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의식, 이 땅에 기원전부터 축제가 있었다.

 고조선 시기부터 우리 민족은 하늘을 숭배하는 의식이 있었다. 이는 고대 농경사회로 접어들면서 농사에 큰 영향을 주는 것이 기후라는 생각, 즉 비, 구름, 바람 등 하늘을 경외하는 신앙사상이 생겨났던 것이다. 자연현상에 대한 과학적 인식이 없었으므로 하늘의 뜻에 따라 기후가 변한다고 생각했고 하늘이 곧 절대신이었다. 따라서 왕은 곧 하늘의 아들이자, 제사장인 절대 권력자로 자리매김 하였다.

 고대 국가권력의 중대사는 하늘에 제사를 지내 좋은 기후와 풍농을 기원하는 것이었고 제천행사는 나라의 가장 큰 행사이자 명절이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시험공부를 할 때 달달 외웠던 부여-영고, 동예-무천 등이다.
국가의 큰 종교의식이자 행사이긴 했지만 민중들의 입장에서 한편으로는 이 날은 명절이고 축제였다. 부여에서는 12월 영고 행사를 통해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연일 먹고 마시며 노래하고 춤을 췄다는 기록이 있다. 보통 10월을 상달이라고 하면서 추수감사제를 지냈는데 부여 북방 쪽은 수렵도 주된 활동이었으므로 동물들이 동면에 들어가기 전까지 많은 수렵노동을 하고 12월에 제천행사를 한 것으로 보인다.

 영고행사를 할 땐 길을 가면서도 남녀노소 노래를 부르고 그 노래소리가 밤낮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밤낮 노래를 불렀다는 것은 그만큼 함께 부를 노래가 많았다는 뜻이기도 하고, 많이 불러봤다는 얘기다. 따라서 노동요 같은 것이 이미 이 시기에 많이 만들어져 유포되었고 그 형식도 오래 부를 수 있는 후렴구가 있는 절가형식이라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

 또한 북과 슬과 같은 악기를 연주하면서 춤을 추었다는 기록도 있다.

 슬은 고대 현악기로서 지역과 연주방법에 따라 아쟁 형태와 가야금 형태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다. 현악기를 연주할 수 있었고 북과 방울, 복숭아 나무껍질로 만든 피리가 있었다고 하니 악기연주도 발전해있었음을 알 수 있다.

 노래, 연주 뿐만 아니라 양식화된 춤도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중국 문헌에 우리 나라에는 매악이라는 춤이 있었는데 이를 관리하는 매사라는 관직도 있었다고 전해진다. 매악이란 맥의 음악이라는 말로 맥은 중국이 우리 민족을 칭하는 말이다. 그 문헌에 매악은 16명의 무용수와 40명이 긴 창을 든 사람이 추는 춤이라고 표현한 수십명이 참가하는 군무였다. 풍물굿을 하는 것을 매구친다고 하는데 매악으로부터 유래된 말로 보인다.

 이러한 노래, 연주, 군무가 가미된 제천행사는 지금의 민속축제나 대동굿 형태의 원형이었다. 이는 농경사회에서 마을사람들이 모여 풍물을 치면서 민요를 부르고 민속춤과 탈춤을 추는 형태로 수천년을 어어져 지금까지 전해지는 것이다. 음주가무 축제가 기원전부터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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