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관장치를 가진 세계 최초의 포탄​​
박경순

《우리 나라는 반만년의 유구한 력사를 가지고있으며 우리 나라에는 우리 민족의 슬기를 보여주는 귀중한 문화유산이 많습니다.》

예로부터 남달리 애국심이 강한 우리 민족은 외래침략자들이 쳐들어올 때마다 조국 강토를 굳건히 지켜냈으며 그 과정에 우수한 무기 기술을 창조하여 발전시켜 왔다.

그 가운데는 임진조국전쟁기간 자기의 위력을 남김없이 발휘한 세계 최초의 시한 포탄인 비격진천뢰도 있다. 비격진천뢰는 삼국시대부터 사용해왔었던 화포 즉 화뢰포, 지뢰포, 충천뢰 등의 발전과정에 이루어진 것인데 16세기 말 화포제조 기술자인 리장손이 진천뢰를 개조하여 만들었다.

– 대완구와 비격진천뢰 –

옛 역사문헌인 《징비록》에는 《비격진천뢰는 이전에도 없었다. 군기시의 화포장 공인인 리장손이라는 사람이 창안한 것인데 이 진천뢰를 대완구의 아구리에 넣고 쏘면 5백, 6백보까지 날아가서 땅에 떨어지는데 잠시 후 속에서 불이 일어나면서 폭발한다. 적들은 이것을 가장 무서워한다.》라는 글이 적혀 있다.

비격진천뢰는 무쇠로 주조되었는데 두 개의 불심지 구멍이 있는 둥근 탄체 내부에는 폭발 화약과 마름쇠(파편역할을 하는 쇠쪼각)들이 가득 채워져 있고 신관 장치인 대통이 설치되어 있었다. 대통은 나사처럼 홈을 판 나무에 불심지를 감고 그것을 참대 통안에 넣어 만들었는데 한쪽 끝을 폭발장약과 연결시켜 놓았다.

나무 나사에 불 심지를 10번 감은 것을 《속》이라고 하였는데 이것을 쓰면 비격진천뢰가 발사된 다음 비교적 빨리 폭발하게 되어 있었으며 15번 감은 것은 《지》라고 하였는데 이것을 쓰면 좀 더디게 폭발하게 되어 있었다. 따라서 비격진천뢰는 나사홈의 수(약심지의 길이)에 따라 폭발 시간을 빠르게 하거나 또는 늦추는 시한탄으로 되기도 하였다.


– 비격진천뢰의 내부구조 –

비격진천뢰는 별대완구, 대완구, 중완구 등의 화포에 의해 발사되었는데 사격거리는 750~900m정도까지 였다. 비격진천뢰를 처음 사용한 것은 1592년 9월 경주성 전투때였다. 어느 날 둥그런 무쇠덩어리가 적들의 숙소 주변에 떨어졌다. 폭탄이면 벌써 터졌겠는데 숨을 죽이고 있는 육중한 쇠덩어리를 이상스레 바라보던 수십 명의 왜적들이 그 곁으로 우르르 모여 들어 구경을 하다가 그것이 터지는 바람에 무리죽음을 내고 혼비백산하여 《귀신의 조화》라고 하면서 성을 버리고 달아났다고 한다.

일본의 한 연구사는 저서 《조선역수군사》에서 《이 기구의 가장 교묘한 점은 신관장치이다. 일종의 나사형의 홈을 파고 거기에 화약심지를 넣고 그 길이에 따라 폭발시간을 규정한 것은 이 시대에는 마땅히 놀랄만한 특이한 것으로 인정해야 할 것이다.》라고 평하였다. 이러한 사실들은 당시 비격진천뢰는 세계 무기 기술 발전 사상 처음으로 우리민족이 발명이용한 시한포탄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이처럼 우리 선조들은 자기들의 창조적 지혜와 재능으로 세상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우수한 과학기술 성과들을 창조하고 군사 부문에 널리 도입하여 우리 민족의 우수성을 남김없이 떨쳤으며 나라와 민족의 존엄과 자주성을 지키기 위한 반침략투쟁에 적극 이용하여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