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구렝이

신성호

까마득한 옛적부터 조선사람들은 집에서 사는 구렝이를 가리켜 제 집에 복을 가져다주는 구렝이라는 뜻에서 업구렝이라고 불렀다. 어떤 사연으로 하여 구랭이가 업구렝이라는 말로 불리우게 되었을까

박달임금이 유서 깊은 평양에 도읍을 정하고 조선이란 나라를 세운 먼 옛적이었다. 대동강가의 어느 한 마을에 늙은 어머니를 모신 한 농사군이 있었다.

어느 해 초여름이었다. 부지런한 농사군에게 한 가지 불쾌한 일이 생겼다. 무슨 조화인지 닭둥우리에다 닭이 알을 낳는 건 분명한데 그 알이 감쪽같이 없어지군 하는 것이었다.

낮이며 암탉이 닭둥우리에 울라 앉고 이어 꼬꼬댁 소리를 치며 내리는데 응당 있어야 할 닭알이 없어지니 참으로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누가 닭알을 몰래 훔쳐 먹는 건 아닐까. 농사군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어린 자식들이 아무리 철이 없기로서니 속탈이 난 할머니에게 삶아드려야 하는 닭알을 훔쳐 먹을 수는 없었다. 무슨 일이든 끝장을 보아야만 속이 시원해하는 농사군은 기어이 그 까닭을 밝힐 속심으로 어느날 암탉이 토방구석의 닭둥우리에 들어 앉기 바쁘게 헛간에 몸을 숨기고 지켜보았다.

좀 있어 암탉이 늘 그러했듯 꼬꼬댁! 하고 울더니 닭둥우리에서 내리 서는데 아주 놀라운 일이 눈앞에 펼쳐지는 것이었다. 초가지붕에서 불쑥 기여 나온 한 발이나 되는 큰 구렝이가 서까래 끝에 꼬리를 감고 대롱대롱 거꾸로 매달려서는 잠시 닭둥우리를 노려보더니 철썩! 토방에 떨어졌다. 그리고는 버젓이 닭둥우리로 기어들어갔다.

농사군은 분이 치밀어 올라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지금껏 닭이 알을 낳는 족족 없어진 것이 저 구렝이의 작간이었구나. 흉측한 놈! 당장 뛰쳐나가 작시미로 흉측한 구렝이를 쳐죽였으면 속이 후련하련만 방에 누워계시는 어머니를 놀라게 할 수 없었다. 음흉 맞은 저놈을 조용히 없애치우는 방법은 없을까. 곧 그럴듯한 궁냥이 나졌다.

농사군은 그날로 참나무로 닭알과 꼭 같은 참나무닭알을 만들었다. 어찌나 잘 만들었는지 참나무닭알은 닭알과 신통하였다.

이튿날 농사군은 암탉이 알을 낳기 바쁘게 달려가 닭알을 꺼내고 그 대신 참나무닭알을 넣어두었다. 그리고 나는 듯이 헛간으로 달려와 몸을 숨겼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불안고 닭동우리를 지켜 보느라니 과연 얼룩덜룩한 구렝이가 초가지붕 속에서 기어 나와 그네를 타더니 철썩! 토방에 떨어졌다.

그놈은 천연스럽게 닭동우리로 들어가더니 좀 있어 기어 나오는데 어제처럼 벽에 기대있는 사다리를 타고 지붕으로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뜨락으로 내려서는 것이었다. 저놈이 어쩌자는 것일까?

뜨락에 내려선 구렝이의 배가 불룩하고 그놈이 불편해하는 것 같아 보이는 것이 참나무닭알을 삼킨 모양이었다. 그럼 그렇겠지. 이젠 네놈이 꼼짝 못하고 죽게 되었구나. 농사군이 속으로 환성을 지르며 슬며시 구렝이의 뒤를 따르니 그놈은 무척 더디게 기어 집주위의 풀숲에 다달으자 웬 풀을 뜯어먹는 것이었다.

농사군은 몹시 놀라워하였다. 지금껏 뱀이 풀을 뜯어 먹는 걸 보기는커녕 그런 말도 들은 적 없었다. 사람의 손바닥 비슷하게 셋이나 다섯 갈래로 된 풀잎(손잎풀)을 몇 잎 뜯어 삼킨 구렝이는 또다시 꿈틀거리며 기어가는 것이었다.

농사군은 호기심이 나서 발소리를 죽여 가며 그놈의 뒤를 따라 갔다. 한동안 불편스레 기어가던 구렝이는 서까래 굵기의 소나무로 다가가 그 나무의 밑둥을 칭칭 휘어감는데 보다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그놈이 소나무 밑둥을 둘둘 감은 몸뚱이를 꽉 조이자 불쑥 입에서 참나무닭알이 토해지는 것이었다. 아니, 저놈이 조화를 부리는개 아니야? 농사군은 신기하기도 하고 두렵기도 해서 참나무닭알을 토해버리고 풀섶으로 꼬리를 사리는 구렝이를 멍히 지켜보기만 하였다.

