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부로 업수임(업신여김)을 당하지 말라
안광획
(자료사진: 개성 관덕정에서 활쏘기를 하는 사람들)
조선시대 말기 송도(개성시)에서 있던 일이다.
송도의 반송골 마을로 새로 이사 온 서른 살 난 농사꾼이 관덕정(觀德亭) 활쏘기터에 다니는 활패에 들자 동료들은 그를 촌놈이라고 놀려댔다.
마을의 활패에 농사꾼이라고는 그밖에 없었다.
농사꾼인 그가 저희들만이 남아대장부라고 자처하는 도회지 사내들이 활개를 치는 활패에 든 것은 갑작스레 놀음에 혹해서가 아니고 늘 마음속으로 왜적(倭敵, 일본 침략자)의 침입에 대한 근심을 해왔기 때문이다.
‘오늘이라도 임진조국전쟁(임진왜란) 때처럼 바다 건너 섬나라 오랑캐가 이 땅에 침노하여 나라가 위태롭게 된다면 병쟁기(무기)를 제대로 다룰 줄 모르는 그런 사람이 백인들, 천인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래서 시골에 살 적부터 아무리 농사일이 바빠도 틈을 내어 활쏘기를 배웠는데, 송도의 반송골로 이사를 와서 보니 자기의 그런 재주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송도 사람들이라면 예로부터 활쏘기를 잘하기로 알려졌고, 그 송도 땅에서도 관덕정 활쏘기터에 다니는 활패들의 활재주는 그야말로 백발백중의 명궁이라고 할 만했다.
임진조국전쟁 때에도 이 나라의 도처마다 뛰어난 명궁들이 많았기에 조총(鳥銃)이란 걸 뽐내던 왜놈들이 무리죽음(떼죽음)을 당했다는데, 오늘날엔 관덕정 활쏘기터의 활패들이 외란(外亂, 외국의 침입)이 터진다면 그때의 선조들처럼 이 땅을 지켜 무공을 떨칠 것이었다.
내 비록 농사꾼이지만 바로 저 사람들처럼 명궁의 재주를 닦는다면 전란에 나라를 위해서 한 몫 단단히 할 수 있을 것이 아닌가?’
이런 생각에서 활패에 든 농사꾼은 마침 농한기(農閑期, 농사일이 바쁘지 않은 때) 때라 기쁜 마음으로 관덕정의 활쏘기터에 나갔다. 그의 차례가 되어 활터에 나간 농사꾼은 울렁이는 가슴을 진정할 새 없이 활을 쏘았다. 아직은 서툰 재간에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붙잡고 활을 쏘아서인지, 화살들은 과녁에서 어방없이(여지없이) 먼 데에 나가떨어지고 말았다.
그러자 가뜩이나 그를 촌놈이라며 멸시하던 동료들이 시까슬러(비웃어) 댔다.
“거 거름이나 주무르던 촌놈의 손이란 건 마디에 옹이 박힌 삐뚤나무로 깎았나 보지, 눈은 또 모들뜨기*이니 과녁은 온통 삐뚤어져만 보이겠고!”
* 모들뜨기: 무엇을 볼 때 두 눈동자를 안쪽으로 몰아뜨는 것.
농사꾼은 쩍하면 자기를 놀려주려 덤비는 동료들 앞에 고개를 떨구었다. 이 사람들에게서 명궁의 재주를 배우자면 이쯤한 수모는 참아야 하지 않겠는가?
이내 농사꾼은 고개를 저었다. ‘만일 활 쏘는 첫날부터 그런 업수임(업신여김)을 고스란히 받아들인다면 이들의 버릇이 굳어질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나를 깔보는 그들이 활재주를 똑바로 배워줄 리 만무하다. 지금 서툰 활재주로써 왜적과 맞선다면 나 하나의 업수임이 아니라 나라를 욕보이게 할 수 있다. 그러니 오늘 동료들이 나를 함부로 깔보지 못하게 하여 활재주를 똑바로 배우는 것인 결코 소홀히 할 일이 아니지 않은가?’
농사꾼은 고개를 쳐들고 큰소리쳤다.
“매는 하늘을 빨리 나는 재간이 있다면, 표범에게는 나무를 타는 재주가 있소. 하듯이 사람마다 남다른 재주가 있는 법인데, 공연히 남을 업신여기다가는 큰 코를 다칠 수 있소.”
했더니, 동료들은 저저마다 농사꾼에게 삿대질을 하며 놀려댔다.
“땅이나 쑤시는 농사꾼에게 무슨 재주가 있겠어?”
농사꾼은 속으로 이들과 내기를 하여 기를 꺾어놓아야겠다고 벼르며 웃음을 지었다.
“활쏘기 말고는 아주 많소.”
