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의 금석문유산 – 령통사대각국사비 
박경순

《문화유적유물들을 잘 보존관리하고 그것을 통한 교양사업을 잘하는것은 주체성과 민족성을 고수하고 우리 인민들의 애국심을 높여주는 데서 중요한 의의를 가집니다.》 

우리민족이 창조한 역사유적유물들에는 선조들의 창조적 지혜와 슬기가 깃들어 있어 민족적긍지와 자부심을 높여주는 데서 큰 의의를 가진다. 령통사대각국사비는 고려시기의 유명한 비석 중의 하나인데, 이 비석은 1125년에 대각국사 의천(1055~1101년)의 공적을 찬양하여 그의 제자들이 세운 것이다.

령통사대각국사비는 개성시 룡흥동 오관산의 남쪽 령통골 령통사에 세워져있다. 오관산이란 이름은 관을 쓴 것 같은 5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진 산이라는 데서 생겼다. 령통골은 본래 마하갑으로 불렸는데 마하갑이란 말은 《큰 골짜기》라는 뜻으로서 고려 태조의 조상인 왕씨들이 살면서부터 이 이름으로 불리워졌다고 한다. 령통사는 처음에 숭복원이라 하다가 후에 령통사로 이름을 고쳐 국가적인 절로 만들었다. 이 절간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된것은 11세기 천태종(불교의 한 유파)을 발전시킨데 공헌한 대각국사 의천이 령통사에서 20여년간 불교학설을 연구하다가 죽은 다음 그의 무덤을 여기에 썼기 때문이다. 령통사는 오래전에 외래침략자들의 침입으로 인하여 불에 타 페허로 되였고 그 터와 무덤 그리고 비석들만 남아있었다. 2000년대 초반 개성 령통사를 복구 복원하기 위한 사업이 적극 추진되어 훌륭하게 복원돼, 2005년 준공식이 진행되었다.

<복구 복원된 개성 영통사 전경>

령통사 대각국사비도 령통사를 복구복원하면서 옛 모습그대로 세워져 보존되게 되었다.

령통사 대각국사비

령통사는 고려시기 이름있는 절간으로서 여기에는 5층탑과 2개의 3층탑이 있고 령통사 대각국사비가 있으며 그리고 당간지주가 남아 있어 령통사의 오랜 력사를 실물그대로 잘 보여주고 있다.

령통사대각국사비문에는 의천의 경력과 비석을 세울 때 공사관계자들의 이름이 밝혀져있다.
비문은 《삼국사기》의 저자인 김부식이 왕의 지시를 받고 글을 지었으며 오언우가 글씨를 썼는데 글자는 앞뒤면에 새겨져있다. 의천은 고려 11대왕 문종(1019~1083년)의 아들로 11살에 중이 되어 령통사에 거처하였다. 비문에 의하면 의천은 불경을 널리 탐구하여 경, 률, 론 등에 도통하고 다른 학문에도 힘을 넣어 당시 이름난 중들도 그를 따를 수 없었다고 하였다. 의천은 1086년부터 4 700여권의 불경을 간행하였다. 이것이 불교경전인 《고려속장경》이였다. 그는 1101년(숙종 6년)에 죽은 다음에도 승려로서 재주와 덕행이 우수하였고 명망이 높아 그 이름이 요나라와 송나라에까지 전해졌으며 불교경전인 《고려속장경》을 출판하는데 기여한 공로로 대각국사로 추증되었다. 비문의 기록들을 통하여 천태종의 시조로 알려진 의천의 경력과 11세기말 고려에서 불교 경전인 속장경 간행 정형을 일정하게 알수 있다.

령통사대각국사비는 조형예술적 측면에서 고려 시기 우수한 석조 공예술과 조각술을 잘 보여준다. 비석은 밑에 바닥 돌을 한 벌 깔고 그 위에 거북 받침을 하였으며 그위에 비 몸돌과 비 머리가 있다. 비석의 전체 높이는 약 4.5m로서 거북을 형상한 받침돌과 바닥 돌은 하나의 돌을 다듬어 이루어졌는데 한변의 길이는 2.35m이고 높이는 0.9m이다. 네발로 바닥 돌을 힘껏 짚고 목을 길게 내민 거북의 형상은 정교하면서도 품위가 있어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하다. 높이가 3.15m인 비 몸돌에 새겨진 보상화 넝쿨무늬와 봉황새 무늬는 매우 정교하면서도 세련되어있다. 무늬는 고려의 화가 박권이 새긴 것으로서 거북 받침의 름름한 형상과 서로 대조되어 조화를 잘 이루고 있다. 비석의 제일 웃 머리에 《증시대각국사비명》라고 전자체로 씌워져 있는데 2글자씩 내려 썼으며 좌우에 봉황새 무늬와 꽃 무늬를 가는 선으로 새겨 장식하였다.

특이한 것은 고려 시기 비석들인 현화사비, 오룡사법경대사비, 광조사진철대사비 등에는 대체로 비 머리를 용들이 서로 뒤엉켜 돌아가는 모양을 형상한 리수(공예품이나 건축물에서 용이 서린 모양을 아로 새긴것)로 되었으나 이 비석만은 비 머리를 우진각 지붕모양으로 처리하였다.

령통사 대각국사비는 고려 시기를 대표하는 우수한 비석으로서 고려 시기 속장경 간행정형과 출판인쇄술, 석조공예술, 조각술을 연구하는데 좋은 자료를 제공하는 귀중한 문화재보이다. 령통사 대각국사비는  국보적인 역사문화 유적으로 훌륭히 복구 복원된 개성 령통사와 함께 원상그대로 보존되어 민족적 긍지와 자부심을 북돋아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