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순 우리역사

박경순 우리역사2021-01-03T14:48:21+09:00
3004, 2020

우리나라 국가 성립, 중국보다 빨랐다

By |2020년 4월 30일|

우리나라 국가 성립, 중국보다 빨랐다 [새로 쓰는 고조선 역사](8) 고조선의 국가성격 논쟁, 고대 노예제 국가   고조선의 국가 성격에 관한 문제는 우리나라 원시시대와 역사시대의 계선에 관한 문제이다. 인류의 역사에서 첫 국가는 고대국가이다. 각 나라와 민족들은 고대국가를 세우면서 원시시대를 끝내고 문명시대 역사시대로 진입했다. 우리나라가 반만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고 할 때, 그것은 반만년 전에 고대국가가 성립됐다는 뜻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통상적으로 반만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고 말하는데, 역사학계에서는 그것을 부정한다. 기껏해야 기원후 3~4세기에 이르러서야 고대국가가 성립했다는 것이다. 역사학계의 주장대로라면 우리나라는 기껏해야 1800년 정도의 역사를 갖고 있을 뿐이다. 우리나라는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민족이 아니라, 중국보다 2000여년 뒤늦게 역사시대로 접어든 역사 지진아일 뿐이다. 과연 우리나라 역사는 1800년인가 반만년인가? 이것이 고조선의 국가 성격의 본질이다.  초기 국가론을 비판한다  고대국가 성립 시기 문제가 쟁점으로 되는 것은 그것이 원시시대에서 역사시대로의 역사적 전환의 징표이자 귀결점이기 때문이다. 모든 나라들은 고대국가 성립시점부터 그 나라 역사시대가 시작됐다고 본다. 역사학에서 국가는 원시공동체에 대립되는 개념이다. 원시공동체는 씨족이나 부족 등 혈연적 관계에 의해 사회가 조직되고 운영된다. 반면에 국가는 계급 계층으로 이루어진 지역 공동체에 기초해 지배계급의 이익을 대변하는 권력기구(국가)에 의해 사회가 조직되고 운영된다. 고대국가 성립의 징표는 합법적으로 권력을 행사하기 위한 군대, 법률, 감옥 등 물리적 권력기구와 함께 조세를 징수하고 행정을 집행하는 관료조직, 지배이념, 그리고 최고 통치자(전제군주) 등을 갖추는 것이다.  우리나라 역사학계에서는 일제 식민지 시대부터 우리나라 고대국가 성립시기를 3~4세기로 못 박아 놓고, 이를 아직까지 고수하고 있다. 그 결과 여러 가지 유적 유물, 역사자료에 의해 그 실체성이 확인되고 있는 고조선을 고대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심지어 ‘삼국사기 초기 기록 불신론’에 입각해 <삼국사기>에 실려 있는 고구려 백제 신라의 국가건설 시기마저도 부인하고 소위 원삼국시대라는 해괴한 개념까지 만들어냈다. 원삼국시대란 아직 고대국가 체제를 갖추기 전의 삼국시대를 지칭하는 개념이다. 한국 고대사회 출발점이 되는 고대국가의 형성 문제가 이처럼 복잡하게 된 것은 일제의 단군조선 말살책동 때문이다. 일제는 단군조선을 말살하기 위해 단군조선사를 완전히 부정하고 우리 민족사의 앞머리 부분을 몽땅 잘라버린 왜곡된 조선역사를 조작해냈다. 그 이후로 단군조선은 신화의 영역에 갇혀 버리고 역사의 영역으로 내려오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반갑게도 고조선의 역사적 실체성을 인정하는 추세가 확산되고 있다. 최근 고등학교 역사교과서에도 고조선을 최초의 국가로 기술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 문제가 해결되었는가? 우리나라 고대국가의 성립시기가 3~4세기경이 아니라 고조선의 성립으로부터 고대국가시대로 접어들었다고 인정한 것인가? 