동료들은 두 눈이 둥그래가지고 물었다.
“그게 뭔데?”
농사꾼은 가슴을 쭉 펴며 대꾸했다.
“뭐든 다! 나와 내기를 하고 싶은 친구가 있으면 나서게. 만일 내기에서 내가 이기면 자네들은 활쏘기 재주를 고스란히 물려주고 내가 진다면 난 자네들의 심부름을 뭐나 다 들어주겠네.”
했더니 활패에서 제일 힘깨나 쓴다고 해서 ‘힘장수’라 불리는 석수장이가 나섰다.
“좋소. 농사꾼 형이 활재주말고는 무엇이든 우릴 이길 자신이 있다고 했는데, 그럼 힘겨루기를 합시다.”
그 말에 농사꾼은 마음이 떨렸다. 터만 남은 만월대(滿月臺, 고려의 옛 왕궁)의 큰 주춧돌도 안아들었다는 ‘힘장수’와 힘내기를 하여 이길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힘내기에서 물러선다면 활패의 축에 끼우지 못할 것이다. 농사꾼은 머리를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합세. 내가 먼저 내기를 하자 했으니 내가 먼저 말하겠소.”
‘힘장수’가 떡메같은 주먹을 내보이며 으시댔다.
“마음대로!”
농사꾼은 남쪽의 논벌을 가리켰다.
“논 김매기를 겨루자는 것일세.”
그 말에 ‘힘장수’도, 여러 동료들도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한동안 허리가 부러진다며 한바탕 웃고 난 ‘힘장수’가 주먹을 내저었다.
“시시해요, 시시해. 남아대장부로서 아녀자도 땅 짚고 헤엄치듯 여기는 그따위 논 김매기로 내기 한다는 말이요? 다른 걸 내놓소.”
잠시 말문이 막혀 쩔쩔매던 농사꾼은 저쪽 아랫길로 지나가는 섶나무를 가득 실은 달구지를 보고 무릎을 쳤다.
“다들 저 나무짐을 실은 달구지를 보게. 난 누가 더 많이 섶나무단을 지게에 지고 일어나겠는가 하는 내기를 하자는 것이오.”
‘힘장수’도, 동료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급히 아랫길로 달려가 달구지를 멈춰 세웠다. 달구지꾼에게 달구지를 멈춰 세운 사연을 알린 그들은 그의 허락을 받고 그 자리에서 내기를 벌였다.
길가의 집에서 지게를 빌려온 ‘힘장수’가 먼저 나섰다. 그가 작시미(지게 작대기)로 버틴 지게에다 나무단을 한 줄로 올려 쌓는데 여간 서툴지 않았다. 하긴, 도회지에서 나고 자라 돌은 많이 다루어봤어도 땔나무를 하러 다닌 적이 별로 없는 그였으니 그럴 만도 하였다.
‘힘장수’가 아무리 용을 쓰며 애를 썼지만 그는 지게 위에 열 단밖에 쌓을 수 없었다. 힘은 남아돌아 가건만, 무겁지 않은 나무단을 지고 일어선 그는 얼굴을 붉혔다.
(자료사진: 조선 말기 지게꾼)
다음은 농사꾼의 차례였다. 나무단에서 풀어낸 굵은 새끼줄을 지게끈에 동여매는 농사꾼을 보는 동료들은 놀라워했다. 얼마나 많은 나무단을 짊으려고 지게끈을 더 늘리는 것일까? 농사꾼의 솜씨는 ‘힘장수’와 전혀 달랐다. 땅바닥에 지게끈을 길게 늘여놓은 그는 그 위에 나무단을 두 줄로 한 단씩 놓더니 그 나무단 위에다 지게가지를 걸쳐 놓았다. 이어 지게가지 위에다가 나무단을 또 두 줄로 척척 올려 쌓는데 18단이나 되었다. 무려 반달구지나 되는 섶나무를 쌓아 놓은 농사꾼은 지게 뒤에서 나무단을 타고 누르며 지게가름대에 건 지게끈을 바짝 조여 맸다.
동료들은 지게에다 야산만큼 커 보이는 나무짐을 쌓은 농사꾼의 재간에 혀를 차면서도 그가 무거운 짐을 지고 꽤 일어날 수 있을까 하고 머리를 기웃거렸다.
지게 앞으로 자리를 옮긴 농사꾼은 다시 한 번 지게끈을 든든히 동여맸는가를 확인하고 나서 양쪽의 지게뿔을 두 손으로 거머쥐었다. 그리고는 “으얏!” 하고 소리를 지르며 지게를 앞으로 끄당겨 나무짐을 땅바닥에서 올려 띄워놓았다. 이윽고 양쪽의 지게멜빵에 어깨를 들이밀고 작시미를 땅에 짚은 농사꾼은 또다시 “으얏!” 소리를 지르며 나무짐을 지고 일어섰다.
