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을 만나는 곳에는 정자가 있다

– 임실 삼계면 오괴정·만취정·광제정. 오수면 구로정

바람이 불 때 잠시 머물고 싶고, 쉬고 싶은 생각이 든다. 자연으로 들어가 자연을 볼 수 있는 공간, 그래서 자연과 하나 될 수 있는 곳을 찾다 보면 정자가 눈에 들어온다. 임실 오수면과 삼계면 일대에는 섬진강과 바람을 만날 수 있는 장소에 정자가 있고, 비교적 옛스러움을 잘 간직한 채 보존되어 있다,

정자는 산 깊고 물 맑은 곳에 설치하기 때문에, 전망보다는 경관에 치중하다 보니 정자에는 어김없이 아름다운 경치가 눈에 들어오고 옛 시인들의 노래가 적혀 있다. 조선 후기에 들어서는 당쟁에 밀려 잠시 조정을 떠난 사대부들이 과시적인 목적으로 사용하기도 했지만, 뜻이 있는 사람은 후학을 가르치는 교육의 장으로 사용하기도 했고, 조상의 뜻을 기리거나 그들의 학맥과 인맥을 기르는 장소로 사용하기도 했다.

삼계면 오괴정
오괴정은 조선 명종 즉위년(1545)에 오양손(吳梁孫)이 처음 짓고 1922년 후손들이 고친 것이다. 그는 중종 14년(1519) 기묘사화(己卯士禍) 때 조광조 등 많은 선비가 화를 입는 모습을 보고, 경기도 수원과 남원 목기촌으로 은거하였다가, 중종 16년(1521)에 삼은리로 들어왔다. 이후 그는 이곳에 오괴정을 짓고 시와 술을 벗 삼으며, 후학을 지도하는 일에 전념하였다. ‘오괴'란 정자 주변에 다섯 그루의 괴목을 심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삼계면 만취정
조선 선조 5년 김위가 지은 건물로 세운 후 여러 차례 고쳤으면 1837년에 마지막으로 수리하였다. 만취정은 앞면 3칸∙옆면 3칸이며 지붕 옆면이 여덟팔자 모양으로 가장 화려한 팔작지붕이다. 가운데 2칸에는 방을 만들고 앞쪽∙뒤쪽 그리고 오른쪽에 마루를 만들었다. 정자에는 이율곡과 기대승 등이 지은 시가 보관되어 있다.

 

 

삼계면 광제정
광제정은 언제 지었는지 기록은 없으나, 광제정 양돈의 호로 미루어 생존 시에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무오사화로 봉현리에 낙향하였고 조정에서 벼슬을 내렸으나 거부하고 은거한 채 살았다.

광제정은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이며, 정자 한가운데에 온돌방이 하나 있는 점이 특징이다. 계단식 축대 위에 정자가 있으며, 한가운데에 계단식 통로가 있다. 정자에는 매당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오수면 구로정

단구대 구로정 삼계석문

1663년 조성된 구로정은 수차례 중건을 거쳐 지난 1954년 중건됐지만 낡고 허물어져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오수 둔데기마을 옛길 복원사업’으로 구로정 복원이 추진됐고 최근 옛 모습을 되찾았다.

구로정은 1663년 둔덕리 일대 아홉 노인이 주축이 돼 구성한 구로회(九老會)에 의해 세워졌다. 주변에는 구로정을 비롯해 단구대(丹丘臺)와 삼계석문(三磎石門) 등 이들의 정신을 엿볼 수 있는 문화유산이 산재해 있다.

이들은 1636년 병자호란 당시 구국 근왕병을 자처하며 호남지역에서 출발했던 호남 의병이거나 의병의 아들, 동생으로 구성됐다. 호남병자창의록에는 임실 의병으로 이두연과 조평 등 11명, 남원 의병으로는 황정직과 한경생 등 87명의 참전 의병들의 이름이 등재돼 있다.

나가며…
임실 오수읍, 삼계면 일대는 의견공원과 오랜된 가옥들이 사람들과 어울려 살고 있다.
그리고 도시의 사람들의 손길이 많이 안타다 보니, 옛 주택과 정자 등이 비교적 잘 보존된 지역이다. 그리고 조선 시대 조선왕조로부터 사화를 당한 채, 시골 한적한 곳에서 살다 보니, 그들만의 문화가 정자로 나타내어지고 있다.

한국의 정자문화는 누∙대∙정으로서 용도에 따라 달리하고 있다.
1) 누는 정자를 짓되 다락을 하나 더 올려서 2층으로 만든 형태를 말한다, 평면보다는 조금 더 높은 곳에서 더 먼 곳을 바라보겠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2) 대는 높은 절벽 끝이나 해안선에 세우거나 먼 곳을 조망하려고 일부러 땅을 높이고 그 위에 지어놓은 형태이다 보니 먼 곳의 경치까지 조망하겠다는 것이다.
3) 정은 자연 그대로 보이는 형태로 경치가 좋은 곳에 감상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든 것을 말한다.

임실지역에서 정자의 특징은 3번째 정의 형태이며, 방이 한가운데 있는 형태와 저상식(마루가 낮은 양식) 형태를 띠고 있다. 전형적인 전라도 특징을 가지고 있다. 한 가지 안타까운 것은 조선 시대에는 건물의 색을 사용하는 데 있어 황궁, 사찰, 관청의 건물에는 단청을 할 수 있으나 민가 건물에는 단청을 못 하게 한 관계로 사용을 할 수 없음에도 후대에 와서 중수하면서 단청한 경우가 많다. 이는 역사를 기록하는 데 있어 좀 더 세심하지 못한 면이다.

임실지역의 작은 문화재를 돌아보면서 자연을 인공적으로 만든 정원 문화보다 자연을 만나고 바람을 만나는 곳에 만들어진 정자문화에 대해 많은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자연을 파괴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자연과 함께 사람이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 선행되어야 조금은 후세에게 미안하지 않을 것 같다.

이웅재 고가 – 임실군 오수면 둔덕리에 있는 가옥으로 1977년 12월 31일 전라북도 민속문화재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