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최초의 통일국가의 수도 개성의 나성
최현진
개성 나성은 고려 수도성의 외성이다.
918년 나라를 세운 고려는 도읍을 개성에 정하고 처음에는 이미 있던 방어 참성을 그대로 이용하였다. 919년 그 안에 궁성이 건설됨으로써 방어 참성은 대부분 황성으로 되었다. 그 후 1009년부터 21년 동안에 수도성의 최성인 개성 나성을 건설하였다. 개성 나성의 둘레는 황성의 서북벽을 포함하여 22Km에 달한다.
내성은 1391년에 “외성이 너무 커서 방비에 불리하다”고 하여 외성 안을 가로질러 쌓기 시작하였는데 이조시기에 들어서서 완공되었다.
개성 나성은 북쪽의 송악산 줄기, 서쪽의 지네산, 남쪽의 용수산, 동쪽의 덕암봉과 부흥산 등 높고 낮은 산봉우리들과 언덕들을 이으면서 쌓았다.
개성 나성의 북쪽 성벽과 서쪽 성벽의 일부는 돌로 쌓고 나머지는 흙으로 쌓았다.
그림1> 개성 나성의 전경
돌로 쌓은 성벽은 외면 축조방법으로도 하고 양면축조방법으로도 하였는데 지금 그 밑 너비는 6m정도이고 높이는 3~4m정도이다. 흙으로 쌓은 성벽에는 기본적으로 돌로 성심을 채웠는데 밑부분의 일정한 높이까지는 계단처럼 돌을 쌓고 그 위에 석비례와 붉은 진흙을 번갈아 다녀올렸다. 지금 밑면의 너비는 대체로 7~8m이고 성벽의 높이는 3~4m인데 그 이상의 높이로 남아있는 곳도 적지 않다.
성벽 위에는 성 가퀴들을 쌓고 거기에다 쏘는 구멍들을 냈다. 개성 나성에는 25개의 성문이 있었다. 동서남북의 4대문과 중간성문 8개 작은 성문 13개가 있었다.
큰 성문과 기타 중요한 성문에는 옹성을 쌓아 그 방비를 강화하였다.
개성 나성에서는 46개소의 치가 확인되었다.
서벽 위에는 나각이 있었는데 ‘고려사’에 의하면 그것이 1만 3천칸이나 되었다고 한다.
개성 나성은 고구려 평양성에서 창조된 도시 전체를 둘러막은 평산성 형식의 수도성제를 따른 고려의 수도성으로 고구려를 이은 고려의 축성기술과 나라를 지켜 싸우려는 고려백성의 숭고한 염원이 깃들어 있는 귀중한 유산이다.
그림2> 개성 나성의 평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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