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齒) 쏘기에 특효약 바위옷(리선복)

안광획

(그림: 민족기록화 「흥화진 전투」)

고려 초엽 북쪽 변방 흥화진성(興化鎭城)*에서 있은 일이다. 거란의 소손녕(蕭遜寧)이라는 적장이 수십만 대군으로 고려를 침략했다가 수치스러운 대참패를 당하고 쫓겨간 몇 해 후에도 그놈들은 빈번히 나라의 변방을 범하여 흥화진성의 군사들은 어느 하루도 발편잠을 잘 수 없었다.

* 흥화진(興化鎭): 오늘날 평북 의주군 일대. 고려시대 강동 6주 중 하나로 강감찬(姜邯贊)이 여요전쟁(고려-요 전쟁) 3차전 당시 수공을 이용해 거란군을 무찌른 곳으로 유명하다.

어떤 날에는 아침 식전부터 시작된 격려란 싸움이 그 이튿날까지 지속되기도 하였다. 고려를 기어이 집어삼키려는 거란이었으니 어떻게 하나 압록강 연안의 성들을 빼앗고 그것을 발판으로 또다시 더 큰 전란을 일으키려 하였다.

고려의 조정에서는 싸움으로 해가 뜨고 싸움으로 해가 지는 변방의 진성(鎭城)들에 쓰러진 군사들을 대신한 새로운 군사들을 보내주고는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흥화진성에도 백여 명의 군사들이 새로 보충되어왔다. 그들 속에 15살 난 앳된 군졸이 있었는데, 군사들은 그를 가리켜 ‘애송이’라 불렀다.

흥화진성에 행장을 풀어놓기 바쁘게 오랑캐와의 싸움에 나선 애송이 군졸은 남다른 고통을 겪게 되었다. 한 것은 어찌 된 탓인지 전장에 나서자 갑자기 쇠꼬챙이로 잇몸을 쑤시는 것 같은 이아픔(치통)이 시작된 것이었다.

그가 치통을 겪는다는 것을 안 좌상군졸이 제가 알고 있는 비방 대로 약을 써주었다. 좌상군졸로 말하면 진성 근방의 마을에 태(胎, 태반 및 탯줄)를 묻은 사람으로서 거란 오랑캐 난(亂)에 부모처자를 다 잃고 그 원수를 갚으려 군사가 된 사람이었다. 인정도 많고 항간에 전해오는 의술의 비방도 적지 않게 알고 있는 그가 군사들이 앓을 때면 온갖 지성을 다해 고쳐주니 온 흥화진성이 ‘좌상(座上)’이라 부르며 존경하고 있었다.

좌상군졸은 키도 작고 나이도 제일 어린 애송이가 자기 아들처럼 여겨져 그한테 더 마음이 끌렸다. 거란군에게 잘못된 아들이 살아있다면 15살이니 애송이와 동갑이었다. 좌상군졸이 심혈을 기울여 앵두나무 뿌리며 벌둥지(벌집), 분지나무 뿌리를 달인 약을 연거푸 써 주었지만 애송이 군졸의 이쏘기는 아무런 차도가 없었다. 흥화진성의 ‘명의’라는 좌상군졸의 비방마저 전혀 효험이 없게 되니 애송이 군졸은 이게 다 거란 오랑캐의 탓이라 생각했다. 애송이 군졸은 더욱 분이 나서 거란 오랑캐라면 기를 쓰고 해보았다.

그날도 아침부터 거란군이 달려드는 바람에 시작된 한 차례의 싸움은 점심이 썩 지나서야 고려군의 승리로 끝났다. 거란군이 늘 그러했듯 무수한 주검들을 남기고 물러가자 고려 군사들은 웃고 떠들며 유쾌한 쉴참(휴식)을 펼쳤다. 쉴참이면 누구보다 익살을 피우기 즐겨하는 털보 오장(伍長, 오늘날 부사관)이 애송이 군졸을 보며 히죽이죽 웃었다.

“오늘 싸움에서 보니 글쎄 애송이 녀석이 말이요…”

하더니 그는 한쪽 볼에 입김을 불어 넣어 볼이 불룩 나오게 하고 또 한쪽 눈은 감으며 활 쏘는 시늉을 하였다. 그렇게 하니 그의 얼굴은 위불없이(틀림없이) 쏘는 이로 하여 한쪽 볼이 벌에 쏘인 듯 퉁퉁 붓고 그 때문에 한쪽 눈마저 찌글써해진(찌그러진) 애송이 군졸의 일그러진 얼굴이었다.

털보 오장의 신통한 시늉에 군사들은 벌써부터 웃음집이 흔들거려 킥킥댔다. 좌상군졸은 그 익살이 애송이의 심화를 덧칠까봐(마음을 상하게 할까봐) 털보 오장에게 그만두라는 눈짓을 하였으나 털보 오장은 눈치가 무딘 척 그냥 활 쏘는 시늉을 하며 제 하고 싶은 대로 말을 내뱉었다.

“거란놈들을 향해 활을 쏜다는데 글쎄 이쪽 놈을 겨눈 것 같은데 저쪽 놈이 널브러지고 또 저쪽 놈을 겨누고 쏜 것 같은데 저쪽 놈이 화살에 맞아 널브러지더란 말이요. 내 지금껏 대단한 명궁들을 수태(무수히) 보았지만, 이쪽 놈을 겨누고 저쪽 놈을 맞히는 그런 명궁은 보지 못했소. 아마도 그런 명궁은 천하에도 없을 거요!”

