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리1호무덤 (內里一號墳) ▷위치 : 평양시 삼석구역 장수원동 ▷시대 : 삼국시대(고구려) ▷성격 : 무덤 ▷지정번호 : 국가지정문화재 보존급 제4호   평양시 삼석구역 장수원동에 있는 고구려벽화무덤이다. 거기에는 고구려시기의 무덤이 떼를 지어 분포되었는데, 30여 기의 무덤 중 내리1호무덤이 가장 큰 무덤이다. 이 무덤은 이미 오래 전에 도굴당한 탓으로 파괴가 심한데다가 6·25전쟁 시기에 거듭 피해를 입어 원상을 알아볼 수 없다.  내리1호무덤은 사신도를 그린 외방무덤이며, 방대형의 봉토분으로 봉토가 동서 지름 약 20m, 남북 지름 약 24m, 높이 4.5m이다. 무덤칸은 널길과 널방으로 이루어졌으며 그 방향은 서쪽으로 약간 치우친 남향이다. 널방은 정방형이며 각 벽의 길이는 약 3m, 높이는 3.3m 가량이다. 그 천장은 평행고임 3단, 삼각고임 2단으로 구성된 평행삼각고임천장이다. 크고 작은 화강암을 잘 배합하여 아담하고 견고하게 쌓았으며 질 좋은 회를 세 번 발라 벽화를 그릴 수 있도록 했다.  이 무덤의 벽화에서 사신도와 각종 무늬도 우수하지만, 특히 좁은 평행고임면에 안개 속에 묻힌 듯한 중중첩첩한 산봉우리, 구불구불한 소나무 등 자연풍경을 실감 있게 그린 것은 고구려 회화예술의 우수성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이 무덤은 짜임새와 벽화내용으로 보아 7세기 초에 만들어진 것이다. (임효진)   <참고문헌> 朝鮮總督府, 1936, 『昭和11年度古蹟調査報告』/ 사회과학원 고고학연구소, 2009, 『고구려 벽화무덤(1)』, 조선고고학전서 32(중세편9), 진인진/ 문화재연구소 미술공예연구실, 1991, 『北韓文化遺蹟發掘槪報 』, 문화재관리국 문화재연구소   내리1호무덤의 주검칸 북쪽 천정벽화 Ⓒ『조선고고학전서32』 내리1호무덤의 주검칸 남쪽 천정벽화 Ⓒ『조선고고학전서32』 내리1호무덤  Ⓒ『조선고고학전서32』   
역문협 2020.08.17 0 조회 581 | 지역: 평양특별시 | 시대: 고구려 | 유형: 분모유적 | 종목: 준국보문화유물(보존급)
금강사터 (金剛寺址) ▷위치 : 평양직할시 대성구역 청암동  ▷시대 : 삼국시대(고구려) ▷성격 : 사찰 ▷지정번호 : 국가지정문화재 국보급 제25호    금강사터는 고구려의 대표적인 절터이다. 고구려시기 왕궁성이었던 안학궁의 서남쪽 청암동토성 안에 위치하고 있다.   금강사터는 1938년에 대지의 동쪽 밭에서 배수구를 파다가 고구려 기와층이 발견되어 본격적인 발굴이 이루어졌다. 이후 두 차례에 걸친 발굴조사로 현재의 배치를 알 수 있다. 특히 <쇠금> (金)자와 <절사> (寺)자가 찍힌 고구려시기 기와들과 금동제유물들이 일부 알려졌다. 금강사터 관련 기록은 『삼국사기』, 『고려사』, 『동국여지승람』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고려시기에 숙종은 금강사에 행차하여 승려를 공경하는 뜻에서 재식을 베푸는 행사를 하고 옛 탑이 있던 자리를 보았다고 한다. 