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운 얼굴 재세 끝에
안광획
(그림: 신윤복, 『미인도』, 조선후기)
조선시대 중엽 송도(개성시) 교외의 어느 한 마을 농사꾼에게는 얼굴이 빼어지게 고와서 ‘이쁜이’라 부르는 딸이 있었다. 외동딸인 이쁜이는 어려서부터 어찌나 고운지 그를 보는 사람들은 누구나 한 마디씩 하기를, “너는 인물이 고우니 필경 부잣집 며느리가 될 게다.”, “넌 호강한 팔자를 타고 났구나!” 하는 등 칭찬이 놀라웠다.
나이 열 살을 넘겨 더 곱게 피어나니 함박꽃(목란)에 비길까, 모란꽃에 비길까 하는 정도였다. 그런데 가슴 아픈 것은 이쁜이가 곱게 생긴 얼굴과는 달리 마음이 점점 고약해지는 그것이었다. 소꿉시절 함께 놀던 총각들은 얼뱅이(멍청이)라 비웃고, 처녀들은 두꺼비라 비웃어대면서 멀리하려 하였다.
그의 행실을 보다 못해 어머니가 꾸짖었다.
“얘야, 가난한 집 아이들이라고 해서 멋없이 깔보면 못쓰느니라.”
했더니 이쁜이는 댓바람 코를 불었다.
“흥! 가난한 집 아이들은 다 천해요. 천한 아이들하고 상종하면 나도 천해진단 말이예요.”
그 말에 어머니는 어처구니가 없어 소리쳤다.
“그럼 어떤 사람들이 천하지 않다는 거냐?”
“그거야 물론 잘 사는 집 사람들이지요. 적어도 천석꾼 쯤 되는 부자라야 진짜 사람에 속한다고 할 수 있거든요.”
어머니는 어이가 없어서 쓴 입을 다셨다.
“얘야, 우리도 가난한 농사꾼 집인데 그럼 너도 사람이 아니겠구나?”
“흥! 우리 집은 비록 거렁뱅이라도 나는 꼭 부잣집의 안방차지가 되겠으니 진짜 사람이지요.”
어머니가 딸의 잘못된 생각을 고쳐주려 애썼지만, 타고난 고운 얼굴을 뻐기며(거들먹거리며) 재세하려드는(까불려 드는) 이쁜이는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의 머릿속에는 온통 자기가 부잣집의 안방마님이 되어 떵떵 큰 소리를 치며 호강을 부리는 생각뿐이었다.
‘나의 고운 얼굴이 천금 만금 맞잡이라는 것을 다들 알고 있다. 나에겐 하늘이 준 이 큰 밑천이 있는데, 무엇이 모자라 남들에게 굽신거리고 또 두 손 끝이 닳도록 일을 하겠는가?’
그런 생각뿐이니 어머니를 도와 부엌일을 하거나 온 동일 밭에 나가 사는 아버지의 바쁜 농사일을 거들어줄 마음이 꼬물만치도(조금도) 생길 리가 없었다. 그러니 그의 집은 빼어지게 고운 이쁜이로 하여 겉보기에는 언제나 꽃이 핀 듯 환했지만 부모님의 마음은 납덩이를 매달은 듯 무겁기만 하였다. 어쩌다 부모님이 몸치장에만 몰두하는 딸에게 일손을 좀 도와달라고 하면 언제나 판에 박은 대답이었다.
“엄마! 아버지! 내 팔자는 누구나 말하듯이 송도 땅에서 첫째가는 부잣집의 마님이 되어 월광단(月光緞), 일광단(日光緞)으로 몸을 감싸고 숱한 몸종들을 부리며 왕후처럼 살게 될 텐데, 그런 하찮은 일 때문에 고운 살결에 흠집이 나면 어쩌겠어요? 훗날 이 딸 덕에 팔진미(八珍味: 진수성찬)도 맛보면서 호강을 누리려거든 오늘의 고생을 참으시라요.”
그 누구의 말도 들으려 하지 않는 딸의 못된 처사에 부모들은 땅이 꺼지게 한숨을 내뿜었다. 가난한 농사꾼 집에 어여쁜 딸이 태어났다고 기뻐했는데, 그 고운 얼굴이 그 아이의 마음을 망쳐놓을 줄이야….
이쁜이는 날마다 몸치장뿐인데 원래 바탕이 타고난 절색(절세미인)이어서 그 아름다움에는 선녀도 경탄할 만 하였다. 그는 자기의 어여쁜 용모를 뽐내면서 마을 사람들 앞에서 싸부랑대기(나대기) 일쑤였고, 그 꼴을 보는 노인들은 ‘저 계집애는 틀림없는 재앙거리’라며 혀를 찼다.
이쁜이의 나이 16살이 되니, 그의 미모에 마음이 끌린 총각집들에서 날마다 매파(媒婆, 중매쟁이)를 보내왔다. 허나 이쁜이는 부자가 아닌 집의 중매쟁이라면 아예 제 집 문턱을 넘어서지 못하게 하라고 부모님에게 야단을 쳤다.
“아버지! 어머니! 나야 태어날 적에 벌써 큰 부잣집의 맏며느리로 점지해주었는데 어째서 가난뱅이 집들에서 나를 넘보게 할 수 있어요?”