그 말에 군사들은 배를 그러쥐고 죽겠다고 웃어댔다. 어찌나 익살스러운지 털보 오장을 판잔하려던 좌상군졸마저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느라 입을 싸쥐었다. 좌상군졸이 터져 나오는 웃음은 애써 참았지만 찔끔 솟구친 눈물만은 어쩔 수 없어 눈꺼풀을 닦고 나니 곁에 있던 애송이가 보이지 않았다.

‘?…’

가만 생각해 보니 좌상인 자기도 애송이처럼 그런 놀림을 당했다면 기분이 상해 자리를 피했을 것이다. 그래서 좌상군졸은 털보 오장에게 눈을 흘기며 일렀다.

“앞으로 그 애를 성나게 하지 말게.”

털보 오장은 여전히 익살을 부렸다.

“사람이 한바탕 크게 웃으면 만병이 떨어지니 이아픔 따위를 근심하겠소이까.”

그 말에 말문이 막힌 좌상군졸은 급히 애송이 군졸을 찾아 나섰다. 한참 만에 오늘 싸움에서 고려군이 진을 쳤던 바위츠렁(겹바위) 위에 앉아 울고 있는 애송이를 찾아낼 수 있었다. 그에게 다가간 좌상군졸은 웃으면 만병이 떨어진다던 털보 오장의 말이 떠올라 벌씬(발그레) 웃었다.

“얘야, 웃음이 명약이라던데 너도 웃어라.” 했더니 애송이 군졸은 씰그러진 제 얼굴을 가리켰다.

“한쪽 얼굴이 퉁퉁 부어서 활을 겨누니 아마 오장어른의 눈에는 내가 이쪽 놈이 아니라 저쪽 놈을 겨눈 것으로 잘못 보였겠지요. 그렇게 보였으면 남들은 웃겠지만 내가 분한 건 이 바위츠렁에서 퉁퉁 부은 얼굴 때문에 놓치고 만 것이에요. 그러니 지금도 쏘는 이빨이 나한텐 원수나 마찬가지란 말이예요.”

그 말에 좌상군졸은 가슴이 뜨거워졌다. 이 녀석이 얼마나 원수를 미워했으면 이러겠는가. 무슨 말로 애송이를 위로해야 할지 몰라 고개를 숙이던 좌상군졸의 눈길에 기쁨이 어려들었다(찾아왔다). 그의 눈길은 바위 위에 말라붙은 바위옷에 멈춰있었다.


(사진: 바위옷(地衣草))

바위 위에 가죽 같은 것이 덮인 모양이 마치나 바위에 옷을 입힌 것 같아서 바위옷이라 불리는 이 식물은 독이 세서 그것을 진하게 달여가지고 암짐승에게 먹이면 배 안의 새끼까지 떨어졌다. 그런 바위옷의 달인 물로 사람이 입 안을 가신다면 이빨을 쏘게 하는 나쁜 벌레를 죽일 수 있을 것이다. 이쏘기가 벌레의 탓이라고 여기는 좌상군졸은 제 생각이 하도 그럴듯해서 무릎을 쳤다.

“됐어!”

그 글로 좌상군졸은 바위옷을 뜯어다 진하게 달였다. 그는 바위옷을 달인 물이 찰랑거리는 약그릇을 애송이 군졸에게 내밀며 말했다.

“얘야, 이번엔 꼭 효험이 있을 테니 이 약물로 입안을 가셔야겠다.”

벌써 여러 번이나 좌상군졸이 주는 약물들을 써봤지만 전혀 재미를 못 본 애송이는 별로 시덥지(내키지) 않아했다.

“그게 뭔데요?”

“이건 오늘 네가 활을 잘못 쏘아 원수 몇 놈을 놓친 그 바위츠렁에 돋아난 약재를 뜯어 달인 거란다.”

심드렁해서 약그릇을 받아든 애송이 군졸은 내키지 않았지만 좌상군졸이 시키는 대로 약물을 한입 물었다가 뱉어버렸다. 그렇게 하기를 몇 번째 만에 잔뜩 일그러졌던 애송이군졸의 얼굴이 환해지고 이어 놀라움이 가득해졌다. 과연 효험이 있을까 하여 가슴을 조이던 좌상군졸이 급히 물었다.

“그래, 어떠냐?”

애송이 군졸은 미처 대답할 사이없이 또 약물을 입에 물고 두 눈을 끔뻑했다.

“이 녀석아, 꿀먹은 벙어리처럼 굴지 말고 어서 말을 하려무나.”

이윽고 약물을 뱉고 난 애송이 군졸은 휴- 하고 큰 숨을 내쉬고 나서 대꾸했다.

“이 약, 하늘 신선이 보내 준 명약 같아요. 입에 문 지 잠깐만에 이쏘기가 멎고 온몸이 거뜬해지니 이게 하늘의 조화가 아니고 뭐겠어요.”

좌상군졸은 너무 기뻐 애송이 군졸의 어깨를 툭 쳤다.

“하늘의 조화는 무슨 하늘의 조화? 이건 우리가 선조들이 물려준 이 땅을 지켜 내 나라의 한치한치마다에 애국의 마음을 심으니 바로 그래서 이 땅이 선사하는 명약이란다.”

애송이 군졸이 좌상군졸의 두 손을 움켜잡으며 부르짖었다.

“정말 그렇소이다!”

이렇게 되어 이 나라의 어디에 가나 흔히 보는 바위옷이 이쏘기를 멈추는 특효약으로 알려졌고 후세에도 그 비방이 길이길이 전해질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