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없이 걷고 싶을 때 만나면 좋은 임실 사선대
오늘은 걷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잠시 마음을 내려놓고 가볼 수 있는 유적지를 찾아가기로 하였다. 전주에서 남원 가는 방향으로 30분 정도 차를 타고 달리다 보면 관촌에 있는 사선대를 만날 수 있다. 주름진 산줄기와 넓은 공간이 주는 정경은 잠시 여유로워지는 마음을 느낄 수 있다. ( 관촌의 지명은 한자로 館村, 즉 ‘여관마을’이란 뜻으로 남원에서 전주로 가는 상인들이 들러 휴식을 취하는 마을이었다.)
사선대 광장 한쪽에 사선대 유래가 적혀 있다.
지금으로부터 2천 년 전 마이산(馬耳山)의 두 신선과 운주산(임실면)의 두 신선이 하루는 이곳 관촌의 오원강 기슭에 모여 놀다가 병풍처럼 아름다운 주위의 풍경에 취하여 혹은 대에 오르기도 하고 혹은 바위 위를 거닐기도 하면서 맑은 물에 목욕하고 즐기더니 까마귀 떼가 날아와 함께 어울리고 있을 때 홀연히 네 명의 선녀들이 하늘에서 내려와 네 사람의 학발 (학의 머리처럼 하얀 머리털이란 뜻으로, 노인의 백발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신선들을 호위하여 사라졌다.
이후로 해마다 이맘때면 선남선녀들이 놀았다 하며 그리하여 이곳을 사선대라 하고 까마귀가 놀던 강을 오원강이라 불렀다 한다. 또 신선이 놀던 바위를 놀음바위라 부르고 있으며 검은 절벽 사이의 이름 모를 꽃들, 그 밑을 흐르는 강물이 그야말로 눈에 호강을 느끼게 한다.
사선대 주변은 기암절벽이 에워싸고 있고 사선대 위쪽에는 운서정(雲棲亭)이라는 아담한 정자가 서 있다. 일본 강점기에 1928년에 관촌지역의 유지였던 김승희가 부친인 김양곤옹을 기리기 위하여 쌀 3백 석을 들여 6년간에 걸쳐 세운 정자로 사선대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절경이 눈에 띈다. 지방에서는 보기 드문 조선조 본래 건축 양식을 보여주고 있으며 특히 거대한 목재와 석축 등으로 만들어졌다. 경사지에 화강석 장대석으로 높은 축대를 쌓아 단을 만들고, 각 단에 위계에 따라 배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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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각과 동·서재 그리고 가정문(嘉貞門)으로 이루어진 운서정은 마치 학문을 공부하기 위한 공간과 같다. 정각의 평면은 내진(內陣)과 외진으로 구분되어 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내진을 구성한 후, 135㎝ 정도 띄워서 주고(柱高)가 낮은 외진 기둥을 주위에 돌려세우고, 기둥 밖으로 계자난간(鷄子欄干-난간동자를 닭의 발 모양으로 바깥쪽으로 구부정하게 하여 화초 무늬나 덩굴무늬를 새겨 만들고, 돌난대를 밖으로 내밀어 걸친 난간)을 시설하였다. 정각 내외에는 수많은 용이 살아있는 듯 꿈틀거리고 무언가 나타내려는 그림과 목조각품이 이해하기 힘들 만큼 다양하게 펼쳐져 있다. 이 정자는 일본 강점기에 각지의 우국지사들이 모여 망국의 한을 달래며 나라의 앞날을 토론하고 걱정했던 곳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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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사선대는 관광지로 바뀌면서 화려해졌다. 자연미보다는 인공미가 많아졌고, 각종 시설이 들어와서 사선대 고유의 맛이 사라지고 어딘가 모르게 도시 귀퉁이에 만들어진 관광시설 같다는 느낌이 든다, 마음을 놓고 쉬는 공간이 사라진 느낌이 들 정도다. 그러나 자연은 변하지 않는 것 같다. 조금만 더 발을 움직여 운서정으로 올라가는 길을 가다 보면, 이름 모를 꽃·나무, 정자에서 보는 섬진강은 변하지 않았다. 운서정에서 성미산까지 걷다 보면 백제산성의 맛을 느낄 수 있는 성미산성을 만나는 것은 또 하나의 기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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