정립했다.
그러나 우리나라 역사학계에서는 북한의 단군릉 발굴에 대해 진지한 학문적 접근과 연구를 하지 않고 있다. 그 결과 단군릉 발굴을 계기로 북한 학계에서 거둔 고조선 관계 연구성과들에 대해 진지하게 검토하기보다 백안시로 일관하고 있다.
이 책은 분단사학이 아닌 통일사학의 관점에 서서 단군릉 발굴 이후 북한 학계에서 거둔 연구성과들을 진지하게 접근하고 과감하게 수용했다.
우리가 역사를 올바로 정립하고, 그 뿌리를 찾고자 하는 것은 결국 5천 년 역사를 함께해 온 우리 민족이 70년 이상 지속되고 있는 분단역사에 종지부를 찍고 통일로 나아가기 위함이고, 그 출발은 분단의식의 극복과 민족자긍심의 제고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이것은 바로 역사의 영역에서 분단사학을 극복하는 데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북한 학계에서 거둔 성과들을 과학적으로 접근하고 과감하게 수용하여 한반도의 고대사를 새롭게 써야 한다.
그렇게 시작한 후 남북에서의 고고학적 발굴 성과들을 담아 한반도문명 창조의 주역은 외부에서 흘러들어온 주민집단이 아니라 한반도 후기구석기시대 신인의 직계후손들인 옛 유형의 한반도인, 즉 신석기시대 한반도인들이다라는 게 저자의 주요 논지의 하나다. 한반도 고대문명은 신석기문화와 청동기문화를 소유한 외부인들이 이주함으로써 시작된 것이 아니라, 한반도에 살고 있던 후기구석기시대 신인들이 동아시아에서 가장 빠른 시기에 신석기문화를 창조하면서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나아가 청동기문화의 시작은 기원전 35세기경으로 중국보다 적어도 1천년 이상 앞섰다고 제시하고 있다.
특히 고조선의 건국으로 한반도 원주민들에 의한 고대문명이 탄생됐다며 『삼국유사』에서 기록한 B.C. 2333년 보다 훨씬 앞선 기원전 30세기 초로 파악하고 고조선은 동아시아 최초의 국가를 건설함으로써 주변 지역의 문화발전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고 강조하고 있다.
저자는 그 근거로 단군릉 발굴에 의해 우리 민족의 원시조인 단군의 출생연대가 5,011267년(1993년 기준)이라는 것이 확인되었다는 북측 논거를 제시했다. 단군의 출생연대를 기준으로 고조선의 건국연대를 확정하는 것이 가장 과학적이라는 것.
이 흐름에서 보면 저자가 ‘궁산 문명‘으로 부르는 북한의 ‘대동강 문명‘이 떠오르고 수많은 역사자료들에서 고조선의 수도가 평양이라고 밝히고 있고, 수많은 유적유물들이 평양을 가리키고 있으며, 단군릉에서 단군의 유골까지 발견되었기 때문에 고조선의 수도는 평양이었다고 확증할 수 있는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평양의 위치 비정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실제로 진보적 재야사학계 일각에서도 대동강과 평양을 고조선의 중심지로 설정할 경우, 신채호 등이 제창한 부여–고구려–발해로 계승되는 대륙사관을 벗어나 우리민족의 역사 강역이 한반도 안으로 축소되면서 ‘한반도 안의 민족 고대사‘라는 한계를 벗어날 수 없다는 비판도 제기돼 있다.
‘고조선 수도 평양‘ 외에는 저자 역시 패수를 대동강으로 보지 않고 지금은 중국 대륙에 속해 있는 대릉하로 비정하는가 하면, ‘기자 동래설‘이나 ‘위만 조선‘, ‘한사군 한반도내 설치‘ 등 기존 ‘식민 사관‘에 대해 단호히 배격하는 일관된 입장을 취해 대륙사관과 궤를 같이하고 있다.
저자는 고대국가 고조선을 조선–후조선–만조선으로 이어졌다고 파악하고, 노예제적 성격 사회인 고조선의 경제와 문화 등에 대해서도 상세히 소개하고 있다.
발굴된 유적들을 근거로 최소 6천년 이전 신석기시대부터 누에치기를 했고, 비단실을 뽑아 의복을 만들었다든가 역사기록들을 토대로 ‘선인사상‘이라는 독특한 철학사상이 있었다는 설명 등이 그것이다.
실증 자료가 부족한 고대사에 대해 이처럼 손에 잡힐 듯한 풍부한 묘사가 가능한 것은 북측의 기존 연구성과를 토대로 삼았기 때문일 것이다. 저자는 이 책은 분단사학이 아닌 통일사학의 관점에서 단군릉 발굴 이후 북한 학계에서 거둔 연구성과들을 진지하게 접근하고 과감하게 수용했다고 밝히고 있다.
저자는 또한 ‘우리 민족의 형성과 고조선‘이라는 별도의 장을 할애해 ’21세기 민족문제‘도 각별히 조명하고 있다. 고대사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접근을 통해 우리 민족 형성의 경로를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분단과 국가보안법이 ‘정상적인 사고‘를 가로막고 있는 영역은 정치외교와 경제뿐 만이 아니라 사상과 학문 영역까지 광범위하다.
고대사 부분도 역시 예외가 아니다.
분단사학이 아닌 통일사학의 관점에서 단군릉 발굴 이후 북한 학계에서 거둔 연구성과들을 과감하게 수용했다. 우리가 역사를 올바로 정립하고 그 뿌리를 찾고자 하는 것은, 결국 5천 년 역사를 함께해 온 우리 민족이 70년 이상 지속되고 있는 분단역사에 종지부를 찍고 통일로 나아가기 위함이고, 그 핵심은 분단의식의 극복과 민족자긍심의 제고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이것은 바로 역사의 영역에서 분단사학을 극복하는 데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저자 서문 중에서)
[2018년 4월 22일]
(다른 책에 대한 리뷰가 궁금하신 분은 블로그 http://book.interpark.com/blog/connan 를 찾아가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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