바로 이 지점에서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가 존재한다. 고조선을 최초의 국가라고 기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고대국가 성립 시점은 여전히 3~4세기라는 것이다. 요즘 약간 진취적인 역사학자들은 고구려의 고대국가 성립 시점을 3~4세기라 아닌 1세기경에 고대국가체제가 성립했다고 본다. 그렇다면 고조선을 최초의 국가라고 할 때 그 국가는 고대국가가 아닌 어떠한 국가란 말인가? 고대국가 이전단계에도 국가가 존재했다는 말인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결론은 이렇다. 우리나라에서 기원전 10~8세기경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이 성립됐으나, 아직까지 고대국가의 체모를 제대로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고대국가라고 말할 수 없고, 초기 국가(원시공동체와 고대국가의 과도적 단계의 국가형태)라는 것이다. 우리나라 고대국가 성립시기를 3~4세기로 못 박아 놓기 위해 이렇게 초기국가론을 새롭게 고안해냈다. 그렇다면 초기국가는 고대국가인가 아닌가? 이에 대해 매우 애매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초기국가론은 강력한 중앙집권적 지배력이 행사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단일한 국가체가 형성되기 이전 상태인 초기 국가단계에 머물러 있다고 봄으로써 고조선의 국가적 실체성에 대해 애매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또한 고대국가와 구별되는 초기 국가단계를 설정함으로써 내용적으로는 부족국가론 등 과도기 국가론과 다를 바 없게 돼버린다. 원래 고대국가란 개념 자체가 인류의 최초의 국가 형태로서 국가발전단계에서 초기 국가단계에 해당되는 역사적 개념이다. 따라서 고대국가에서는 관료조직이라든가 전제군주권이라든가, 무장력(군대조직), 법률제도, 조세제도 등 국가의 기본 체제들이 아직 초보적 형태로 매우 불완전하고 엉성하며, 낡은 사회(원시공동체 사회)의 유재들이 많이 남아 있을 수밖에 없다. 고대국가라는 개념 자체는 원시시대와 문명시대(역사시대)를 나누는 계선으로서의 가치를 담고 있다. 우리나라 역사학계에서 고수하고 있는 고대국가의 징표는 국가의 발전단계로 볼 때 초기 단계를 훨씬 뛰어넘어 상당히 발전된 국가 단계 즉 중세사회에서 적용될 수 있는 기준이다. 그러한 높은 기준을 내세워 고조선의 고대국가적 성격을 부정하는 것이야말로 우리나라 역사의 유구성을 부정하려는 일제 식민사관의 잔재에서 벗어나지 못한 행위라 할 수 있다. 실제로 북한의 역사학계는 삼국 시대를 고대국가단계가 아니라 중세국가단계로 규정하고 있다. 초기 국가론자들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역사는 1800년에 불과하며, 기껏해야 2000년을 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 이전 우리나라는 고조선과 같이 고대국가로 발전해 나가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해도, 아직까지 고대국가의 체모를 갖추지 못함으로써 원시시대의 단계를 극복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서구에서는 중세사회로 발전해 나가려는 시점에 우리나라는 비로소 역사가 시작됐다는 것이며, 이는 우리나라 역사의 유구성을 부정하려는 식민사학의 틀을 그대로 고수하는 것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유적 유물과 역사자료로 본 고조선의 고대 국가적 성격 [...]