정직하고 부지런한 총각을 사위로 맞아 속통이 잘못된(못된 마음을 가진) 딸을 건져내리라 했던 그 기대마저 물거품이 되어 버리자 부모님은 자기들에게 얼굴 고운 딸이 생겨난 것을 원망하였다. 그러나 이쁜이는 부모들이 원망하건 말건, 제 고집을 부리면서 부잣집들에서 보내오는 중매쟁이들만 받아들였다. 그들 속에는 이웃나라들에까지 드나들며 장사를 크게 하여 나라에서 손꼽히는 갑부인 박부잣집에서 파한(보낸) 중신할미(중매쟁이)도 있었다.
이쁜이는 그 박부자네가 제일 마음에 들었다. 신랑이 될 박부잣집 아들의 나이가 서른살로서 노총각 치고도 아주 노총각인 게 흠이긴 해도, 돈이 많으니 그와 원앙침(첫날밤)을 하면 나라에서 손꼽히는 부잣집의 안주인이 될 게 아닌가? 하여 이쁜이는 제 마음대로 크고 화려한 팔인교에 올라 박부자네 집으로 시집을 갔다. 호화로운 별채에서 제 살점도 떼어줄 듯 정이 헤픈 신랑과 한방에 드니 그야말로 깨가 쏟아지는 듯싶고 꿀맛같이 달콤했다.
그의 부모님도 얼굴 고운 딸을 둔 덕을 톡톡히 지게 되었다. 박부잣집에서 보내온 납폐(폐물)로 받은 재물만 팔아도 시골에서는 한두 해 먹고도 남을 양식을 살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의 부모님은 마음씨 고약한 딸로 하여 어떤 불행이 닥쳐들지 몰라 바늘방석에 앉은 심정이었다.
어언 간에 한 해가 흘렀다.
좀처럼 마음을 놓지 못하고 가슴을 조였던 그들에게 드디어 불행이 닥쳐들었다. 열흘 고운 꽃 없다고 그렇게도 제 살점까지 떼어줄 듯 인정을 쓰던 신랑에게서 외소박을 당한 이쁜이가 본가 집으로 쫓겨온 것이었다.
워낙 나서부터 금의옥식(錦衣玉食: 비단옷에 기름진 음식)하며 자란 부잣집 자식들의 첫째가는 장끼(특기)라는 것이 주색잡기여서 날마다 고운 계집을 갈아대는 것이 그네들의 생업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일단 예쁜 계집을 차지하고 나면 인차(곧장) 헌신짝 차 던지듯 하는데, 그의 딸도 예외가 아니었다.
박부잣집 아들로 말하면, 지독스런 팔난봉(난봉꾼)이어서 농사꾼의 딸이 첫 여인이 아니었다. 그런 줄도 모르고 그에게 순정을 바쳤건만, 신랑은 인차 싫증이 나서 다른 계집에게 빠져 돌아갔다. 자기의 고운 얼굴만을 뽐내면서 버릇없이 자라난 농사꾼의 딸이 성이 나서 신랑에게 행패를 부리니 그러기를 기다리기라도 한 듯 당장 나가라는 것이었다.
쫓겨온 딸을 맞아들인 부모님의 눈앞은 캄캄했다. 언제든 이런 불행이 이 집의 대문을 두드리라는 각오는 하였지만, 막상 당하고 보니 외동딸의 앞날이 크게 걱정되었다. 부모님은 이미 늙고 딸아이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니 어떻게 살아간단 말인가?
생각다 못해 아버지가 딸을 타일러 입을 열었다.
“산 사람의 입에 거미줄을 칠 수 없으니 지나간 일은 지나간 일이고 이제부터 개심을 하고 베낳이(베짜기)를 하든 농사를 짓든 하여라.”
했더니 이쁜이는 뾰로통해서 대들었다.
“내 팔자야 어디 일을 하게 되었어요? 난 죽으면 죽었지, 천한 일은 할 수 없어요!”
아버지는 벼락같이 화가 나서 손을 쳐들었다. 그러나 차마 딸에게 매를 안기지는 못하고 힘든 농사일 때문에 북두갈고리(북두칠성)처럼 험해진 손으로 제 가슴을 쾅! 쾅! 두드렸다.
“이게 다 내 탓이로구나! 색시그루는 다홍치마적에 앉히라 했는데 내 딸이 곱다곱다 하면서 나쁜 마음이 자라는 것을 뿌리 뽑지 않았으니 이럴 수밖에….”
이쁜이는 아버지의 한탄소리를 무당의 넋두리로나 여겼는지 조금도 개심치 않고 빈둥빈둥 놀기만 하면서 몸치장에나 신경쓸 뿐이었다.
종시 사람구실 못하는 딸의 행실 앞에 울화병이 난 그의 부모님은 차례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런데도 이쁜이는 제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고운 얼굴만 재세하려 했으니 과연 어이없고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일로 하여 송도 땅에 ‘고운 얼굴 재세하는 계집은 꼭 망한다’라는 격언이 생겨났다고 하니 참으로 옳은 말이라 하겠다.
원문: 전철호, 「고운 얼굴 제세 끝에」, 『돈항아리』, 평양출판사,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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