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일의병 결사체 호남의병 창의동맹 진원지 금당사

 – 진안 마이산

금당사마이산 초입부분에 열반종 종찰 금당사라는 절이 있다. 서기 650년(백제 의자왕)때 현 사찰 서쪽 절벽위 바위터에 열반종의 도량으로 창건됐다. 본래의 터에는 고려말 고승인 나옹선사가 수행의 깨달음을 이룬‘나옹굴’이 위치, 불교의 성소로 일컬어지고 있다.

그러나, 이 사찰의 오랜 됨, 보다 의미를 더해 주고 있는 것은 일본의 침략 때 마다 항일운동의 중심에 항상 서 있었다는 역사적 사실 때문이다. 금당사는 정유재란(1597년)때 승군(僧軍)사령부가 위치해 의병활동의 전초기지 역할을 했고, 1905년 일제의 침탈로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호남지역 항일운동의 최선봉에 섰다.

1906년 9월 12일 마이산에 올라 의병 거사를 알리는 궐기대회를 정식으로 가졌다. (당시 주지 김대완스님은 항일 비밀장부인 동맹록을 제작해 배포했다) 마이산 남쪽 용암 바위에‘호남창의동맹단’이라 크게 써서 깃발을 걸었다. 이에 사방에서 천여 명의 의병이 모여들었고 의병들은 이석용을 대장으로 추대하였다. 창의동맹단은 그해 9월 고창의 일본병참기지를 습격하고, 진안의 우편취급소를 파괴한 뒤 용담 심원사(深源寺)로 퇴각했다.

이석용이 의병을 일으켜 싸운 지 1년 동안 많을 때는 300에서 500명의 의병을 거느렸고 적을 때는 20명을 거느리고 전라도 일대를 돌며 싸웠다. 그러나 1908년 10월부터 일본군 3개 연대 약 1만 명이 토벌 작전을 개시하였다. 토벌작전은 남한대토벌작전라 불리고 있고 이 과정에서 의병 103명 학살, 2000명 체포되었다. 그러나 호남의병들은 민족자주를 지키기 위한 투쟁은 멈추지 않았다,

이석용이 의병을 일으켜 싸운 지 1년 동안 많을 때는 300에서 500명의 의병을 거느렸고 적을 때는 20명을 거느리고 전라도 일대를 돌며 싸웠다. 그러나 1908년 10월부터 일본군 3개 연대 약 1만 명이 토벌 작전을 개시하였다. 토벌작전은 남한대토벌작전라 불리고 있고 이 과정에서 의병 103명 학살, 2000명 체포되었다. 그러나 호남의병들은 민족자주를 지키기 위한 투쟁은 멈추지 않았다,

격중가(激重歌) -이석용-

“가을바람 소슬하니 영웅이 득의 하는 때로다.
장사가 없을 소냐 구름같이 모여 든다.
어화 우리 장사들아 격중가를 불러보세.
한양 성중 바라보니 원수놈이 왜놈이요 원수놈이 간신이라.
삼천리 우리 강산 500년 우리 종사 어찌할까.
아마도 의병을 일으켜 왜놈들 몰아내고 간신을 타살하여
우리 황제 받들고 우리 백성 보전하여
삼각산 숫돌되고 한강수가 띠 되도록 즐기고 놀아보세
우리 대한 만만세”

1911년 4월 밀사를 은밀히 일본으로 파견, 일왕을 주살하려 했으나 실패했다. 이듬해 겨울 정찬석(鄭贊錫)·최제학(崔濟學) 등 호남지역 지사들과 밀맹단(密盟團)을 조직했다. 이때 천석꾼 정동석에게 자금을 부탁했으나, 임실 경찰서에 밀고를 해 1913년 10월 3일 체포되었다.

1914년 1월 12일 전주법원에서 재판장이 기립을 요구하였으나 기립을 경의를 표하는 것인데 원수에게 경의를 표할 수 없다며 기립을 거부하고 사형을 언도 받고, 4월 4일 대구형무소에서 교수형으로 37세의 나이에 죽임을 당하였다. 이석용 의병장은 전주법원 재판 최후 진술에서 “한가지 한이 되는 것은 이등박문이 안중근 손에 죽었는데, 우리나라 5적·7적을 죽이려다 못 죽인 것이요, 또 동경과 대판에 불을 지르려 했는데 못 이룬 것이다”고 말했다.

현재 금당사에는 창의동맹군의 의병활동시 사용했던 법고( 높이 1m·지름 60㎝ 크기) 현재 곳곳이 찢긴 채로 경내에 봉안, 처절했던 항일투쟁 역사를 그대로 전해주고 있다.

금당사에는 열반종 종찰로 고려시대 보물 1266호로 지정된 금당사 괘불, 고려석탑 등이 있고, 금당사를 만나고 나서, 마이산 쪽으로 힘 있게 걷다보면 섬진강 발원지 용궁, 이성계가 조선창업의 계시를 받았다는 은수사 등이 있다.

마이산은 신라 시대에는 서다산(西多山), 고려 시대에는 용출산(龍出山), 조선 초기에는 속금산(束金山)이라고 불렀으며, 태종 때부터 본격적으로 말의 귀를 닮았다 하여 마이산이라 불리어 왔다.

이 산이 유명한 이유는 탑사(塔寺) 때문이다. 이 탑들은 태풍이 몰아쳐도 흔들리기만 할 뿐, 쓰러지지 않는다고 하니 신비할 따름이다. 이곳에서 왼쪽으로 보이는 것이 암마이봉이에요. 숫마이봉은 은수사 쪽으로 올라가면 볼 수 있다.

마이산에 찾아갈 때 인간의 평등성을 주창했던 열반종의 신앙과 갑오농민전쟁의 농민군( 전봉준 장군의 딸이 갑오농민전쟁이 실패후 고금당에서 10여년 숨어지냈다)과 그 피를 가지고 항일자주 운동을 전개했던 민중들의 삶을 한번 쯤 느끼고 왔으면 좋겠다.

열반종의 핵심은 모든 중생에게 불성이 있다는 실유불성(實有佛性)관, 즉 인간 평등성을 주창한다. 모두 불성이 있는 소중한 존재이므로 계율을 지키고 보살행으로 그 성품을 일깨워 영원한 행복과 안락을 누린다는 것이 열반종의 가르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