204, 2020

고조선을 세운 건국시조는 단군이다

By |2020년 4월 2일|

고조선을 세운 건국시조는 단군이다   기자명 박경순 우리역사연구가   [새로 쓰는 고조선 역사](7) 단군 신화의 현대적 해석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계급국가 고조선을 세운 건국시조는 단군이다. 단군이란 존칭은 그 생존시기로부터 멀리 떨어진 후세에 우리 선조들이 한자를 쓰기 시작하면서 민족의 원시조를 가리키던 고유 우리말을 이두식으로 표시한 것이다. 따라서 檀君(단군)의 한자말 뜻으로 단군의 의미를 설명하려는 시도는 잘못이다. 단군에서 단은 음을 취하고 군은 뜻을 취해 단군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그렇다면 단군이란 원래 우리말로 어떤 의미를 갖고 있었을까? 단군의 명칭과 관련해 주목을 끄는 것은 <응제시주>에 인용된 <고기>에서 <환웅천왕>이라는 문구 뒤에 “桓(환)을 혹은 壇(단)이라고도 한다”고 한 주석기사이다. 이것은 환웅을 단웅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다는 말인데 실제로 환웅 뿐 아니라 환인도 단인으로 단군왕검은 환검으로 쓴 예가 있다. 이러한 것들을 종합해 볼 때 환과 단은 원래 같은 고유의 우리말을 한자로 옮길 때 서로 다른 한자를 쓴 것일 뿐이다. 여기에서 환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말 ‘환하다’의 말 뿌리에 해당된다. 그렇다면 ‘단’과 ‘환’은 모두 밝다는 뜻을 담고 있는 우리 고유말을 이두식으로 표현한 것이며, 단군은 밝은(족) 임금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고 결론지을 수 있다. 단군은 밝음을 뜻하는 우리말을 종족명으로 쓴 종족에서 추장의 아들로 태어났다. 이것은 중국의 고대 역사서들에서 고조선 사람들을 가리킬 때 ‘부루’ ‘불’ ‘발’ ‘박’라고 칭했던 데서 잘 나타나고, 또 <관자>에서는 고조선을 가리킬 때 ‘발조선’이라고 칭했는데, 이는 밝은 족의 나라 조선을 가리킨 것이다. 즉 고대 중국 사람들이 맥족 예족이라는 명칭을 쓰기 이전시기에 고조선 사람들을 가리킬 때 부루(박, 발, 불)를 썼는데, 이것들은 모두 밝음을 의미하는 말로서 단군의 단과 같은 뜻을 가졌다. 결론적으로 단군이라는 명칭은 밝은족 임금 또는 박달(배달)족 임금의 뜻을 갖고 있는 말이다. 여기에서 박달(배달)은 고대 고조선 말 부루다라/바라다라(여기에서 부루, 바라는 밝음, 불(태양)을 가리키는 말이며, 다라는 후세에 달로 발전했으며 뜻은 산을 가리키는 말이다)가 받침을 쓰거나 겹모음을 쓰던 시기에 와서 박달 또는 배달로 표현되었다. 이처럼 단군은 태양(밝음)을 숭배하는 종족명과 연관되어 밝은족 임금이라는 뜻을 갖고 있으며, 단군조선의 건국자인 고조선의 첫 임금을 지칭하는 고유명사로 출발했다. 그러나 현재 단군은 두 가지 의미로 쓰인다. 단군은 우선 고조선의 창건자, 즉 단군조선 첫번째 임금의 이름을 가리키는 고유명사로 사용된다. 우리가 단군이라고 할 때 일반적으로 단군조선의 건국시조를 지칭한다. 하지만 단군은 이 뜻 외에도 우리나라 고대국가시대에 임금(왕)을 지칭하는 보통명사로도 사용되었다. 왕이라는 명칭이 우리나라에서 쓰인 것은 기원전 3~4세기경으로 추정된다. 그렇다면 그 이전에는 왕이란 존재(권력자)가 없었는가? 그렇지 않다. 왕은 단군조선 건국 시기 이후에 줄곧 있었지만 왕이라는 명칭으로 호칭된 것이 아니라 단군이라는 명칭으로 호칭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단군이라는 명칭은 왕을 지칭하는 보통명사이기도 하다.   단군신화를 어떻게 볼 것인가? 단군신화는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의 고대국가인 고조선의 건국에 관한 것이다. 신화의 주인공인 단군은 우리 민족의 시조로서 높이 추앙받고 있다. 신화란 원래 당시의 현실 속에서 고대인들이 경험한 것을 토대로 신비적 요소가 덧붙여져 만들어진 사회적 의식형태의 하나이다. 신화가 형성된 과정을 대체로 살펴보면 처음에는 간단한 형태로 만들어지지만 후대로 전승되는 과정에서 일부의 내용이 덧붙여지기도 하고 소멸되기도 하면서 오늘날까지 전해져 내려온다. 대체로 신화가 만들어진 시대는 당대이다. 고구려의 건국 설화가 만들어진 것은 고구려 시대였다는 것은 광개토태왕릉비문을 통해 밝혀졌다. 대부분 나라들의 건국신화는 건국시조의 위대성과 건국의 정당성을 고취하기 위해 당대 사람들에 의해 역사적 사실에 신비적인 요소를 덧붙여 만들어진다. 게다가 수천 년이라는 오랜 세월 동안 전해져 오는 과정에서 후세 사람들의 취미와 감정, 이해관계에 맞게 윤색 변형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