그 순간 동료들은 “야!-” 하고 일제히 환성을 질렀다. 내기에서 이긴 농사꾼은 나무짐을 내려놓고 입을 열었다.
“내가 이겼으니 약속대로 해야겠소.”
촌놈이라고 숙보던(깔보던) 농사꾼에게 망신을 당했다고 쓴웃음을 짓는 동료들 속에서 “가만!” 하고 소리치며 나서는 사람이 있었다. 몸집이 형편없이 커서 ‘어간재비’라고 불리는 대장간의 장인바치가 배를 내밀며 나선 것이었다.
“어떻게 한 번의 내기로써 이겼다 졌다 결말을 짓겠나. 이번엔 나와 누가 더 많은 찰떡을 먹는가 하는 내기를 합세.”
그러자 동료들은 다시금 기세를 울리며 그게 좋겠다고 떠들어댔다. 농사꾼은 가슴이 두근거렸다. 지금껏 농사를 지어왔지만 남의 땅을 부치는 가난한 처지에 찰떡은커녕 밥이나마 실컷 먹어본 적이 별로 없었다. 그러니 앉은 자리에서 막걸리를 한 동이씩이나 해치웠다는 저 ‘어간재비’를 무슨 수로 당할 수 있단 말인가? 허나 내기는 내기이니 싫든 좋든 해야만 했다.
‘어간재비’가 기고만장해서 을러멨다(몰아붙였다).
“여, 농사꾼! 어서 떡집에 가서 찰떡 먹기 내기를 합세. 지는 쪽이 찰떡값을 물기야.”
잠시 망설이던 농사꾼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무슨 내기이든 제정신을 가지고 이악하게(끈질기게) 대처한다면 이길 수 있는 수가 나올 것이 아닌가?
농사꾼은 배심있게 소리쳤다.
“좋소!”
(자료사진: 찰떡)
이렇게 되어 동료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농사꾼과 ‘어간재비’ 간의 찰떡 먹는 시합이 벌어졌다. ‘어간재비’는 이미 이긴 시합을 한다면서 갓을 어루쓸더니 찰떡을 꿀떡꿀떡 먹어대는데 잠깐 사이에 주먹 만 한 떡이 가득한 그릇을 비워냈다.
농사꾼은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생각에서 서두르지 않고 찰떡을 김치국물에 발라 꼭꼭 씹어 삼켰다.
농사꾼이 떡 한 그릇을 내기 바쁘게 ‘어간재비’는 세 번째 떡 그릇을 제 앞으로 끄당겨 놓았다. ‘어간재비’가 떡 세 그릇을 비워내니 동료들은 하품하며 그가 이겼다고 으시댔다. 그러거나 말거나 농사꾼은 찰떡을 반드시 김치국물에 적셔 꼭꼭 씹어 먹었다. 모든 일이 다 그러하듯 찰떡을 많이 먹는 데서도 요령이 있는 법이다. 될수록 떡을 꼭꼭 씹어 삼켜야 배에 빈자리가 없이 차곡차곡 들어가 쌓일 것이 아닌가?
자기의 큰 몸집만을 믿고 되는대로 찰떡을 꿀떡꿀떡 삼킨 ‘어간재비’는 네 번째 떡그릇마저 바닥내고 보니 목구멍까지 차오른 감을 느꼈다. 그는 너무도 불어난 배가 터져나갈 듯해서 얼굴이 새빨개지고 숨이 차서 씩씩거렸다.
다섯 번째 떡그릇에 손을 가져간 농사꾼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배가 불러 금시 터져나갈 것 같은 괴로움도 괴로움이었지만 헛구역질이 나는 것이 더욱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이것도 자기를 지켜내는 싸움이라고 생각하니 지고 싶지 않았다. 될수록 몸을 움직이지 말고 가만가만 떡을 씹어 먹으면 어떨까? 그렇게 했더니 한결 먹기 편안했다.
농사꾼이 다섯 번째 떡그릇을 바닥냈을 때 그 절반도 축내지 못한 ‘어간재비’는 배를 부여잡고 쓰러졌다. 농사꾼이 끝내 몸집이 큰 ‘어간재비’를 굴복시킨 것이었다.
이 일이 벌어진 후 동료들은 촌놈이라고 깔보던 농사꾼을 어렵게 대했고 활쏘는 법을 착실하게 배워주었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남에게 함부로 업수임을 당하지 말고 당당하게 처신하는 것도 일을 제끼는 남아대장부의 응당한 기질이 아니겠는가?
원문: 전철호, 「함부로 업수임을 당하지 말라」, 돈항아리, 평양출판사,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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