또한 평양부 고적조에는 평양부 동북쪽 8리에 터가 있다고 전한다.   금강사터 평면에는 1자의 크기가 35cm 안팎인 고구려자를 기준으로 하여 엄밀한 단위자 체계가 적용됐다.   금강사터는 고구려의 독특한 절 배치형식과 발전된 건축술을 보여준다. 8각탑 중심으로 동서남북에 세금당과 문이 배치된 고구려 가람배치 형식 1탑 3금당식으로 배치되어 있다. 금강사터의 중심건물은 다층 목탑으로 탑터의 평면은 8각형이며, 기단의 한 변 길이는 10.2m~10.4m이다. 탑 둘레에는 70cm 너비이며, 북한에서 7층탑으로 복원한 상태이다. (임효진)   <참고문헌> 朝鮮總督府, 1938, 『昭和一三年度古蹟調査報告』/ 채희국, 1957, 「평양 부근에 있는 고구려 시기의 유적」, 『문화유산』, 조선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 과학원/ 사회과학원 고고학연구소, 2009, 『고구려의 건축』, 조선고고학전서 28(중세편5), 진인진   금강사 문터   Ⓒ『조선고고학전서28』 금강사터에서 출토된 수키와막새 Ⓒ『조선고고학전서28』 
역문협 2020.08.17 0 조회 805 | 지역: 평양특별시 | 시대: 고구려 | 유형: 사찰관련유적 | 종목: 국보문화유물
개마무덤(개마총) (鎧馬塚) ▷위치 : 평양시 삼석구역 노산동 ▷시대 : 삼국시대(고구려) ▷성격 : 무덤(벽화무덤) ▷지정번호 : 국가지정문화재 보존급 제3호   개마무덤(개마총)은 평양시 삼선구역 원노산동(현재 장수원동 지역)에 위치에 있다. 1916년 일본인 세키노다다시에 의해 조사되었다. 개마무덤(개마총)의 개마는 갑옷을 입힌 말, 혹은 무장한 말을 의미한다. 천장 행렬도의 "총주착개마지상(塚主着鎧馬之像)"이라는 명문이 있다. 그림 내용과 명문으로 미루어 무덤 주인공이 개마를 타려는 장면을 묘사한 것으로 볼 수 있으며 이에 개마총이라는 이름도 얻은 것임을 아울러 확인할 수 있다.  개마무덤(개마총)은 사신도를 그린 외방무덤이다. 무덤칸은 널길과 널방으로 이루어졌으며 남향으로 되어 있다. 널길은 널방남벽 복판에 달려있다. 널방은 장방형으로 생겼으며 그 천장은 평행삼각고임식이다. 널방 크기는 길이 2.8m, 너비 2.5m, 높이 2.7m의 평면 장방형에 가깝다. 벽화는 두텁게 백회를 바른 회벽 위에 그렸는데 손상이 심하며, 널방 4벽의 사신도 중 북벽의 현무도와 천장 받침의 개마행렬도, 해와 달, 장식무늬 띠 등이 남아 있다. 조사 당시에는 널방 입구 널길 좌우 벽에 사자 형상과 기마인물을 그렸던 흔적이 있었다고 한다. 벽화는 가는 먹 선과 황색·적색·홍색·갈색·녹색 등으로 채색하였으며, 화면은 밝고 단정한 분위기이다. 현재 벽화는 남아 있지 않고 벽화의 모사도가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 가운데 주의를 끄는 것은 무덤 명칭으로 된 주인공이 개마를 타는 장면이다. 천장평행고임부의 금관을 쓴 남자가 서있고, 무사 한 사람이 갑옷을 입힌 개마를 끈 채, 한 무릎을 꿇고 남자를 향해 무언가 말하고 있다. 개마 뒤에는 역시 부하인 듯한 무사들이...