303, 2020

단군조선, 동아시아 최초 고대국가

By |2020년 3월 3일|

단군조선, 동아시아 최초 고대국가 [새로 쓰는 고조선 역사](6) 단군조선의 성립, 기원전 30세기 초   지구상에서 첫 고대국가들이 성립된 것은 대체로 기원전 30세기를 전후로 한 시기이다. 인류는 이 시기에 야만시대를 끝내고 고대 문명을 창조하면서 역사시대로 접어들었다.  우리나라에서도 기원전 30세기 초에 동아시아 최초의 고대국가인 단군조선이 건국되었다. 하지만 사대주의 역사관을 탈피하지 못했던 우리나라 역사학계에서는 단군신화를 단순한 신화에 불과하다고 보았으며, 단군조선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북한학계 역시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단군조선의 존재 자체를 부인했고 고조선은 기껏해야 기원전 10세기경에 성립되었다고 주장했었다. 북한의 역사학계는 단군릉 발굴이후 이러한 견해를 수정해 단군조선이 기원전 30세기 초에 건국되었다고 인정했지만, 이남의 역사학계는 단군릉 발굴성과를 부인하면서 단군조선 자체를 부정하고 있다. 이 때문에 재야 역사학계와 첨예한 갈등관계를 겪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단군조선의 존재를 인정할 뿐만 아니라, 단군조선이 기원전 30세기 초에 건국되었다는 것을 밝히려면 단순히 단군릉에서 발굴된 유골 감정에만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 연대측정결과의 과학성을 담보할 수 있는 다양한 보충근거들이 요청된다. 물론 권위 있는 역사서들에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고 왕릉급 무덤에서 발굴된 유골을 연대 측정한 결과 5천 년 전의 것이라면, 그것은 단군의 유골이라고 확정할 수밖에 없다. 또 과학적인 방식에 의해 연대 측정한 결과 단군의 출생연대가 5011±263(1993년 기준)이라면 단군조선의 건국은 기원전 30세기 초일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이것만으로 단군조선의 건국연대를 확증하기보다 다양한 유적 유물들을 토대로 단군조선의 건국연대를 확증하는 것이 보다 타당하고 설득력이 있다. 유적 유물로 본 단군조선의 건국 시기 단군 유골의 연대 측정치가 스모킹 건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것만으로 고조선의 건국 시기를 확정할 수 없다. 고조선의 건국시기가 기원전 30세기 초라는 것을 확정하려면 당시의 사회발전단계를 종합적으로 분석 평가해 고대 국가 성립의 사회역사적 전제가 충분히 숙성되었다는 것도 밝혀야 한다. 또한 고대국가 체제의 성립을 보여줄 수 있는 유적 유물적 증거들을 보여주어야 한다. 이러한 것들로는 신석기 농업혁명을 통한 잉여생산물의 증대와 사회적 분업과 계급 발생을 보여주는 유적 유물, 청동기 시대 도래를 보여주는 유적 유물, 노예제사회를 보여주는 유적 유물, 고대 국가 체제 성립을 확증해 주는 고대 성곽의 존재 등등이 이에 해당된다. 먼저 고대 국가 체제의 성립을 확증해 줄 수 있는 유력한 증거는 고대 성곽의 존재 유무이다. 성곽은 외적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한 국가적 방어시설로서, 성곽 축조에 들어가는 막대한 노동력을 강제로 동원할 수 있는 강력한 국가권력이 없이는 축성될 수 없다. 이것은 원시시대에는 필요하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성곽 축조에 필요한 노동력을 동원할 수 있는 권력(힘)도 없었기 때문에 고대국가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따라서 국가의 존재유무를 확증해 주는 매우 위력적인 증거이다. 