아, 살다살다 별일을 다 보는구나, 구렝이가 사라져버린 풀섶에서 방금 그놈이 뜯어먹던 손잎풀에로 눈길을 던진 농사군은 문득 좋은 생각이 떠올라 무릎을 쳤다. 영낙없이 죽었다 했던 구렝이가 참나무닭알을 손쉽게 토해버릴 수 있은 것은 분명 그놈이 뜯어먹은 풀이 조화를 부렸을 것이다.
그렇다면 저 풀이 사람의 속탈을 고치는 약으로도 되지 않을까?

“틀림없을 거야”

농사군은 기뻐하며 손잎풀을 한웅큼 뜯어들었다.

“이게 제발 체기로 고생하는 어머님한테 약이 되어 주렴.”

농사군은 즉시 절구로 손잎풀을 짓찧어 즙을 내서는 앓는 어머니에게 드렸다. 날마다 손잎풀의 즙을 내여 드렸더니 며칠이 지나 과연 어머니는 속탈이 말끔히 나아 밥을 잘 먹을 수 있었다. 그렇게 되니 농사군은 제가 죽이려 했던 구렝이가 아주 고맙게 여겨졌다.

만일 구렝이가 닭둥우리에 기어들어 닭알을 훔쳐 먹지 않았더라면 어머니는 한생 속탈로 인하여 고생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 구렝이가 사람들에게 끼치는 해는 아주 작고 주는 복은 대단히 크다고 할 수 있다. 구렝이가 가져다준 복을 제일 먼저 받은 살람으로서 희한한 이 사실을 온 고을에 알려주어 속탈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그 덕을 입을 수 있게 하는 것은 응당한 도리가 아니겠는가.

이렇게 생각한 농사군은 자기가 겪은 일을 마을사람들에게 알려주었다. 이것이 크게 소문이 나서 속탈을 앓는 사람들이 농사군을 찾아 왔다. 그들도 손잎풀의 효험으로 병을 고치었으니 구렝이에 대한 소문은 날로 더 크게 짜해졌다.

그러는 속에 여름이 가고 초가을이 왔다.

농사군에게 또 한가지 불쾌한 일이 생겼다. 올해는 그 못된 쥐무리가 어찌나 번성했는지 밭에서부터 곡식이 녹아나고 있었다. 쥐가 수수대를 타고 올라가 수수이삭을 따먹는 것은 머리털이 돋아나서 처음 보는 일이었다. 저놈의 쥐무리를 몽땅 때려잡는 비방은 없는지…

한탄 속에 날로 녹아 나고 있는 수수밭을 돌아보고 있는데 갑자기 짹!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게 무슨 소릴가. 소리 난 쪽을 가만히 살펴보니 놀라운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얼룩덜룩한 큰 구렝이가 밉살스러운 쥐를 통째로 입에 삼키고 있었다.

보고 또 보아도 구렝이는 틀림없이 초여름날에 닭둥우리에 기어들어 참나무닭알을 삼켰던 그 구렝이였다. 그동안 집주변에서 몇 번 눈에 띄울적마다 구렝이가 놀랄가 봐 자리를 피했던 농사군으로서는 그놈임을 알아보지 못할리 없었다.

아, 구렝이한테 저런 착한 제간이 또 있었단 말인가. 구렝이가 하루 한 마리의 쥐를 잡아치운다고 해도 쥐무리는 그만큼 늘어나지 못할 것이니 농사군이 피땀흘려 지은 곡식도 그만큼 손해 보지 않게 될 것이다. 그 양곡을 나라적으로 따져본다면 엄청난 수량이 될 것이다.

구렝이는 사나운 독뱀과 달리 사람을 물어 죽인 일이란 있을 수도 없거니와 기껏 해서 병아리나 알을 해칠 뿐이다. 반면에 사람들에게 좋은 약초를 알려 주었을 뿐만 아니라 곡식을 탕치는 몹쓸 놈의 쥐를 잡아먹었으니 이 두 가지만 놓고 보아도 얼마나 유익한 영물인가.

아, 사람 사는 집의 한구석에 숨어사는 구렝이야말로 상서로운 보배라고 할 수 있겠구나. 하늘신이 이런 유익한 구렝이를 사람들에게 보내준 것도 모르고 흉한 겉모양만을 꺼려 무작정 미워했으니 이거야말로 들어오는 복을 차버리는 것이 아니고 뭔가.

농사군은 그날로부터 온 마을에 구렝이의 좋은 점을 들려주며 해치지 말 것을 신신당부하였다. 이렇게 되어 구렝이는 사람들에게 복을 가져다주는 귀한 업구렝이로 불리워지면서 집집들에서 영물로 대하는 풍습이 생겨날 수 있었다.

전철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