역문협 2020.08.17 0 조회 808 | 지역: 평양특별시 | 시대: 고구려 | 유형: 분모유적 | 종목: 준국보문화유물(보존급)
신암리 청등말래 유적 유물     신석기 평안북도 신암리 청등말래유적      이 민그릇(무문토기)은 신석기시대의 청등말래유적에서 나왔다. 이 유적의 질그릇 갖춤새에는 일련의 특징이 있다. 그것은 많은 질그릇이 목이 있고, 몸체가 둥실한 납작밑이며, 몸체의 중간부분에 고리 손잡이가 붙어 있는 것이다. 질그릇 갖춤새의 특징은 그릇의 겉면 장식에서도 나타난다. 그것은 새김무늬그릇의 전통을 강하게 이어 받은 그릇들과 함께 일부 민그릇이 나타나는 것이다.          달도끼     번개무늬그릇(雷文土器)   이 유적의 질그릇 갖춤새에는 일련의 특징이 있다. 그것은 많은 질그릇이 목이 있고, 몸체가 둥실한 납작밑이며, 몸체의 중간부분에 고리 손잡이가 붙어 있는 것이다. 질그릇 갖춤새의 특징은 그릇의 겉면 장식에서도 나타난다. 그것은 새김무늬그릇의 전통을 강하게 이어 받은 그릇들과 함께 일부 민그릇(무문토기)이 나타나는 것이다. 무늬그릇에는 번개무늬, 격자무늬, 사선의 띠무늬 등을 새긴 것과 이러한 여러 무늬를 배합한 것이 있다. 그 가운데서 이채를 띠는 것이 번개무늬그릇이다. 번개무늬는 기원전 3000년기 전반기의 타래무늬나 점선물결무늬와 수법상 통하는데 이것은 번개무늬와 타래무늬, 점선물결무늬와의 직접적인 계승관계를 말하여 준다. 유적에서 나온 번개무늬그릇은 그 아담한 형태와 섬세하고 규칙적이면서도 율동감을 안겨 주는 무늬수법으로 하여 당시 주민의 높은 예술적 재능을 충분히 엿볼 수 있게 한다.           
지호 2020.08.03 0 조회 649 | 지역: 평안북도 | 시대: 신석기 | 유형: 주거유적 | 종목: 일반문화유물
범의구석유적 철기 주거유적 함경북도 무산읍     유적은 무산읍 서쪽의 두만강가에 자리잡고 있다. 신석기시대로부터 철기시대 초기까지에 이르는 수천 년간의 역사를 담은 이 유적의 5문화층은 기원전 7세기-기원전 5세기에 해당하는 문화층이다.        5호 집자리 실측도                                                         쇠활촉                                                     쇠칼(길이 10.5cm)   5문화층에서 알려진 것은 5호 집자리를 비롯하여 모두 15개인데 그 평면윤곽은 대체로 방형 또는 장방형이다. 모든 집자리에는 화덕자리가 1개 또는 2개 이상 있으며, 3줄 또는 4줄로 된 주춧돌이 정연하게 남아 있었다.      쇠창끝(길이 10cm)                 쇠대패날과 쇠도끼(왼쪽 길이 8cm)     범의 구석유적에서 검정간그릇과 약간의 석기, 그리고 쇠도끼, 쇠창, 쇠대패날, 쇠끌 등 적지 않은 철기가 함께 나왔다. 쇠창은 청동기시대의 버들잎모양 흑요석창끝과 비슷하며, 구두칼모양의 쇠칼도 앞선 시기 점판암으로 만든 칼과 비슷하다. 청동기시대의 석기를 그대로 모방한 이와 같은 철기는 철기시대에 들어선 초기의 것이 분명하다. 이 시기 집자리에서 나온 쇠도끼는 완전용융상태에서 얻어진 선철주물품이었다. 기원전 6세기를 전후한 시기에 질 좋은 선철제 도끼를 생산하였다는 것은 제철기술 발전사상 보기 드문...
지호 2020.06.27 0 조회 501 | 지역: 함경북도 | 시대: 고조선 | 유형: 주거유적 | 종목: 일반문화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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