평양근처에서는 최근 단군조선이 기원전 30세기 초에 건국되었다는 것을 입증해 줄 수 있는 고대 성곽들이 많이 발굴되었다. 평양시 강동구 남강구에 있는 황대성, 대성구역 청암동 토성 아래성, 남포시 온천군 성현리 토성 아래성, 황해북도 봉산군 지탑리 토성 아래성 등은 기원전 30세기 초에 평양일대에 국가가 존재했다는 것을 명백히 실증해준다. 특히 청암동 토성 아래성을 중심으로 100여리를 사이에 두고 동 서 남 요충지 마다 성곽이 축조돼 있었다는 것은 바로 여기에 고대국가의 수도가 있었음을 실증해준다. 여기에서 아래성이라고 표현된 것들은 고구려 성곽의 아래쪽에 단군조선의 성곽 유적이 남아 있다는 뜻이다. 이러한 성들을 살펴보면 단군조선 시기의 성곽위에 고구려 시대의 성곽이 축조되었기 때문에 과거에는 단순히 고구려 성곽으로만 알려졌었다. 그런데 단군릉 발굴이후 단군조선 시기의 유적 유물들을 찾는 과정에서 고구려 성곽의 아래 층에 단군조선 시기의 성곽이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해 봐야 할 성은 평양시 강동구 남강구에 있는 황대성이다. 황대성의 성벽은 강돌로 성심을 쌓고 거기에 흙은 씌운 토석혼축 형식의 성으로 현재 300m 정도만 남아 있다. 이 성이 주목되는 것은 성의 축조시기를 알 수 있는 자료가 있기 때문이다. 이 성터에서는 2기의 고인돌 무덤과 1기의 돌관무덤, 1개의 배수 시설이 발견되었는데, 그 가운데 고인돌 무덤 1기가 동쪽 성벽 위에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고인돌 무덤의 연대를 알면 자연히 성벽의 축조시기를 알 수 있다. 성벽위에 있던 고인돌 무덤은 오덕형 고인돌 무덤인데, 황대성이 축조되고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만들어진 무덤이라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지만, 안타깝게도 연대를 알 수 있는 직접적인 유물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런데 다행히도 이 고인돌 무덤과 같은 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확인된 돌관무덤에서 유물이 나와 연대 측정한 결과 4795±215(1993년 기준) 전의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기원전 28세기에 해당된다. 황대성이 폐성된 훨씬 후에 조성된 무덤의 연대가 기원전 28세기에 해당된다면 황대성의 축조연대는 기원전 30세기 전후로 될 것이다. 이는 단군조선이 기원전 30세기 초에 나라를 세웠다는 것을 실증해준다. ▲ 황대성 [...]

1002, 2020

단군릉 가짜설을 전면 해부한다

By |2020년 2월 10일|

단군릉 가짜설을 전면 해부한다 [새로 쓰는 고조선 역사](5) 단군릉의 진실     한국 고대 사학회가 출판한 <우리시대의 한국 고대사 > 8강 ‘단군릉, 대동강 [...]

401, 2020

한반도에서 독창적인 고대 문명이 탄생하였다

By |2020년 1월 4일|

한반도에서 독창적인 고대 문명이 탄생하였다 [새로 쓰는 고조선 역사](4) 한반도 문명의 뿌리와 성격     신석기 농업혁명이 고대문명 창조의 어머니라면, 청동기 문화는 고대문명 [...]

212, 2019

인류 문명시대의 마중물, 신석기 농업혁명

By |2019년 12월 2일|

인류 문명시대의 마중물, 신석기 농업혁명 [새로 쓰는 고조선 역사](3) 한반도의 신석기 농업혁명   박경순 우리역사 연구가       한반도 신석기 농업혁명- 고대문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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